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형태의 사랑

story 37. 다를지라도 기어코 사랑이므로

by JJ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中

2019.11.20 (09:00) A pena - Logoso (17:00) (29km)


어젯밤 알베르게엔 그 모녀와 나, 셋 뿐이었다. 어머니는 영어가 서툴러 보였고 본래도 말수가 적은 편인 듯했다. 그녀의 딸이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자신의 이름을 벤데(Wende)라고 소개했다. 어머니의 이름은 안케(Anke)였는데,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비쩍 마른 데다가 요 근래 감기에 들었는지 혹은 원래부터 앓는 병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기침을 뱉어내는 탓에, 아니 그도 그렇지만 눈 밑으로 드리운 퀭한 그림자 때문에 정말 어딘가가 아픈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독일에서 온 이 모녀는 낯을 가리는 길고양이들처럼 아주 조용했다. 해서 어떤 사연으로 떠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침대맡으로 울리는 기침소리와 쉰 숨소리에 머릿속에서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녀들에겐 미안하지만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푹 꺼져버릴 것 같은 아슬한 눈동자를 본 이상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 편이 더 어려웠다.

어젯밤 나의 안식처가 되어준 알베르게.

밤 사이 다리가 쇠고랑을 채워놓은 듯 천근만근이었다. 뻐근해서 다리를 폈다가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찌뿌둥한 몸을 맘껏 뒤틀고 뻗고 오므리고 뒤척이고 싶었지만 2층침대 밑에서 자고 있는 벤데가 깰까 봐 최대한 조심해서 자세를 바꿨다. 그러다 다시 까무룩 짙은 잠에 들었다. 11월의 막바지에 들어서며 해는 점점 늦게 떠올랐고 짧아졌다. 그래서였는지, 혹은 어제의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순례길의 마지막이 다가와서인지 아침에 일어나기도 부쩍 힘이 든다. 준비를 마치고 작은 사이즈 홈메이드 케익과 커피를 시켜 먹고 있는데, 반대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벤데가 조용히 와서 물었다. "너 담배 있어?"


내가 잘못 들었나. 내 상식으로는 자신의 부모 앞에서 누군가에게 담배를 동냥하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적잖이 당황을 한 나머지, 나에게 담배가 있을 리도 만무하고 그렇기에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담배도 없을 텐데 그녀의 어머니 쪽 눈치를 먼저 살폈다. 혹 그녀의 어머니가 동냥 심부름이라도 시킨 것은 아녔을까, 그쪽이 거절을 할 때 하더라도 마음이 편할 듯해서였으나 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퀭한 눈으로 자신의 딸을 책망하듯 바라만 볼 뿐이었다. 동냥에 실패한 그녀는 아주 살짝 구부러진 고개로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갔고 그런 딸에게 어머니는 조용히 타이르듯 무어라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배를 구하는 것에 성공했는지 그녀는 뒤뜰에 나가 하얀 연기를 포옥 포옥 뱉어가며 담배를 태웠다. (아마 알베르게 주인에게서 얻은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유교적인 가치관을 배제할 수 있을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로선 은연중에라도 엄연히 유교사상의 예절과 규율 속에서 자랐으며 여자라서 만족해야 하는 일련의 기대치들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여자는 하얀 피부를 가져야 예쁘고, 조심성 있고 얌전해야 하며, 사회의 질서 속에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나에겐 영 재능이 없는 그런 것들. 그럴 자질조차 난 되지를 않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내심 반항을 거듭하며 얻어낸 자유분방함으로 얼마간은 제멋대로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그런 나조차도 벤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를 때리지도 혼내지도 않는 그녀의 어머니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먹구름이 낮게 깔려있는 날씨
오르막을 오르니 비와 안개가 섞여 앞도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녀들의 뒤를 밟으며 모녀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동안은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군, 말세야 말세'하며 혼잣말을 내뱉다가 나의 잣대에 벤데를 견주어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이길래. 신경숙 작가의 소설에서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글을 본 적 있다. 나는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까웠다. 소중한 만큼 상처 주고 싶지 않았고 그렇기에 항상 아슬한 선을 만들어두었던 것이다. 나의 치부를, 나의 아픔과 방황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항상 괜찮은 딸이고 싶었다. 씩씩하고 든든하며 어딜 가서 무얼 하든 잘 해내는 딸이고 싶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엄마한테 무적이고 싶었다. 아니, 무적이어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벤데 모녀는 다소 이질적이고 생경한 충격이었다. 어떤 중독들과 골이 깊은 병이 나체라면 서로의 앞에서 낱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벗어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엄마에게 어떤 치부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나는 엄마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멀고도 험한 길에 오를 수 있을까. 벤데는 기침을 토해내는 그녀의 어머니를 옆에 끼고 연신 목도리를 둘러주었고 자신의 모자와 장갑을 내어주는 대신 어머니의 물통과 짐을 받아 들었다. 벤데의 어머니는 벤데가 내어주는 것엔 극구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 말했고 무게가 나가는 것들은 뺏기지 않으려 했지만 항상 이기는 쪽은 벤데 쪽이었다. 찬 공기에 옅게 깔린 안개를 지나 걷다 보니 벤데 모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괜스레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비를 맞으며 안개를 헤치고 걷는 길

비가 지독하게도 내렸다. 긴 시간 동안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 판초는 이제 낡을 대로 낡아 고스란히 비가 새어들었다. 무늬만 남은 유명무실한 판초를 두르고 억수 같은 장대비를 맞았다. 함빡 쏟아지다가도 중간중간 구름이 비어있는 파란 하늘 밑을 지나갈 때면 반짝 해가 났다. 종일 해가 나다가 비가 오면 불평을 하지만, 하루 내 비가 쏟아지다 잠깐이라도 해가 비치면 감사하게 되는 시시하고 알량한 마음.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간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니 정말 느낌이 이상했다. 바다가 보이면 어떤 느낌일까. 걷고 걷고 또 걸으며 노래를 불렀다. ‘Hakuna matata 하쿠나 마타타, 걱정할 것 없어. What a wonderful phrase 얼마나 멋진 말인가!’


오늘은 Hospital 까지가 목표였으나 지나가다 만난 사람 중 하나가 Hospital 지역의 알베르게는 겨우내 영업을 하지 않아 문을 닫았다고 일러주는 덕에 Logoso로 목적지를 정정했다. 6km 남짓한 거리가 줄어든 셈이다. 기실 애진작에 힘이 빠져 아무 데서나 주저앉아 한쪽 면에 요거트나 화이트초코를 바른 뻥과자와 자두를 꺼내먹고 있던 터라 합리화에 적합한,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해진 판초만큼이나 나의 체력도 닳은 모양인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끄떡없던 거리였는데 이상한 일이다. 혼자 걷는 것은 두어 배의 힘이 쓰이는 것만 같다. 옆을 채워주는 이 없으니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야 해서 그런 건지 어쩐지.

마을에 도착하기 전 우뚝 서있던 풍력발전기
쌀밥 한공기 눅진하게 말아 끓여먹고싶던 스페인 감자스프

Logoso에 도착하고서 알베르게에 들어오자마자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하룻밤 치 숙박비의 값을 치르고, 짐을 풀고, 따듯한 물로 푸욱 씻고 나서 난로 앞에 앉았다.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수프를 주문했는데 생긴 것이 영락없는 우리나라 감자탕에 맛도 제법 비슷했다. 아무리 순례자라지만 저희나라 음식을 그리도 시원스럽게 푹푹 퍼먹는 것이 진기했던 모양인지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구태여 한국의 맛과 비슷하다는 설명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눈길과 손짓과 대화가 있기 마련. 묵묵히 스페인 감자탕을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근처 슈퍼마켓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는데 냉동고에서 꺼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시선이 집중됐다. 저 아시아 꼬맹이 여자애가 이 '추운 겨울' 날, '냉동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는 건가? 해맑게 봉지를 뜯던 내가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는데 그는 기다렸단 듯이 이 추운 날 찬 음식을 먹는 건 미친 짓이라며 극구 만류를 해댔다. 배탈이 날 게 뻔하다며 겁을 줬지만 내가 누군가. 나약함 따윈 통하지 않는 이열치열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배경과 문화적 유산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더니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이게 바로 한국인의 얼이다 이거야 이 애송이들아.


하루를 마치고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가 하루동안 엄마에게 연락한 번 한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간절히 생각하면 미처 닿지 못하고 도망치는 법인가. 그녀의 밑에서 나고 자란 나의 이냉치냉에 대해서 생각했다. 추운 날, 발갛게 달아오른 내 뺨을 어루만지던 더 차던 엄마의 손길. 차고 더 찬 것이 스쳐 지나고 나면 더할 나위 없이 후덥게 데워지던 온기. 엄마는 지금쯤 곤한 잠에 도롱도롱 코를 골고 있을까. 내 걱정에 잠을 설치고 있을까. 걷고 또 걸어 나와 만나는 꿈을 꾸고 있을까.


Question 37. 카미노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기분은?

내일은 Fisterra로 향하는, 정말 카미노의 마지막 날이다. 표시석도, 표지판도, 한 길로 곧게 나 있는 길도 마지막일 것이다. 이제야 꿈에 카미노를 걷는 길이 선연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제야 스페인어가 조금은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원하는 음식을 골라 주문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길도 사람도 음식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잘 걸어왔다는 생각. 아무렇게나 걷거나 되는대로 지나오진 않았구나.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조바심 내지 해방감에 갈급함만 있었다면 이렇게 아쉽진 않았을 테니까. 순간들 속의 걸음걸음마다 나만의 작은 추억들을 곰곰이 쌓아가며 만들어 오고 있었구나. '여태껏 잘 걸어왔구나.' 내가 해낸 일. 이렇게 먼 길을 걸어온 나에게 말한다. '네가 걸어왔던 길을 좀 봐. 넌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마지막이 될 내일도 어김없이 좋은 길이 되어주길,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