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일

일을 하며 빛나는 사람들 8

by 두유식빵

화가를 만나다

KakaoTalk_20250513_105707179.jpg 등불을 넣은 그림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요. 작가로 활동하면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것만으로는 아직 삶을 영위하기가 힘들어서 근로 소득을 벌고 있는 김병준입니다.


그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되게 좋아했어요. 미술관 같은 데 가서 엄마한테 ‘이건 느낌이 이래’ 이렇게 말할 정도로 그림이 되게 좋았어요.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든 후 어린 시절에 그렸던 그림들을 봤는데 그때의 제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어릴 때는 정말 무한하게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잖아요. 그때 써놓은 거 보니까 로봇 박사가 될 거라고 쓴 후 로봇 그려놓고, 그다음 장에 ‘공룡 박사가 될 거예요.’라고 쓰고 공룡 그려놓았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그런 에너지가 떠올라서 그림을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직업적으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은 언제예요?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런 상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림으로 내가 먹고살 수 있을까?’ 그러다가 여러 기회를 통해서 작년 6월에 신라호텔 아트페어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때 제 작품이 판매되는 걸 보면서 이걸로도 먹고살 수 있겠다 싶었죠.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늘 제가 먼저 행복해야지 일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림이라는 제가 행복한 일을 찾았기에 그림으로 먹고살아보자고 그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따로 배우신 건가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초등학교 혹은 유치원 때 배우잖아요. 저도 그게 다입니다. 따로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대학에서 전공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다만 전공이 경영 마케팅이니까 디자인 툴 사용하는 건 배웠죠. 그런 걸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도 관련 직종이니까 편하게 접근하게 된 게 아닌가 해요.

주로 어떤 매체를 사용해서 작업하세요?
저는 아크릴을 사용해요. 보통 유화는 기름을 가지고 그리는 그림이고요. 아크릴은 물로 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쓰는 물감이에요. 그래서 아크릴의 장점은 빨리 마른다는 거예요.


유화는 한 번 그어 놓으면 일주일이 돼도 안 말라서 물감을 올리고 또 올려요. 대신에 색깔이 되게 깊게 나오는 장점이 있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은 하겠지만 아크릴로 깊은 바다를 구현해 내거나 그러기엔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도 빨리 마르니까 저같이 성격이 급한 사람들한테는 아크릴이 적격이에요.

그림을 처음 그릴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많이 얻나요?
저는 음악에서 많이 얻어요. 사람들이 음악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음악과 관련된 감정들이 떠오르면서 무언가가 머릿속에 이렇게 팍팍 떠올라요. 색이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형체가 떠오를 때도 있고 아니면 어떤 이야기가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거죠.

예를 들면 어떤 곡이 있나요?
최근에 영감을 준 곡은 두 개가 있는데 태연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꿈>이라는 노래랑 아이유의 <Love wins all>이라는 노래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제일 좋아하는 색 조합은 무엇인가요?

저는 노란색과 파란색을 많이 써요. 늘 파란 계열과 노란 계열 물감만 따로 더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노랑하고 파랑이 계속 들어가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 두 색이 제 눈에 제일 편안하고 좋은가 봐요.


병준님만의 작업 루틴이 있을까요?
작년까지는 잘 지켰는데, 화요일과 목요일은 작업하는 날로 딱 고정 요일을 정해놨잖아요. 그래서 그땐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약속도 안 잡고 작업을 하는 루틴이 있었죠. 점심도 시켜 먹어 가면서요. 근데 올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루틴이 허물어지더니 이제 왕창 망가진 상태예요.

그러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 어느 정도 기간이 걸려요?
작품마다 달라요. 어떤 작품은 되게 크기가 커도 한숨에 완성되기도 하고, 어떤 그림은 정말 한 달이 지나도 완성이 안 돼요. 그래도 아크릴이니까 한 작품에 한 달 정도 걸려요. 저는 매일 그리는 게 아니라 화요일과 목요일만 그리는 거니까 통상적으로 8번 만에 완성이 되는 거죠.

그림 그릴 때 특징이나 습관 같은 게 있을까요?
음악을 틀어 놓고 하고, 저는 한 번도 앉아서 그린 적이 없어요. 늘 서서 작업해요. 앉아서는 뭔가 안 돼요. 그리고 저는 막 요만한 거를 세세하게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보통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서서 리듬을 타면서 그리죠.

개인 작업실이 아닌 화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시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할 때는 없으신가요?

저는 혼자는 못 그리겠어요. 혼자는 너무 고독하더라고요. 혼자 고독하게 본인만의 작품 세계를 완성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저는 혼자 하면은 외로워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그림도 외로워요. 옆에 사람들하고 막 떠들면서 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저는 혼자 그리지 않아 절대 혼자 그리진 않아요. 지금까지 혼자 그려본 적이 없어요.

여러 사람과 한 공간에서 그리다 보면 그림 그리다가 웃겼던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림을 늘 여럿이서 그리다 보니까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겨요. 한 번은 제가 전시 일정 때문에 그림을 급하게 마무리해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원래 급하게 그리면 물감이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색이 또 올라가고 쌓이면서 점점 똥색이 되거든요. 제가 그날 치타를 그리고 있었는데 급하게 그리니까 무늬가 무슨 홍역 걸린 치타 같더라고요. 제가 봐도 이상한데 사람 속도 모르고 갑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박장대소하는 거예요. 그때 그림도 급하게 가지 말고 차근차근 가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어요.

그림 그리다가 막힐 때는 어떻게 풀어요?

그림 그릴 때 혼자 그리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막힐 때는 다른 사람들의 머리를 빌려요. 가끔 웃겨요. 완성도 안 된 저의 조그마한 그림 앞에서 토론이 벌어지거든요. ‘여기에는 이 색깔이 어떠냐, 저기에는 뭐가 들어가면 참 좋겠다.’ 이렇게요. 그러다 보면 제 머리에서는 새로운 게 떠오르더라고요. 맨날 본인들 의견은 언제 들어줄 거냐고 이럴 거면 왜 물어봤냐고 하시지만 토론을 통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니 감사하죠.

병준님 그림에 항상 나비가 있어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제 그림의 시그니처는 나비예요. 나비는 애벌레로 있다가 번데기 과정을 거쳐서 나비가 돼서 날아가잖아요. 제가 10년 동안 쌓아왔던 어떤 꿈을 버리고 새롭게 작가로서의 꿈을 걷고 있는 거니 그 과정이 애벌레였고 10년의 세월이 번데기 과정에 녹아들어 지금의 그림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해요. 그래서 제 그림에는 다 나비가 그려져 있습니다.

요즘 관심 가지는 주제나 소재는 무엇인가요?

삶은 우리의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데, 선택할 때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단 말이죠. 그 단계에서 자그마한 불빛이라도 있으면 그걸 의지해 가면서 선택하는 데 좀 편하지 않을까 해서 등불이라는 소재를 그림에 넣기 시작했어요. 이번 5월에 등불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거예요.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세요?
저는 힘들어지면 골방으로 숨는 스타일이에요. 좋아하는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이랑 노는 게 아니라 점점 안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혼자 이게 다 소화될 때까지 그 안에서 안 나와요. 그게 극복하는 방법 같아요. 힘든 거는 얘기를 잘 안 하는 스타일입니다.

최근 가장 마음에 들게 완성되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올 2월에 그린 여우 그림과 사자 그림 있어요. 제가 의도한 대로 잘 표현되어서 그 두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근데 아쉽게 팔리진 않았어요. 작가의 마음에 드는 그림과 관객이 마음에 들어 하는 작품은 다른가 봐요. 너무 판매 지향적인 작가 같네요.

화가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예요?
제 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볼 때죠. 제 작품을 샀을 때가 아니고 그냥 봐주기만 했을 때요. 보면서 좋다든지 너무 슬프다든지 뭔가 느꼈을 때 제일 보람을 느끼죠.

그러면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제 작품을 아무도 안 볼 때요. 작년 12월 서울 아트쇼 때 정말 반응이 안 좋았어요. 서울 아트쇼는 국내 최고의 아트페어인데 거기서 외면당한 거죠. 너무 선택지가 많았다는 것도 분명히 있었을 거고, 그때 화풍을 바꿔봤기에 그 작품들은 평상시 제 화풍은 아니었어요. 이제 그런 화풍으로 그리진 않아요. 저는 정말 좋아서 그렸는데 관객들이 안 본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죠.

병준님의 그림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때 기분이 어때요?
되게 만감이 교차해요. 이 그림들이 다 제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제 자식들을 밖에 내놓는 순간인 거잖아요. 이걸 제가 완성했지만, 붓을 딱 놓는 순간 이 그림은 제 것이 아니라 오롯이 얘 거거든요. 이제 그림이 관객과 소통하는 거예요. 그런 기회를 만드는 건 뿌듯하고 굉장히 좋죠.

그림이 판매되는 순간에는 그 그림과 함께 했던 게 주마등처럼 지나가요. 이 그림을 어떻게 구상했고, 어떻게 그렸고, 그때 감정이 어땠고, 또 어떤 사람들하고 같이 그렸고, 여기까지 가지고 나와서 이 사람한테 간다는 것들이요. 그래서 처음 그림이 팔렸을 때 한편으로 아까운 것도 있었죠. 지금은 못 팔아서 안달이지만 처음에는 그랬어요.

작가로 사는 삶도 바쁠 것 같은데 갤러리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작가 활동을 하면서 대한민국 작가들이 얼마나 힘든 현실에 처해 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옛날 버릇이 나온 거죠.

‘내가 작가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해서 제가 지금 소속된 갤러리 대표님께 일을 배워서 갤러리 대표 일을 하면서 작가들 매니징 하는 일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판매와 갤러리 운영에서 수입을 주로 얻나요?
갤러리 수입은 지금은 거의 없는 상태이고 그림도 판매가 돼야 하는데…. 근로 소득이 다죠. 근로 소득으로 이 모든 걸 다 때려 붓고 있는 거예요. 참 가슴 아픈 일이에요.

병준님에게 일이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거요. 저는 일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요. 저한테 일이란 어떤 목표 의식인 거예요. 목표를 세웠기에 살아가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요. 그래서 저에게 일이란 제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어떤 힘이에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전시 같은 게 있나요?
올 12월에 제가 싱가포르 아트페어를 나가는데 그건 제가 갤러리 소속 작가로 나가는 거예요. 그거 말고 제 갤러리에서 제가 소속 작가들을 데리고 3년 안에 해외 아트페어에 나가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화가라는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그림을 그려서 판매하며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림이라는 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나 자신과 대화하는 거죠. 자신이 만드는 세계에 남이 끼어들어서는 안 돼요. 그림을 나와 대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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