대통령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했나? 일본이 공화정의 원수인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대통령(大統領)’으로 번역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도 이를 따르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말을 처음 쓴 일본에서 ‘통령’이라는 용어의 기원을 찾아보면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신사(神社)와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들어, 소준섭 국회도서관 전(前) 조사관은 ‘대통령’이라는 용어 사용을 지양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대안으로 임시정부의 원수(元首)를 일컬은 ‘국무령(國務領)’이나 ‘주석(主席)’, 중화권에서 대통령의 번역어로 사용하는 ‘총통(總統)’을 들었지만, 본인도 밝혔듯이 주석은 공산권, 총통은 영구집권의 이미지가 강하여 대안으로 약점이 있다.
단지 이름을 바꾸는 것을 넘어 의원내각제가 되면 대통령은 어떻게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더라도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로 존재한다. 총리는 의회 다수세력의 지지를 받는 행정부 수반이고,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별도로 선출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왕조시대 왕의 유사품으로 본다. 국가의 원수라는 점은 같지만, 민주주의하에서 대통령을 왕에 견주는 것은 영 개운치 않다. 그런데도 우리가 대통령에게서 왕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국무총리의 존재 탓이 크다. 의원내각제에서 수상(首相) 또는 총리는 행정부 수반이다. 이와 달리 미국처럼 국가원수와 행정부 수반이 동일한 이른바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대통령에 의해 임면(任免)이 좌우되는 총리를 두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요셉(Joseph)과 다니엘(Daniel)도 각 이집트, 페르시아에서 군주에 버금가는 지위에 있었고, 한글 성경은 이를 ‘총리’로 번역했다. 우리 역사를 보면 고려시대 문하시중, 조선시대 영의정이 군주의 최고위 재상(宰相)이었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서 왕을 보필하는 최고 보좌기관인 총리, 재상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국무총리는 단지 대통령의 첫째가는 「보좌기관」으로서 행정에 관하여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기관으로서의 지위만을 가진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요컨대 재상과 같은 역할을 하는 총리의 존재는 우리 국민에게 대통령이 군주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을 일으켰다.
이러한 착시현상은 ‘대통령이 궐위 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71조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 조항에 의해 불과 5년 전 우리는 황교안 권한대행을 경험했다.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에 민주적 정당성 문제가 있다는 비판과 관련하여 헌법 교과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하지만, 그 임명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으므로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국회의장은 일차적으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고, 이에 더해 이러한 국회의원들의 재적 과반수 득표로 ‘선출’되므로 민주적 정당성 면에서 총리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우리 헌법은 임명에 국회의 동의도 얻지 않는, 즉 교과서 논리대로라면 ‘최소한의 민주적 정당성도 없는’ 국무위원들을 다음 순위로 하고 있는 반면, 국회의장은 권한대행으로 언급조차 않고 있다.
삼권분립을 강조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대통령 계승순위를 보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Running mate)인 부통령 다음이 하원의장이고, 프랑스도 대통령 궐위 시 총리가 아니라, 상원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헌법 교과서에서는 대통령제의 단점으로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꼽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역대 대통령 중 상당수의 말로가 좋지 않은 사실은 이러한 지적을 방증한다. 우리가 당연시하던 대통령제의 근본적 문제점을 성찰할 시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