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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Jan 06. 2019

인생의 전환점이 언제야?

터닝포인트가 꼭 드라마틱하게 찾아온단 법은 없다

전환점(轉換點)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계기, 또는 그런 고비. 어떠한 순간을 계기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의 지점을 뜻한다. 청춘들에게는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큰 울림이 일어날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 끝이 빛이든 어둠이든 우리는 항상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우리는 평생 시간이라는 도로를 끊임없이 걷는다. 그 도로는 마치 멈추지 않는 무빙워크와도 같아서 우리의 자발적 걸음이 아닌 등 떠밀리듯 갈 수밖에 없다.


같은 시간 속에 살아가는 우리지만 서로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좋은 집에서 호화롭게 사는가 하면, 누구는 여전히 허덕이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럴 때마다 나는 초등학생 때 방학 직전 만드는 생활계획표가 생각나고는 한다. 분명 미리 만들어져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지금 이런 인생이 만들어져 있다고 해서 계속 이러한 삶이 이어간다는 보장이 되어있지 않다.

무빙워크

터닝 포인트라고 전부 좋은 말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사전에 등록된 뜻만 보아도 무언가 상황을 바꾸는 계기일 뿐, 그것이 위대한 도약의 발판이 될지 추락하는 늪이 될지는 알 수가 없다. 현재 잘 지내고 있다고 자만하지 말며,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터닝 포인트는 언제 오는 것일까? 물론 사람의 인생이 다른 만큼 찾아오는 전환점의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누구는 아주 어렸을 적, 누구는 아주 늦을 적에 오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말, 그 기회는 준비된 자가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순간은 아주 많을 것이다. 다만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혹은 전환점이란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거나.



터닝 포인트란 것이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예상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이유가 바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비슷한 시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기가 바로 사춘기를 지나는 청소년 시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전환점으로 많은 변화를 찾아오고는 한다. 대부분 부모님과 친구 혹은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난다. 청소년기는 특히 위태로운 외줄 타기 같이 위태로운 시기이므로 조금의 푸시에도 가져오는 영향력은 짐작할 수 없이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인생의 갈피를 잡는 큰 틀을 생성하는 과정이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다음은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갈 시즌에 한번 찾아온다. 역시 찾아오는 계기는 대학 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많이 고민하기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는 큰 틀 안에서 조금 더 사회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일들에 관한 세세한 고민이 시작된다. 말 그대로 자신의 전공,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건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진로를 결정한다. 그 안에서 찾는 전환점의 변화가 대부분 평생을 가져갈 수도 있다. 꼭 이때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시기인 대학 입학, 졸업, 휴학 시즌에 많이들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결혼이 자신의 전환점이 되기도 하며 누군가는 자식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터닝 포인트가 되는 순간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나 같은 경우는 어쩌다가 시작한 취미생활에서 한 강사를 통해서 얼떨결에 들은 이야기가 그동안의 내 생각들을 한 번에 물갈이시키는 일이 발생했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서 오는 것도 한 가지의 형태에 불과하다.


20대 초반의 청년 둘에게 생각지도 못한 아이가 생긴 사건이 있다. 사회초년생, 어쩌면 아직 사회에도 나가기 전인 그들에게 이만한 위기가 있을까? 아마 막막함을 넘어선 두려움이 그들을 덮쳤을 것이다. 책임지기에 집안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았다. 누군가 자신들을 손가락질하더라도 꿋꿋하게 버티며 오로지 자신의 아이만을 바라보고 키웠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꽤나 부족함 없이 오히려 넉넉하게 아이를 키웠으며 결혼식까지 마쳤다. 그리고 지금은 둘째까지 낳고 여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사실 이것은 가까운 내 친구의 이야기다. 녀석에 집에 자주 놀러 가 저녁식사를 하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술에 취해 녀석에게 말한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그럼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같았다.


“저기 저 자고 있는 애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고 전환점이야.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는 저 녀석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그게 더 힘들더라. 내 인생은 저 아이를 낳고 시작됐어.”


취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녀석은 진심이었다. 후회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말하는 표정이 아름다웠다. 우리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다만 우리가 놓치는 이유는 어쩌면 그것을 인지하고 내가 방향을 틀었을 때의 주변의 시선과 마주할 커다란 벽들을 겪기도 전부터 덜컥 겁부터 먹어버리기 때문이지 않을까?


멀리서 보이던 담벼락 같은 것들이 뒤를 돌고 정면으로 맞섰을 때, 생각보다 작아 넘기 쉬운 돌담일지도, 혹은 이미 내 키가 훌쩍 커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은 직접 시도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인생은 모험이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이 항상 옳은 길만은 아니다. 방향을 알려줄 수는 있어도 그것을 들고 나아가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의지로 걸어가는 것에 조금은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결국 끝에 나오는 목적지는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주는 거름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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