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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Jun 11. 2019

뻔한 한 마디

식상해도 듣기 좋다

아침부터 배가 아팠다. 먹은 것도 전혀 없는데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에 절로 미간에 주름을 지어졌다. 차려진 아침 밥상은 누구 하나 부럽지 않을 만큼 맛있는 반찬들로 가득했지만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입으로 들어갈 리 없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날씨가 애매해졌고 그에 따라서 뭘 입을지 매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거 입으면 덥고, 그렇다고 저걸 입자니 추운 것 같아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출근 준비를 마친 후, 휴대폰으로 날씨를 검색했다. 오늘도 여전히 미세먼지가 말썽이라며 경고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필수적으로 일회용 위생마스크를 꺼내 착용한다. 마스크 때문에 안경에 습기가 계속해서 찼고 숨 쉬는데 답답해 미칠 지경이지만 그렇다고 이 먼지들을 마시고 싶지는 않다. 힘겹지만 참고 억지로 숨을 조심스레 마셔본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뿐인데 하루의 에너지를 모두 소비해버린 기분이다. 불과 일어난 지 2시간도 되지 않았고, 여전히 피곤에 찌들어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은 벌써 집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다. 예열되던 짜증이 치솟기 시작할 즈음 나는 회사에 도착했다. 앞으로 몇 시간이나 일을 할 생각에 더욱 지치는 나를 느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순간 멈칫하게 만드는 인사가 귓가에 들렸다. 입구를 지키시는 경비아저씨의 인사였다. 밝은 웃음으로 인사하시는 모습과 대사가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같이 느껴져 어색하면서 뭔가 오글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신기한 것은 어느새 나도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아침 인사 하나에 짜증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기분이 전환되니 꼬였던 하루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말 한마디에 나의 하루가 달라졌다. 말이란 것이 그저 툭 던지더라도 돌아오는 영향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미지수인 특성을 갖고 있다. 말은 소모성을 띄지 않으니 내가 뱉는다고 해서 닳아 없어지거나 당장에 손해 보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차 신중을 가하지 않게 되며,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상황에 이른다. 비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그가 갖는 영향력을 애써 무시해버린다.

 

그냥 건넨 인사 하나 뿐이라도 한 사람의 하루를 완전하게 뒤바뀔 만큼 말은 소중하다. 가볍게 뱉어진다 해서 가벼운 말이 되지는 않는다. 누군가 장난으로 던진 말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말이란 것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혹은 죽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의 위험성을 방치한다.

 

말이란 장전된 권총과도 같다.
-사르트르-

 

누군가 처음 만나는 자리일수록 말을 아끼게 된다. 섣부르게 내뱉지 않으며 혹시나 실수하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천천히 뱉는 모습을 보이며 이미지를 구축해나간다. 불편한 자리이니 만큼 나를 숨기기 바쁘다.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과 함께하는 자리는 가식을 버리게 된다. 조심성은 떨어지고 툭툭 뱉어지는 말들. 돌이켜보면 친하면 친할수록 함부로 말을 뱉었다.

 

정작 소중한 사람에게 더 막대하고 사랑하지 않았다. 남에게 달콤한 말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가장 아끼고 소중한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무심한 사람으로 나를 만들고 있었다. 안일한 생각들로 던진 말들로 나의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에게서 지쳐버린 그들이 언젠가 나를 떠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편한 사람이라고 해서 쉽게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니 말 또한 쉽게 내뱉어서도 안 된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야 한다. 평범하다고, 식상하다고 굳이 마음속에 묻고 꺼내지 않았던 말 한마디가 어쩌면 알지도 못하게 조금은 멀어진 우리의 사이를 다시금 가깝게 이어주는 오작교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꺼내기 민망하지만 오늘만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은 고백을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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