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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화 Jun 15. 2024

라벤더 꽃 보다 아름다운 미소로 행복한 여행

휴일을 앞둔 저녁 8시.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걷기에 나섰다. 하늘의 별도 불을 밝히지만 어둠을 밀어낸 가로등 덕에 호숫가 풀숲으로 난 길을 걸어도 맘에 불안은 없다. 소란스레 울어대던 가마우지도 잠자리에 들었는지 조용하다. 


찬 공기가 바람 따라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소양댐 수문을 열어 물을 아래로 보낼 때면 냉장고 문을 연 것처럼 시원하다.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순서를 정한 듯 차례로 스칠 땐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는 토닥임 같다. 의자에 앉아 자연의 위로를 맘껏 누린다.


내일은 어디라도 가볼까? 몇 주 지나지 않았건만 오랫동안 집에 갇혀 지낸 양 보상을 외치고 있다.

떠남을 위한 검색은 어쩜 그렇게 신속한지. 고성 라벤더 축제를 찾아냈다. 6월 5일부터 6월 23일까지 축제 기간이니 오늘이 첫날이다. 린이네 집에 전화해 약속 없으면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민다. 불쑥 내민 손을 덥석 잡아준다. 


느닷없이 떠났다. 늦은 봄 라벤더 꽃을 본다는 명분을 부여잡고 답답했던 일상에 바람길을 만들러 나섰다. 오늘 춘천은 30도, 고성은 20도를 예보하고 있다.


고성 라벤더 축제장 인근에 12시쯤 도착했다. 점심 식사를 먼저 하고 꽃구경을 하자고 했다. 맛집을 찾아보니 대진항의 문어 국밥이 눈에 띈다. 못 먹어본 음식이라 궁금하다. 30분 정도 달려왔는데 재료 소진으로 내일 오란다. 당일 일정이라 내일은 없는데. 인터넷 맛집 검색 기능은 우리를 편하게 맛난 집으로 안내하지만 이른 재료 소진으로 허탕도 치게 한다.


먼 거리를 왔으니 주변 식당에서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몇 걸음 옮기는데 생선구이와 찜 요리를 하는 식당이 눈에 띈다.  ‘쌍둥이네 식당’. 허기도 지고 큰 기대 없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생선찜은 조리시간이 필요해 예약해야만 한다니 모둠 생선구이와 순두부찌개를 주문했다. 


배추 된장국과 함께 내온 반찬이 정갈하다. 수저를 놓다 린의 맘이 된장국을 쏟았다. 모처럼 여행에 대한 기대를 한껏 담은 예쁜 옷을 입었는데 테이블 위로 번진 된장국물로 옷이 위기를 맞았다. 맘이 급해진다. 손이 바삐 움직이곤 있지만 허둥댄다. 


물수건과 휴지로 응급조치를 하려는데 식당 직원이 달려와 능숙하게 처리한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우리 손놀림과는 사뭇 다른 프로의 민첩함이다. 우리 여행의 설렘을 지켜준 직원이 고맙다. 쏟아서 미안하다는 말에 수줍은 미소로 ‘네~ 아유 뭘요. 괜찮아요. 국 다시 갔다 드릴게요.’한다. 민망함이 감사로 변한다.


생선구이와 순두부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친절한 직원의 응대가 맛을 더했다. 추가 반찬도 듬뿍 담아준다. 정겨운 인심에 미소는 기본 장착이다. 계산을 하며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했다. 주인은 '다음에 전화하고 오시면 생선찜 준비해 놓을 게요'한다. 밥으로 든든하기도 하지만 예쁜 옷을 지켜준 민첩함과 친절한 미소에 다시 찾을 맛집으로 저장한다. 


대진항 바다 위에 설치된 해상공원엔 휠체어를 탄 어르신과 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친절한 린이 아빠는 어느새 달려가 그들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낚시하는 청년들도 보인다. 순간 한 청년이 큰 고기를 들어 올린다. 멀리서 봐도 크다. 얼른 달려가 고기를 볼 수 있냐 물었더니 고기가 든 가방을 열어 보여준다. 


좀 전까지 여섯 마리를 잡았는데 다 놓아줬다는 것부터 지금 잡은 고기의 손 느낌까지 알려준다. 자리를 떠날 때 알았다. 신나서 무용담을 늘어놓은 청년은 옆에서 보기만 했고 정작 고기를 잡은 사람은 말없이 미소 짓고 있던 청년이란 걸. 

고성 대진항 해상공원


라벤더 축제장인 하늬 라벤더 팜은 경기도 의왕시에서 허브 숍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2006년부터 조성한 곳이다. 허브 제품의 원료가 되는 라벤더를 직접 재배하려고 3만 3천여 ㎡에 심기 시작했다. 강원도 고성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서도 따뜻해 추위에 강한 라벤더가 자라기 좋은 기후 조건을 갖췄다.


올해는 봄기운이 낮아 라벤더 개화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는 입구 안내문이 실망하더라도 항의는 작게 해 달라는 애교로 보인다. 입장료 4천 원, 관람객이 한 풀 꺾일 것으로 기대한 오후 3시인데 관광버스에서 사람을 계속 쏟아 놓는다. 농장 안 라벤더 아이스크림 대기 줄은 길다. 다들 더위와 기다림이 당연한 듯 긴 줄에 합류한다. 보랏빛 아이스크림은 기다림과 더위를 잊게 한다. 아주 살짝. 


꽃 축제는 소녀 감성을 되살리고 카메라 울렁증을 이겨낼 용기를 갖게 한다. 꽃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문구를 넘어서는 과감함은 눈살 찌푸리게 한다. 라벤더와 양귀비, 호밀밭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 한다. 


농장 끝부분에는 길게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다. 땡볕에 달궈진 몸을 잠시 식혀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다양한 형태의 의자가 있어 편안함을 더한다. 숲 한편에 라벤더 꽃이 만발한 사진을 커다란 배경으로 세워놓았다. 포토 존이다. 개화시기가 애매한 지금을 위한 농장주의 배려다. 


축제장을 떠나는 시간에도 주차장엔 대형버스가 들어선다. 차에 라벤더 향을 가득 담고 우린 집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나선 여행으로 다리는 무겁고 피곤하지만 불면증과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라벤더 향을 충분히 누렸으니 숙면을 기대한다. 


꽃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는데 꽃보다 아름다운 식당 직원의 미소를 만난 행복한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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