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5. 헤어짐은 늘 그렇듯
우린 모두 삶이라는 고행의 순례자이므로
묵묵히 나아갈 그들의 길에,
Buen Camino.
2019.11.17 (09:00) Labacolla - Santiago de Compostela (12:00) (10km)
2019.11.18 (--:--) Santiago de Compostela, Day off (--:--) (0km)
적막한 마을이었다. 새벽 사이 어둠이 깔린 고요한 공기를 파파스머프의 코골이가 맹렬하게 갈라놓았다. 마우라가 뚫린 스포츠카처럼, 포효하는 맹수처럼, 암석을 파내는 굴삭기처럼, 천둥과 우레처럼 울리는 코골이에 잠에서 깼다. 귀마개를 꼽고 다시 잠에 들려는데 비몽사몽 간 귀마개를 넣어두는 자리에 손을 넣고 한참을 헤집어도 없다. 아, 전날 Arzúa에서 선반에 넣어두고 안 챙긴 모양인가. 매일을 틀어막던 귓구멍이 헛헛하기도 하고 파파스머프의 존재감이 가히 위압적이라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베개로 귀를 틀어막아도 보고 이부자리를 통째로 부엌 앞 간이소파로 옮겨도 봤지만 허사였다. 체념 끝에 방으로 들어갔더니 자세를 고쳐 누웠는지 잠깐 코골이가 멎었기에 기회다 싶어 재빠르게 잠에 들었다마는 도합 4시간도 채 잔 것 같지 않았다.
충분히 쉬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 달이 되는 시간 동안 나름대로 단련을 한 덕분인지 이제 10km의 거리정도는 가뿐한 데다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은 아스팔트까지 반듯하게 깔려있다. 아침으로 미영언니와 차를 끓여 먹고, 빵과 과자를 나눠먹은 후에 출발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열리는 12시 미사 전에 도착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 길만 허락한다면 충분히 여유로운 시간이다. 산티아고 도착 직전에 바에 들러 토마토를 뿌린 토스타다를 먹으며 도착 직전의 부푼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저 오늘의 길일뿐이다, 걸어왔던 길의 도착을 하는 것뿐이다, 하면서. 나만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비가 오다 그쳤다를 반복했지만 길 위에서 만나는 이들 모두가 개의치 않는 눈치고 되려 도착을 앞둔 표정이 형형한 듯 하다. 나처럼 설레고 들뜬 마음들일테지. 조금 더 크고 높게, 그 속에 작은 긴장을 담아 인사했다. ‘Buen Camino!'
산티아고 초입새에서 5명의 스페인 아저씨들을 만났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살아있었다면 그중 다섯은 이런 사람들이었으려나. 자글자글하게 묻어있는 주름이 퍽 정감 있다. 서툰 스페인어로 아는 것들을 하나씩 덧붙여 'Vamos (가요) todos (모두) juntos (함께) Santiago (산티아고)'라고 말하니 어린아이의 재롱을 본 듯한 표정으로 왁자하게 호들갑을 떤다. 순례길을 걸으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를 하는 사람에게 온갖 친절을 베푼다는 거다. 아무리 우뚝하고 억세 보이는 사람이라 한들 서툰 스페인어를 건네면 그 얼굴이 종잇장처럼 환하게 구겨지곤 했으니까. 산티아고를 알리는 철장 표지판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하나, 둘 , 셋 "Patata!" (우리나라 말로 감자란 뜻이다. 그 발음을 읽자면 빠따따인데, 우리나라에서 사진을 찍을 때 김치라고 외치는 것처럼 스페인에선 감자로 통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도착한 산티아고. 물론 나로서는 산티아고를 지나 피스테라까지 100km 남짓한 길이 아직 남아있기에 엄밀히 말하면 도착은 아니었으나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불리우는 만큼 그 의미가 있으니 그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웅장하게 우뚝 솟은 대성당의 고고한 자태 앞으로 탁 펼쳐진 광장에 드러누워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봤다. 등산화 차림에 거북이 등딱지 같은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의 표정이 맑게 빛난다. '우리가 해냈어, 드디어 도착했어' 하는 눈빛들. 고행과 성취의 유대가 은은히 깔려있는 공간에 잠깐 섞여있다가 몸을 일으켜 미사를 드리러 갔다. 대성당의 내부는 공사 중이라 다른 건물에서 미사를 드린다기에 기어코 찾아서 갔다만 순례자를 위한 향로미사도 아니었거니와 여느 미사처럼 귓전만 맴도는 스페인어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중간에 빠져나와 순례자 사무소에 완주 증명서를 받으러 갔다.
산티아고 대성당 옆에 위치한 순례자 사무소에 나의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날마다 알베르게에서 찍어준 도장을 보여주기만 하면 완주 증명서가 발급된다. 데스크 건너 여직원이 자필로 적어 전달해 주기만을 잔뜩 기대하며 받아 들었는데 내 이름의 철자가 틀렸다. 고쳐달라 소심하게 말하자 그냥 그 위에 덧입혀버리는 게 아닌가. 물론 증명장 한 장이 나의 노고를 대신할 리도 없고 그 한 글자가 어긋나면 내 증명서가 아닌 게 되는 것도 아닐 텐데 그것이 얼마나 섭섭하던지. 작은 목소리로 꼼지락거리며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져 버린 지저분한 이름을 만지작거리자니 미영언니가 무슨 일이냐 묻는다. '여기, 내 이름을 잘못 적었는데 그냥 그 위에 덧입혀서 고쳐버렸어요. 속상하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뜸 종이를 낚아채듯 가져가서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던 여자에게 따져 묻는다. 이거 틀렸잖아. 종이에 다시 적어줘야지. 데스크에 앉은 여직원은 처음엔 무슨 말을 하나 싶은 표정이었으나 어긋나버린 나의 이름칸을 정확히 짚은 손끝을 보고 간신히 이해한 듯했다. 순순히 다시 적어 주는 것을 보니 그리 큰 요구사항도 아니었던가 싶다. 얼마나 든든하고 기분이 좋던지. 고마와요, 미영언니.
증명장을 받고서 그걸 들어 보이곤 산티아고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순례자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한다. 하나같이 낯이 익은 얼굴들이다. 팀, 마크와 마이크, 스티브, 로버트, 파파스머프와 마야, 이탈리아에서 온 몇몇의 커플들, 그 외 카미노를 함께 한 많은 사람들... 인사를 나누고 산티아고에 도래한 우리의 완주를 자축한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자신들의 저녁식사 계획에 초대를 했다. 그럴 거면 다 같이 만나면 되지 않나 싶긴 했지만 어름어름 그러마고 답하고 광장을 떠났다. 토스타다로 허기를 달랬던 속을 든든하게 채워 넣으려 미영언니와 식당에 들어갔다. 치킨 샐러드와 감자, 오징어요리와 양고기 타파스를 푸짐하게 시켰고 언니는 와인을, 나는 맥주를 마셨다.
알베르게에 짐을 내려놓은 후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팀을 만났고, 그다음엔 마야를, 그 후엔 마크를, 혹은 계획하거나 약속하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만났다. 하나같이 마지막임을 알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 날더러 팀이 말한다. '아쉬워할 필요 없어, 오늘밤 산티아고에서 축배를 들다가 한 번쯤은 또 마주칠 거야.' 암 그렇고말고. 너무 취하진 말자구, 마지막 인사를 기억은 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 후에 로버트와 함께 스티브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우리 셋은 순례길 첫날, 그러니까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던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만났다. 산티아고까지의 순례길 첫날과 마지막날을 함께하는 셈이다. 식당을 정해둔 것도 아닌데 스티브는 목적지를 정해놓은 양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느낌이 쎄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산티아고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이라 해도 손색없을 식당엘 들어섰다. 스티브의 전적으로 보아 나를 위해 기꺼이 계산해 줄 것이 분명했으므로 나의 주머니사정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지만 마냥 받는 게 편치만은 않았기에 식당 문 앞에서 삐죽거리고 있는데 스티브가 그런 내 팔목을 잡아끌었다. 한 달 전, León에서 처럼. 미안함에 망설인 시간이 무색하게도 과분히 차려놓은 식탁을 잘도 비웠다. 연거푸 와인을 비웠더니 불콰하게 취기가 오른다. 밥을 다 먹고 나와 느닷없이 화끈거리는 맨발을 내어놓고 찬바닥을 밟고 싶어서 그렇게 했더니 스티브와 로버트가 그런 날 보고는 주섬주섬 신발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아닌 밤중에 양말을 벗어 내치고는 차갑게 젖은 순례길 광장을 걸었다.
그렇게 발이 시려올 때까지 걷고 있는데 멀리서 소란스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마주 본 광장 뒤편에서 열린 작은 파티다. 축하와 기념의 자리에 춤과 노래가 없으면 아쉬울 터. 우리는 홀린 듯이 그쪽으로 향했고 낯이 익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누군가가 가지고 온 기타를 돌려가며 연주를 했다. 어쩌다 차례를 넘겨받은 스티브가 기타를 둘러매고 연주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엉성한 연주에 다들 웃음을 참는 표정이 역력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멋쩍었는지 짧은 연주 끝에 말한다. '야 이거 망가졌네.' 그럴리가요. 한국이나 영국이나 아저씨들의 유쾌한 구실은 똑같구먼.
산티아고에 도착해 홀로 밤을 지새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고되고 힘든 하루를 보냈다 하더라도 함께 엉겨 붙고 어울리며 술잔과 어깨를 부딪혀야 마땅하다. 헤어짐을 마주했지만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곳은 산티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다. 길을 잃어 힘이 드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즐겁지도 않다면 방황(wandering)이고, 힘은 들지만 그런대로 즐겁다면 방랑(Drifting)이며,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다면 여행(Traveling)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래서 그중에 넌 무얼 했냐 물었더니 그야 당연히 세 가지를 합쳐놓은 순례(Pilgrimage)를 했다고 답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잔을 높게 들어 건배를 외쳤다.
하나 둘 붉은 뺨과 딸꾹질을 가지고 떠나고 몇몇의 사람들만 남아있을 때, 스티브가 산티아고에 숨어있는 순례자에 대한 이야기를 아느냐고 물었다. 매일 밤마다 나타나 떠나지도 않고 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잠도 자질 않고 밥도 먹지 않는다는, 어느 모로 봐도 괴담 같은 이야기에 고개를 기웃거렸더니 지금쯤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며 찾으러 가자고 한다. 아니, 오밤중에 나타나 움직이지도 않고 있으면 노숙자지 무슨 순례잔가 싶어 지레 겁을 먹고 쭈뼛거리며 뒤를 따랐는데 그 떠나지도 않고 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잠도 자질 않고 밥도 먹지 않는다는 순례자의 정체는 우뚝 솟은 동상을 비껴간 그림자였다. 자세히 보니 건물 외벽의 요철에 닿아 울퉁불퉁 솟은 음영이 꼭 모자를 눌러쓰고 판초를 둘러맨 영락없는 순례자다. 누군가 의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인지, 원래부터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과연 천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있었을까.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을 지켜봤을까.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왔고 이곳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나의 순례길은 산티아고를 지나 피스테라까지 향할 계획이기에 산티아고는 나에게 도착보다는 헤어짐의 의미가 크다. 함께 걷고 또 의지했던 사람들은 내일로부터 길 위에서 사라질 것이고, 각자의 여행 혹은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계속할 것이다. 낯익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가만 본다. 그들의 카미노가, 혹은 나의 카미노가 끝난다 해도, 우린 모두 자신의 인생이라는 고행을 걷는 순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만의 신을 신고,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주어진 삶을 향해 묵묵히 나아갈 그들이 걷는 길에 행운이 있기를. 그래서 우리의 산티아고에서는 헤어질 때도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Buen Camino!'
Qeuestion 35. 산티아고에 도착한 기분이 어때?
사실 산티아고대성당에 상당한 기대를 했던 부분은 순례자를 위한 향로미사였다. 그 유래라 하면 오래전 순례길을 걷고 걸어 도착한 순례자들이 잘 씻지 못했을 것은 당연지사, 그 지독한 냄새를 없애고 연기로 소독을 하기 위함이었다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밧줄을 묶어 80kg에 육박하는 향로를 성전의 높은 천장에 띄우니, 향과 연기가 퍼지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장관일 것이기도 하거니와 순례길을 완주한 순례자로서 나를 위해 들려주는 미사가 특별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향로미사는커녕 산티아고 대성당조차도 들어가 보질 못했으니 실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쉬워할 사이도 없이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에 그 나름대로 충분했다. 길을 지나며 만났던 사람들과 나란히 걸었던 날들, 한 병의 와인을 사갔을 뿐인데 모두가 계속해서 와인을 사 오는 탓에 열댓 잔을 나누어 먹었던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의 순간들을 생각했다. 서로의 코골이에 익숙해졌던 새벽들과 저마다의 엄마 혹은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나눴던 밤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이야기와 그 속에 빛나는 눈빛들을 생각했다. 이젠 나만의 카미노를 걸어야 한다. 그들의 온기가 오랜 시간 남은 길의 벗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