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8. 속절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우리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를 조금씩 깎고 다듬고 지우고 잃어버리고 묽게 만들며 남들과 섞여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의미라는 것을
2019.11.21 (07:30) Logoso - Fisterra (Fado de Fisterra) (18:00) (37km)
「세상의 끝이라 하지만, 이곳이 진정 세상의 끝일까. 누군가는 이곳에서 나고 자라 삶을 배우며 인생을 시작했겠지. 낯선 삶들의 첫 문장이 적혀있는 곳. 그러니 이 땅을 누가 감히 끝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바다 저 넘어 지평선이 아스라이 부스러지는 곳. 하얀 물보라가 바위에 닿아 날아오르는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일 지도 모르는 곳에서 나는 생각했다. 나에게만은 풍경으로 비추어지는 이들의 삶을. 우표를 팔던 계집아이와 정어리를 손질하던 사내를, 장식품을 조각하던 투박한 손과 갓난아이를 젖먹이던 어머니의 품을」, 피스테라에서.
카미노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준비를 마치고 해가 미처 뜨기도 전에 길에 올랐다. 어스름이 아직 깔려있었지만 새벽의 어둠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노래를 듣기도 하고 이따금은 부르기도 하며 산길을 넘었다. 아물아물 해가 떠오르니 동이 트기 시작했고 컴컴했던 산길은 파랗게 변했다. Hospital에 도착했을 때 즈음 해가 났다.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에 해가 뜨니 구름 속에서 빛이 번져갔다. 몽글하게 피어오른 구름이 낮게 깔려 너무도 이쁜 풍경에 한참을 서 있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길. 마지막 풍경. '마지막'이란 항상 어떤 주문처럼 모든 것을 아쉽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모든 괴로움을 견뎌내게 하고 미처 뒤로할 수 없는 미련이 남아 우뚝 서있게 만드는 그 재주 덕분에 오늘은 간간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보다 많이 사진을 찍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먹구름이 소나기를 몰고 왔다. 판초를 입었다 벗었다 다시 입기를 반복했지만 그마저도 달가웠다. 홀로 걷는 길은 무척이나 괴괴했지만 마지막이니 그 또한 버틸만했다.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길에서 순례길에 오르던 첫 마음을 생각했다. 순례길이란 본래 홀로 걷는 길 위에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데 처음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나를 '찾기'위해선 '잃어버렸다'는 전제가 필요한 법,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애초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이름을 지우면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나. 우리는 그저 나 자신보다 중요한 사회적 규범이나 타인의 기호, 관계하는 대상들을 좇다가 종국엔 내가 무얼 좋아했었는지 헷갈리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게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리고 약한 존재로 누군가 베풀어주는 배려와 이해에도 쉽게 상하는 가냘픈 자존심을 가진 게 바로 나였다. 나에게 금지된 규율들은 세상을 조금 더 산 사람들만 즐기기 위한 지략인 것 같았고 그들이 대놓고 권장하는 것 치고 즐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순 모순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도 정말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될 무렵부터 그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덜컥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조금씩 깎고 다듬고 지우고 잃어버리고 묽게 만들며 남들과 섞여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어른이 되었다는 건 즐거운 일만 하고는 살아갈 수 없는, 그래서 미친 듯이 좋거나 혹은 싫은 것들도 그렇지 않은 척해가며 견뎌내게 되었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나는 어쩌다 나이만 들었다 뿐이지 아직도 이따금씩 앙앙 울어대며 엄살을 부리고 싶으니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어른이 되었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평생 잔병을 앓거나 다치고 쓰러질 때 엄마의 품에 안겨있다가 그 품 안의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하고 싶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흐를 것이고 언젠가는 반대로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향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어른이 되는 법칙이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간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더 이상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기엔 난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런 죽음과 헤어짐의 장에서 아빠는 울지 않았고 엄마도 울지 않았다. 난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 가당치 않다고 느꼈고 얼마간은 표독스럽다는 생각에 걱정스럽기까지 하였으니 그 앞에서 감히 울 수 없어 화장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참으며 꺽꺽대고 울었다. 할머니가 불쌍했다.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하나 없나 싶어 너무 가엽고 애처로운 나머지, 곡하는 소리가 왁왁거리고 쏟아져버릴 것 같아 숨도 제대로 내뱉을 수가 없어 얼굴로 한껏 피가 쏠렸고 그 탓에 코피가 와락 하고 터져 나왔다. 그때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런 의미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히 담담하게 그 자리를 우뚝 버텨 서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이 재가되어 흩어져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것을. 그로부터 이틀 후 할머니의 발인을 하던 날, 어디론가 사라진 아빠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왔던 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엄마'하고 마지막으로 부르던 그날, 나는 깨달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나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며 타인이 바라는 내가 되기 위해 조각조각 나뉘므로 나를 잠시 잊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지사인 듯했다. 왜 하필이면 마지막의 길에 이런 생각들이 거품처럼 차오르는지, 재채기가 오르듯 시큰해지는 콧잔등을 부여잡았다. 이대로 평생 어린아이로 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미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잃어버린 채 진정한 내 자신을 찾겠다며 떠나온 여행이 오늘로써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이걸 어쩐다.
피스테라에 도착하기 직전 Cee라는 곳에서 슈퍼에 들러 잠깐 장을 보고 식당에 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구멍 난 듯이 장대비가 쏟아져버리는 바람에 한동안을 꼼짝없이 발이 묶여있었다. 창밖을 보며 그칠 기색 없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나의 비어있는 커피잔을 채워주었고 Cee라는 지역의 이름이 생겨난 유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Cee라는 이름은 Cetus라는 라틴어에서 왔어. Cetus란 말이지, 고래라는 뜻이야. 고래 알지? 아주 거대하고 커다란 물고기 말야." 다소 섧은 생각들을 달고 걸어온 마지막의 길 위에서 바다를 발견한 약 한 시간 전 많이도 울었던 지라 벌건 눈망울이 들킬까 그 선량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고래, 고래 알죠. 커다란 물고기 말이죠."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치만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에요. 새끼를 낳는 포유류란 말이에요.
한차례 비가 쏟아지고는 정말 웃기게도 드라마 세트장 수도꼭지 잠그듯이 뚝, 하고 멎었다. 먹구름이 비가 되어 다 쏟아져 내린 건지 어쩐 건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파랗게 맑기만 했고 청량한 공기에 비치는 풍경이 이쁘기도 했다. 바다가 마주 보일 때마다 멈춰 서거나 어딘가에 기대어 앉아 멍하게 있기를 반복했다. 내가 어쩌다 이 길에 왔고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어쩌다 내가 나인 것처럼, 어쩌다 고래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이 마을에서 어쩌다 나고 자란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쩌다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와 어쩌다 현지인의 삶을 사는 그들의 만남. 지구 반대편의 너무 다른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비슷한 방법으로 어른이 되어버릴 우리들.
Cee부터 Fisterra까지 16km의 길은 바다를 품에 안은 넓은 만을 따라 나 있다. 흩날리듯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고 있노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탓에 내가 육지를 걷고 있는 것인지 바다 위를 걷고 있는 것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마지막이라지만 아침 해가 미처 뜨기도 전부터 26km 정도 걸을 쯤이면 발바닥과 등허리가 뻑적지근하게 뭉쳐가는데 이 것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기 마련. 견딜 수 있는 고통은 모두 견뎌내기 마련. 언젠간 도착하기 마련.
숙소에 도착했고, 짐을 내려두고는 Fodo de Fisterra로 향했다. Fisterra부터로 도 왕복 10km의 거리이지만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 등대를 보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더 이상 갈 곳 없음’을 의미하는 0km 표시석이 세워져 있는 곳. 등대 너머로 광막한 바다가 고요히 넘실거렸다. 힘이 탁 풀리며 깊은숨이 새어 나왔다. 이젠 정말 다 왔구나, 내가 정말 끝까지 왔구나. 기쁘고, 슬프고, 짠하고, 기특했다. 프랑스 서쪽 끝 마을 생장에서부터 시작해 두 다리로 스페인을 횡단해 종착지에 당도했다는 성취감. 모두 잘 해냈다는 안도감. 나의 걸음이 멈추었다는 상실감. 광막한 바다 앞에서 더 갈 곳 없는 아득함. 얼마간의 해방감, 허무함, 공허함. 복잡다단한 감정들 사이의 만족감.
괜스레 헛헛해지는 배에 도넛과 커피를 시켜 먹고는 사진을 몇 장 찍다가 내려왔다. 이제는 정말 끝나버린 나의 순례길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담담하게, 의연하게. 여느 날처럼 몸을 씻어내고 빨래더미를 차곡차곡 쌓아 근처의 무인 세탁소에서 깨끗이 빨아내고 건조를 돌렸다. 자축의 세레모니로 과분한 레스토랑에 들러 대구요리와 화이트와인을 마셨고 산티아고에서 그랬던 것처럼 순례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한참 동안 피우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린 겸허하고 담백하게 헤어짐의 법칙을 따라 인사를 나눴다. '잘 가, 언젠간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나는 썩 긴 시간 동안 남아서 엽서를 썼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일상을 마주해야 할 내가 읽을 엽서였다. 스페인 횡단을 두 발로 모두 마친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느꼈던 감동들을 담았다. 내가 해낸 이 길과 살아있는 것처럼 살았던 모든 순간들을 적었다. 참 잘했다고, 너만의 길과 너만의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참 좋았다고.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도 적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잊지 말자고.
Question 38. 순례자 졸업을 축하한다. 소감 한마디?
살아가다 순례자라는 신분으로 한 달 남짓을 또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까. 수 없이 많은 풍경들이 스쳐갔고 기억하지 못할 말들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될 오늘은 이 자리에서 무한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 있는 세상의 법칙을 따라 속절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보듬을 수 있었던 여행.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지고 지워지고 잃어버리고 묽어졌으며 남들과 섞여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나라는 사람을 서툴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여행. 조금 연해도 된다고, 묽어도 된다고, 그런대로 선연히 빛나지 않아도, 어쩌면 지워질 듯해도, 아슬해도 괜찮다고. 우리는 모두 살아있고 모두 여행을 하며 모두 순례길을 걷는다. 그 여정이 방황이든, 방랑이든, 여행이든 그 속에 머무르는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