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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학 Aug 05. 2020

나에 대한 정의

"나"는 과연 누구일까

 삶은 하나의 짧은 일정과도 같다. 마치 누군가 여행 플랜이라도 짜 놓은 것처럼 우린 주어진 시간의 굴레 속에서 같은 레일 위를 달리다가 생을 마감한다. 이런 찰나의 순간을 살면서 우린 수없이도 많은 질문을 듣기도, 혹은 하기도 하며, 때로는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묻기도 한다. “Who am I?” 그리고 그 질문에서 나오는 대답이 곧 날 평가하고 정의한다.


 당신이 누구냐는 물음에서 누군가는 “아직 학생입니다.”,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같은 대답으로 직업을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답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가면’이다.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얼굴 위에 얹어 생활하고 그것을 벗거나 조금 다른 가면을 쓰고 있으면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본연의 내 모습이 아닌, 남에게 보이는 가면이 곧 내가 되는 것일까?     


 사실 인생을 살면서 하나의 가면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써야 하는 가면이 따로 있는가 하면 사람에 따라서 써야 하는 가면도 다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가족과 있는 내 모습과 친구들과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다르듯이 말이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에 가로등 불빛을 따라 쓸쓸히 걸을 때의 내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아주 낯선 광경일 것이다.


 나는 평소 털털하고 정이 많아서 때로는 멍청할 정도로 착해 빠진 것도 단점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비슷한 것일까. 사람들이 착하다, 쿨하다 계속 얘기하니 자연적으로 난 그런 사람이라고 내면에서 정의해버렸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더라도 화를 내지 못했고, 부당한 상황에 놓여도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겨났다. 그런 모습이 나였고, 그래야 하는 것이 맞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 가면이 장점처럼 보일 수 있도록 보다 더욱 다정하고 착한 모습을 어필했고, 한참의 노력에 끝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가 많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한 날들만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에 자주 싸우기도 많이 했다. 별것도 아닌 것에 언성을 높이고,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는 내 모습이 말 그대로 찌질이였다. 그런가 하면, 바보처럼 하루에 수천 번이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히히덕거리는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가면을 만들고 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점차 완전히 가면을 벗은 나의 얼굴은 조금씩 지워져 갈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하나의 섭리일 뿐, 절대 안타까운 일이 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상처투성이 발처럼, 혼자서는 살아남기에 너무나 힘든 세상에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적응하겠다는 최선의 발버둥, 나는 이러한 행동을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다른 시선에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도 그것은 결코 나 자신을 버리는 행위가 될 수 없다.     


 꼭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끼워 넣으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을 찾는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간다. 누구에게는 한없이 착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칼같이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가 있다. 친구들에게는 쿨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질투 가득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전혀 다른 사람에게 맞춰지는 전혀 다른 모습.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걱정 속에서 밤을 뒤척이는 소심한 나의 본모습. 이렇듯 나란 존재는 특정한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다. 그 많은 모습 중에서 진짜 나를 찾아라? 사실 질문 자체가 웃긴 이야기다. 조금씩 다를 뿐, 꼭 하나만이 진정한 내가 될 수 없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의 질문의 해답은 “나”의 외적인 모습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자아 성찰로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의 발걸음을 떼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러한 여행에서 돌아오는 결과는 두 가지다. 자신을 찾고 자신감을 얻거나, 그저 지금의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더 뚜렷하게 확인하고 낙심하는 것.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는 것은 어떠한 가면을 쓰느냐가 아닌, 어떠한 가면을 쓰더라도 그 가면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억지로 보이는 가식적인 모습을 연기하느라 애쓰는 인생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행동하며, 인생의 주체가 되어 직접 그 가면을 착용하는 것에 있다. 생각의 방향을 올곧게 펼쳐 나간다면 어떠한 모습의 나라도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다.




인스타그램@yha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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