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으로 제품을 소개하는 일

일을 하며 빛나는 사람들 9

by 두유식빵

카피라이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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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모든 말과 글에서 책갈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전) 카피라이터입니다.

처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던 계기가 궁금해요.
고등학생 때 아디다스 광고 중에 장대 높이 뛰기 선수 이신바예바가 나오는 게 있었어요. 그 선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그 짧은 영상에 제가 홀린 듯한 경험을 한 뒤 ‘저런 거 나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에 카피라이터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첫 카피 쓸 때 기억나요? 어땠어요?
인턴 때, 속 쓰릴 때 먹는 겔포스 광고에 썼던 카피가 기억에 남아요. 팀장님이 처음으로 칭찬해 주신 카피거든요. 당시 유행했던 포켓몬스터에서 ‘마그마’ 캐릭터를 활용해 위산을 내가 다 ‘막으마’라는 카피가 재밌다고 굉장히 좋아해 주셨어요.


팀원들이 점심시간마다 포켓몬을 수집하러 나갔을 때, 저는 봄에 핀 꽃을 더 유심히 보는 편이었어요. 그때 사수분이 ‘윤정씨는 포켓몬 관심 없어요?’라고 걱정해주시기도 했는데, 정작 그걸 소재로 아이디어를 가져간 건 저였다는 게 아이러니였어요.


동시대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 현상을 내가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관심 가지고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어요.

카피라이터가 되겠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이 꿈이나 직업에 대해 특별한 코멘트를 받진 않았어요. 대신 카피라이터가 된 후에 친구들 모임에 매번 못 나가고, 낮밤 없이 일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남자친구가 ‘요즘 누가 그렇게 노예처럼 일하냐. (저녁은커녕) 밤도 없는 인생을 사냐’ 이런 반응이었어요.

맞아요. 인턴 생활하실 때부터 항상 너무 바빴던 거 같아요.

제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이 일보다 쉬운 일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쏟아붓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무렇지 않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근데 나이가 들고 체력도 20대가 아니고 남자친구가 생겨서 함께하는 시간도 따로 만들어야 해서 이제는 그런 시간과 에너지가 확보되지 않네요.


그럼 지금 돌아봐도 이 직업을 잘 선택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온에어 된 광고를 보고 사람들이 좋아해 줄 때요. 사실 제 광고 카피를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은 많이 못 봤어요. 그때는 일이 너무 많아서 밖에서 제 광고가 온에어 되어도 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에 그런 실질적인 반응을 경험하지 못했거든요.


대신 TVCF라는 광고 사이트에서 광고인들이 ‘이거 진짜 좋다’ 이런 댓글을 달아주거나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많이 봐줘서 조회수나 댓글이 많을 때 정말 기분 좋았죠.


회사 다닐 때는 일과가 어땠어요?
출근 시간은 항상 똑같고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어요. 그리고 대기 시간이 되게 많았어요. 녹음실이나 3D 편집실에서 편집하면 계속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때 새로 나온 광고를 찾아봤어요. 주말에도 하루는 항상 출근했고, 바쁠 때는 이틀 다 나가기도 해서 쉼을 별로 가져보지는 못했어요. 일과 집의 반복이었네요.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퇴근할 때 택시를 탔어요. (택시는 12시 넘어야 탈 수 있다는 거)

그때 윤정님은 늘 지쳐 있었어요. 이렇게 회사에 오래 있으면서 만들던 카피가 어떤 과정으로 나오는지도 궁금해요.
어떤 기업에서 이런 광고를 할 거라고 공고를 올리면 광고 회사들이 그 건에 관한 경쟁 PT를 해요. 그래서 수주를 하게 되면 그때 제안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실행하죠. 처음 경쟁 PT 준비할 때 아이데이션(Ideation)이라고 아이디어를 내고 카피도 내는데요. 막상 실행할 때 광고주가 의견을 너무 많이 첨부해서 원래 카피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많아요.

광고주가 원하는 방향과 윤정님이 생각하는 방향이 다를 때 간극을 좁히는 법은 뭐가 있었나요?

무조건 숫자로 밀어붙여야 해요. 어떤 기관에서 조사했더니 요즘 1위는 이거다, 사람들이 좋아요로 이만큼 반응했다, 유명 프로그램에서 이런 인용구가 나왔다, 아니면 동시대 유명 인사들이 이런 걸 했다는 걸 데이터로 눌러버리는 거죠. 그게 아니면 사실 방법이 없으니까요.

회사에서 카피라이팅 말고도 담당했던 업무가 있어요?
조금 다르게 작업한 거는 포스코 기업 광고요. ESG 광고라고 환경 캠페인을 하는 건데 6~8분 정도의 장편 드라마 3편을 만드는 거였어요. 스토리 기승전결을 끌고 가면서 사이사이에 배우가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제스처나 드립 같은 것도 구상하고, 그 공간이 실제 포스코 건물이라 공간의 조형물을 이용한 아이디어도 내던 복합적인 작업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방송 작가 같은 경험이었죠. 그 긴 거를 누가 보나 했는데 제가 만든 광고 중에 조회수와 댓글이 제일 많았어요. 사람들이 스토리텔링을 진짜 좋아하고 ‘이런 게 콘텐츠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에요.

영감이 막힐 때는 어떻게 뚫었어요?

일단 가까운 친구들이나 남자친구에게 물어봐요. 두 번째 접근은 ‘광고주가 어떤 이유에서 이 문제를 지금 냈을까?’를 많이 조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데이션 하면서 계속 이 아이데이션의 궁극적인 목표가 뭔지를 상기하려 했어요. 그래도 아이디어가 안 풀리면 달리기도 하고 야근도 하고요.

카피 쓸 때 많이 참고하거나 자극받은 매체는 뭐예요?
팀원들의 드립이요. 기다리는 시간에 책도 많이 읽었는데, 생각보다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적은 잘 없고 팀원들의 드립이나 회의, 아니면 친구들에게 ‘이 아이디어 어때?’라고 물었을 때 친구들이 거기에서 난 이걸 이렇게 생각한다는 그런 것들에 자극받는 편이에요.

‘카피는 그냥 짧은 문장 아니야?’ 그런 종류의 말을 들었을 때 어때요?

짧게 써야지요. 근데 하나의 제스처일 수도 있고 하나의 표정일 수도 있는데 그거를 문장이라고 하면 되게 좁은 것 같아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글이라는 형식으로 나올 확률이 높은 거지 그게 반드시 말이거나 글이어야 되는 건 아니거든요.


카피면 아이디어를 글로 담는 거고 아트면 그것을 좀 더 아트적으로 담아내는 거예요. 오히려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광고 카피에 감정을 담는 게 가능하다고 봐요?
실제로 사람들이 감정이 없는 글을 읽었을 때와 감정이 많은 카피라이터가 쓴 글을 읽었을 때 반응하는 것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카피라이터 중에 슬픈 광고 만들 때는 진짜 슬픈 음악 들으면서 아이데이션하고 글 쓰고, 기쁜 거 만들 때는 즐거운 음악 들으면서 작업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럼 요즘 카피라이팅 트렌드 중 윤정님이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나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말장난이요. 예를 들어 가벼운 맥주라는 콘셉트로 라이트 맥주를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고 해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라임이 ‘라이트, 하이라이트’인데 하이라이트와 가볍다는 매칭이 안 되잖아요. 말장난이 카피의 기법이 될 수는 있지만, 그냥 라임만 있는 그런 건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해요

본인이 쓴 카피 중 제일 애착 가는 것은?
온에어 된 건 아닌데요. 포스코가 철강 기업에서 신소재 기업으로 바뀌었다는 걸 슬로건으로 알려주고 싶다고 해서 ‘철이 지난 포스코 신소재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슬로건을 쓴 적이 있어요. 위트도 있으면서 그 기업의 본질적인 변화를 잘 반영했던 카피라고 생각해 그 카피를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해요.

지금 생각해도 좀 아쉬웠던 카피도 있어요?

팀장님의 취향이 아닐 때 아쉬운 순간이 많았어요. 여성 광고인데 팀장님이 남자분이면 여성들이 공감하는 것을 택할 확률이 낮아지거든요. 그래서 팀장님을 설득하지 못할 때가 제일 아쉬웠어요.

그럼 윤정님이 생각하는 좋은 카피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어떤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카피요. 그게 재미나 여운이 될 수도 있고, 사색할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마음이 짠해지는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 시대를 반영하는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들어가 있으면 그게 진짜 최고의 카피가 아닐까 해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하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거요. 광고 만들 때 카페에서 옆자리 커플이 나눈 대화를 아이디어에 써먹은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때 학교에서 그냥 외워야 했던 시나 내가 경험한 정말 사소한 것들 그런 것들도 다 콘텐츠가 될 수가 있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저는 노력을 아주 많이 하는 사람에 속하는데 이 업계에는 제가 생각했던 노력의 정의를 깨 주는 사람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업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광고주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다 보니 되게 힘든 점이 많은데도 그것들을 다 프로페셔널하게 소화해 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광고주가 18차까지 아이디어를 요청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것을 다 버티고 오래 한 사람들을 보면서 노력에 한계가 없다는 것도 배웠어요.

사람들이 광고를 믿지 않는 시대에 카피는 어떻게 신뢰를 좀 줄 수 있을까요?
카피가 잘 전달되는 진실이라고 하잖아요.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그 제품의 약점이나 단점은 사실 말하지 않으니까요. 근데 그런 부분은 리뷰를 보면 다 나오기 때문에 광고의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아요. 결국 감출지언정 광고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동료 카피라이터들과 일할 때 즐거움이나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전부 다른 배경과 장점을 가졌다 보니 같은 것을 고민해도 생각의 과정이 다른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어요.


고충은 취향이 다 다른 거요. 팀장님이 이걸로 작업하자 해도 본인이 못 받아들이면 같이 작업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워낙 자기 의견이 뚜렷한 친구들이 업계에 많다 보니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려웠고 같이 호흡할 때도 힘들었어요.


윤정님이 좋아하는 브랜드나 광고도 궁금해요.
나이키 제일 좋아해요. 제가 러닝하면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와 제품이기도 하고요. 나이키는 한 선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나 가장 힘든 순간을 되게 잘 팔로우업해요. 그리고 그 선수의 베스트 타이밍에 그 광고를 내보내는 거예요.

스포츠 팬들이 봤을 때 그 광고의 임팩트가 더 커지는 거죠. 그런 광고가 진짜 살아있는 광고라고 생각해서 나이키 광고를 제일 좋아해요.

평소에 어떤 말이나 문장 같은 걸 보면 이거 진짜 잘 썼다고 느끼게 돼요?
첫 번째는 발상이 남다르다고 느끼는 거, 두 번째는 표현이 처음 보는 것, 세 번째는 그냥 피식하게 되거나 귀여운 표현요.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직업에 뜻밖의 아쉬움이 있나요?

개인 시간을 진짜 많이 못 가진다는 게 있었고, 아웃풋을 되게 많이 내는 직업인데 인풋을 채울 시간이 없다는 거요. 쉴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인풋을 채우겠어요.

평소에 생활할 때도 언어적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쓰나요?

부정적인 표현을 쓸 때 최대한 조심하려고 해요. 한 번은 제가 옷집에서 “키가 작은 편이라, 다리가 길어 보이는 색상이 있을까요?’라고 점원에게 말했더니 그분이 ‘고객님이 아담하신 편이면 이 바지는 어떠세요?’라고 대답하는데 별거 아니지만 말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달까요.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의미의 말이라도 상대에게 다른 인식과 감정을 줄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매번 말을 예쁘게 하지는 못해도 상대방을 불쾌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말은 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윤정님이 일하면서 점점 중요하게 느꼈던 능력이 있다면?

저는 아이디어 낼 때 레퍼런스를 최대한 덜 참조하는 것을 중요시했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모르게끔 잘 베껴오면 되는 거지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그다음 하나는 멘탈이 나갈 때가 되게 많거든요. 내 아이디어가 한동안 픽이 안 될 수도 있고 야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럴 수도 있고 경우의 수는 진짜 많아요. 근데 그럴 때 내가 평화를 유지할 방법이 있어야 해요. 저는 그냥 달리거나 잤어요.

이제 카피라이팅 말고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있나요?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카피라이터 할 때는 책 읽고, 영화 보고, 전시회 가고 이런 걸 수집하듯이 했거든요. 언제 쓸지 모르니까 늘 밑줄 치고, 사진도 찍어놓고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는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그런 콘텐츠를 즐기고 싶어요.

이 직업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인턴을 꼭 해서 이 업계에서 나만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 빡센 업무 환경을 견딜 체력과 의지가 있는지를 한번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얘기하고 싶은 카피 한 줄이 있다면?
이 질문 딱 들었을 때 나이키 ’Just do it’이 생각이 났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너무 많이 고민하기보다는 잘 되든 안 되든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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