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사는 큰딸 림에게 문자가 왔다. ‘상조회사에 두 계좌 가입하려는데 아빠! 어떻게 생각해?’ 두 계좌면 아빠하나, 엄마 하나다. 우선 상조회사 가입을 안 해도 된다고 짧게 답을 보냈다. 림이는 조금 무안해하며 알았다고 했다. 사실 당황스러웠다. 천천히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커피 한 잔 타서 사무실 옥상으로 갔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쨍하다. 초겨울 한기가 커피 향과 버무려져 코끝에 닿는다. 시리다. 갑자기는 아니겠지. 아마 오랜 시간 고민했을 거야. 인터넷을 얼마나 헤맸을까? '상조회사' 단어가 계속 맴돈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장녀의 무게가 추위에 움츠려든 내 어깨를 누른다.
누구에게도 장례절차를 배우지 못했다. 아버님을 서른 살 되던 해인 30년 전, 장인·장모님을 17년 전 즈음에 보내드렸다. 그땐 집안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쉼 없이 들이닥치는 문상객을 맞이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제대로 된 이별은 고사하고 슬픔의 감정조차 바쁨으로 통제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부모의 죽음은 누구나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살아계실 땐 더 입 밖으로 내놓기 어려운 주제다. 아내와 나는 의미 없는 연명치료는 안 하려고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만 동의했고 이야기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애써 외면했던 숙제를 대하니 혼란스럽다.
우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당황할까? 슬픔이 앞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를 텐데.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도, 장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도, 아빠 엄마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싶을 텐데... 슬프고 막막한 상황에 두려워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가가 촉촉해진다.
복잡한 마음으로 여러 날을 보냈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면서 말할 수 없는 힘듦을 경험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남을 알지만, 헤어지는 순간에 아이들이 덜 당황했으면 하는 마음과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할 때 죄책감을 갖지 않게 하고 싶었다.
상조회사는 막막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멘토며 불안에 대한 보험이다. 아이들이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았을 때 도움이 될 수 없다면 사전에 불안을 좀 줄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통에 비춘다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를 이렇게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장례절차를 A4 용지에 한 줄 한 줄 정리했다.
설 명절에 집에 온 아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저녁으로 무얼 먹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말로 운을 뗄까, 망설임이 길어졌다. 입에 대기만 한 찻잔이 바닥을 보인다. 아이들은 아빠의 뜸 들임에 표정이 심각해진다. 슬이는 언니랑 연신 눈을 마주치며 눈짓으로 알고 있냐고 묻는다. ‘아빠·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를 뱉었는데 벌써 목이 멘다.
숨을 크게 몰아쉬고 프린트한 장례절차를 건넸다. 지난번 림이가 상조회사 가입 이야기하고 나서 아빠가 작성해 본 거라며 담대한 척 말을 이어갔다. ‘림·슬아 아빠·엄마는 연명의료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하늘나라로 이사를 간다면’으로 시작한 이야기를 어렵게 끝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별의 아픔은 짧고 함께 한 행복은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 것 같아 속은 후련해졌다.
아이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어깨만 들썩였다. 그리고 이렇게 알려줘서 고맙다며 '사랑해요. 아빠! 엄마!'라고 말했다. 울 딸들을 말없이 안아줬다. 어느새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커버린 아이들이 대견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 많이 사랑하자. 사랑한다. 울 딸들!
<아이들에게 전한 장례절차>
소중한 딸들에게!
♡ 하늘나라로 이사를 한다면
1. 너무 슬퍼하지 마라.
- 우리가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고 헤어지더라도 우린 충분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기에 하늘나라로 떠날 때 너희들의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행복하게 떠날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2. 가까운 지인에게 연락해라.
- 핸드폰에 저장된 가족, 친한 친구, 교회 목사님께 알려라. (언제, 누가 사망했다고만 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