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많은 것을 이루었고,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직립보행, 도구 사용 등의 실용적인 이유들도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서로 간의 의사소통. 즉 대화가 가능하다는 차이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다른 동물들 간에 소통하는 방법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얼마 큼의 의사소통을 하고 행동을 옮길 수 있는 높은 지식을 갖고 있느냐는 각자의 지능의 차이일 것이다. 쉽게 말하면 결국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많이 똑똑하다는 말과도 같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우리들은 많은 감정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수없는 표현방식들을 사용한다. 직설적으로 말을 하거나 혹은, 돌려서 말하거나. 몸짓이나 음악. 많은 감정을 담은 눈빛들과 같이 물처럼 형태가 존재하지 않은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한 여러 형태의 그릇들이 존재한다. 표현은 하면 할수록 관계는 견고해지고 어느새 우리는 많은 공감들을 통해 끈끈한 선들로 이어져간다.
그렇게 가까워진 관계는 아름다운 꽃처럼 향기를 뿜는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늘 안전한 것은 아니니 긴장을 풀어서는 절대 안 된다. 가까울수록 상대와의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은 더욱이 선명해진다. 터울 없이 지내는 것에 익숙해져 그것을 망각하고 스스럼없이 그 영역을 넘나들면 결국에는 선이 담처럼 높아져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가 있다.
어디선가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너무 딱 붙어있으면 좋지 않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즉, 누구보다 가깝지만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글에서는 부부를 집으로 비유했다. 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과 같은 사이가 부부다.
사실 부부는 물론이고 모든 관계가 그러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영화 <완벽한 타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누구나 개인적인 사생활이 있고, 그것을 침범하는 순간 둘 사이의 관계가 아무리 끈끈해도 서로에게 상처만이 남는 싸움으로 번진다. 사생활이란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닐지라도 결국 결과는 더 나쁜 베드 엔딩이 나온다. 영화에서처럼 나쁜 사생활로 비밀을 만들라거나 남을 속이고 숨기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생활에 적당한 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관심이 쌓이면 그것이 애정이 되지만 지나친 애정은 자칫하면 집착으로 번진다. 집착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그 화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주변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잿더미로 만드는 재앙 쪽에 속한다. 변질된 표현이 싸움을 만들고 자존감을 낮춰버린다.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집착은 멈출 수가 없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는 걷잡을 수가 없으며 지례짐작조차 할 수 없다. 너무 마음이 크다고 느껴지는 것이 무색할 만큼, 그 크기는 계속해서 커져만 가니 정말 끝이 없다는 표현뿐이다. 하지만 마음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형체들은 한정적이니 그 어떤 것도 사랑의 크기에 가져다 비교할 수 없다. 눈으로 보여줄 수 없는 답답함이 행동에 고스란히 묻어 나오고 그것이 점차 심해져 상대가 받아주기 힘들 정도의 집착이 되어 버린다.
소중한 것은 조심히 다뤄야 한다. 새 차를 뽑으면 운전을 조심하게 되고, 새끼 강아지들을 조심히 눈으로 바라보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재들은 박물관 유리관에 보관된다.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면서 정작 내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조심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적당한 관심은 사랑이지만 선을 넘으면 그것은 관심이 아닌 간섭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소중한 인연을 한 걸음 조심스레 떨어져 바라보는 것도 그것에 대한 배려이자 존중의 표현이 될 것이다.
남과 교제할 때, 먼저 잊어서는 안 될 일은 상대방에게는 상대방 나름대로 생활방식이 있으므로 남의 인생에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헨리 제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