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또 뭘 포기하면 더 행복해질까?
견물생심(見物生心) 어떠한 물건을 보고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으로 소유욕에 경계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알다시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인간의 욕심은 채울 수가 없다. 없으면 갖고 싶고 있으면 더 갖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소유하고 싶은 것은 넘쳐나지만 자신이 잃는 것은 죽어도 싫은 게 사람 본성이다. 살기 위해서 일하고 먹고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어떻게든 살아지는 이 삶을 어떻게 더 풍요롭게 후년을 준비하느냐가 가장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N포 세대. 청년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취업시장에 나온 신조어로 어려운 사회적 상황으로 하나둘씩 포기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처음으로 나온 말은 삼포세대다.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다. 치솟는 집값과 물가의 거침없는 상승에 비해 너무나 불안정한 자신들의 일자리. 결국 자신이 이루어야 할 무엇인가를 하나씩 내려놓는다. 시간이 지나도 이 현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더욱 악화만 되어 갔다. 오포 세대(삼포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칠포 세대(오포 세대+꿈, 희망)의 것들이 새로이 나타났다.
단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 처음은 현실적인 벽에 부딪힘으로 물질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듯했으나 결국은 심적으로 자신을 지탱해줄 기둥들이 뽑혀 나가는 것을 느꼈다. SNS가 세상에 드러난 뒤로 우리는 자신의 모습과 상황들을 거침없이 누구나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조금만 뒤적이면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누군가. 나와 전혀 연관 없는 남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런 사진들을 바라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들만 올라오는데 왜 N포 세대라는 말이 나왔을까? 부족함 없이 번지르르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들도 사실은 어떠한 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지는 않았을까.
지금보다 더 나아진 상황을 위해서 포기를 한다면 인스타의 사진들처럼 아름답거나 혹은, 아름다워지는 중이거나. 못해도 전보단 나아진 삶에 작은 만족감은 갖고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행복이라는 이상향과의 거리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번 돈을 저축해서 뭔가 나만의 것들을 하나씩 준비함의 이유는 단 한 가지, 행복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고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고 앞으로도 더 행복하길 바란다.
N포 세대란 말 자체가 몇 가지의 행복들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포기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우리가 쫓는 것이 미래의 행복함이 아니라 현재의 안도감이란 말이다.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곧 현실이고 앞으로도 이어질 미래란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원하던 무언가를 포기하고 취업한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비슷한 모습들이 보인다. 주인 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 해야 하는 일은 강제성을 띄운다. 일의 주체가 내가 아닌 억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훗날에 좋은 결과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든 변명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어필하기 바쁘다.
반면에 아직 뭔가 이루진 못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했고 찾아낸 것이기에 자발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즉, 삶의 주인이 내가 된다는 것이다.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지금의 일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를 설명하는 차이를 보인다.
N포 세대들이 취업에 성공하고 살아가면 분명 책임과 의무는 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생에 행복은 결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장에 상황이 좋지 않다 해서 행복 추구권을 내 삶에서 삭제하는 것은 곧, 삶을 삭제하는 것과 같다. 잠시 시간을 두고 가슴속에 묻어 둘 수는 있어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분명 힘들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