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36. 홀로인 것, 그 외로움, 나의 뒷모습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외로운 존재.
어두움과 깊은 숲이 두려운 이유.
2019.11.19 (09:00) Santiago de Compostela - A pena (19:00) (29km)
어제 하루동안 미영언니와 산티아고 시내를 구경하며 문구점에 들러 연필 두 자루와 종이를 사 와서는 공용공간의 책상에 앉아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언제 마지막으로 그렇게 들여봤는지. 계란형의 얼굴을, 그리고는 둥글고 큰 아몬드 같은 눈매를, 그 위로 내려앉은 선명한 쌍커풀을, 길고 부드러운 턱선을 조심히 그려나갔다. 언니는 내 얼굴을 그리는 내내 자신은 미술학원에서 꽤 오랜 시간 그림을 배웠으며 미술선생 아무개 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그림실력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고도 자타가 공인할 정도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키며 주저하지 않고 닿는 대로 연필을 과감히 그어나갔으나 그렇게 완성된 얼굴 속의 나는 얼굴부터 눈코입 할 것 없이 좌우 균형이 어그러져 있었다. 따져 물을 새도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본인의 눈엔 제법 괜찮게 그려냈다 생각했는지 똑같다고 우겨댄다. 나는 터무니없이 찌그러진 얼굴이라며 웃었고, 언니는 어딘가 허약한 병든 닭 같다며 웃었다.
사람은 인연을 만들고 인연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언젠가 떠나게 된다면 우리는 함께한 시간들을 통해서 기억하고 회자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어떤 시간들을 보낸다는 의미는 곧 우리의 삶을 나눈다는 것이고, 우리의 삶을 나눈다는 것은 함께 살아나간다는 의미이고, 함께 살아나간다는 의미는 함께 시간들을 보낸다는 이야기이고... 그 반복과 순환 속에서 언젠가 헤어짐을 마주하는 순간, 그 허망함을 무마시킬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이 것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고, 우리는 곧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믿음. 아침에 일어나 토스트를 네 조각이나 구워 든든히 아침을 먹고 준비를 마친 후 길에 올랐다. 미영언니와 스페인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잔뜩 담아서. '또 만나요.' 홀로 걷게 될 길이므로 신발끈을 더욱 단단히 고쳐맸다.
산티아고 시내를 벗어나던 길을 얼마 걷지 않아 곁을 채우던 사람들이 없어 허전한 마음에 노래나 듣자 하고 에어팟을 열었는데 오른쪽 유닛이 없다. 어딘가에 흘린 모양이었다. 다시 돌아가 떨어졌을만한 모든 길을 훑었는데도 없다. 아쉬워해봤자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다. 더 허비할 시간도 없고 지체할 체력도 없으니 그냥 잃어버렸나 보다 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계속 나아가던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어딘가에서 홀로 울고 있을 나의 오른쪽 에어팟이 외롭지 않도록 누군가 주워갔기를. 크고 작은 오르막 길이 계속됐다. 얼굴이 화끈히 달아올랐다. 어제 하루동안 쉬어서인지, 많이 먹어서인지 한참을 더딘 것만 같았다. 한참을 걷다 중간에 바에 들러 요기를 했는데 무슨 얇은 오믈렛 하나에 커피가 4€씩이나 한다. (그때 적었던 일기장엔 이 글에 덧붙여 '더럽게 비싸다.'라고 적어뒀는데 글을 옮기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다지 비싼 것 같지도 않다.)
20km를 걸어 3시 즈음 Negreira에 도착했고 피자집에 들어가 피자 한판과 맥주를 비웠다. 하루에 몇 끼를 먹는 건지. 아침부터 네 장의 토스트에 오믈렛까지, 부풀 대로 부푼 위장에 피자 한 판에 맥주를 더해놓은 꼴이니 그만큼 하중이 늘었을뿐더러, 알코올이 목덜미를 후끈하게 데워놓았으므로 더 걸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냥 이곳에 묵을까, 시간도 늦었고 이 마을엔 큰 마트도 있는데, 고민을 했다. 아니, 걱정 섞인 합리화를 하고 싶었다. 이대로 계속 걷게 되면 가는 길에 해가 질 터였다. 그치만 오늘 Negreira에서 멈추게 된다면 고작 20km를 걷게 되므로 계획대로 완주하려면 내일 9km가 더해지는 꼴이었다. 그래서 걸었다. 그때부터 어두워지는 공기를 살피며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비도 하루종일 많이 내려 판초는 소용도 없을 정도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후 6시가 되니 해가 지고 삽시간 안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해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낮에 보았다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을 숲도 무섭고 산도 무섭고 산길도 무섭고 비어있는 폐가도 무서웠다. 비상용으로 준비해 두었던 줄이어폰으로 노래를 틀어놓고 무서움을 달래 가며 산길을 헤쳐나가는데 어디서 부스스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몇 번이고 이어폰을 빼고 부둑부둑 멈춰 섰다. 난 무엇이 그렇게도 두려웠던 걸까. 귀신이었을까, 산짐승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사람이었을까. 그저 어두움은 아니었을까. 홀로인 것이, 그 외로움이,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나의 뒷모습이 두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1km 남았다는데 왜 이렇게 멀기만 한지, 겁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하질 못하고 그저 걸었다. 어두운 길에서 혼자이려니 모든 상황이 익숙지 않고 두렵기만 했다. 아침에 길을 걸으며 '피스테라 까지는 철저히 혼자이고 싶다'라고 생각한 내가 우스웠다. 이렇게도 나약한데.
짙은 연무가 희부윰하게 깔려있는 산길을 지나 쏟아지는 비에 앞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들어서자 저 멀리 불 켜진 알베르게가 보였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들어오자마자 콜라를 시켜 원샷을 하고는 짐을 내려놓고 따듯한 물로 씻었다. 하루종일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숙소에 돌아와 배정받은 나의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이부자리를 마련하고는 1층으로 저녁을 먹으려 내려갔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어깨에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때가 될 때 먹어두지 않으면 밤동안 속이 궁금할 것이었다. 주변엔 마트도 식당도 카페도 간식을 파는 자판기 따위도 없어 방법도 없다. 파스타를 주문해 두고는 일기를 적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방에 들어섰는데 불을 넣지 않았는지 냉골이 따로 없다. 함께 방을 쓰는 모녀 중 어머니가 지푸라기처럼 푸석푸석한 목소리로 딸에게 무어라 말하니 그녀가 손님이 없는 다른 방에서 라디에이터를 하나 더 들고 왔다.
아, 모녀가 꺼낸 장바구니가 낯이 익다 싶더니 내가 에스테야(Estella)에서 기부한(이라기보다는 필요가 없어 기부 박스에 버리고 온) 다이소 장바구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우연인가. 나와는 다르게 요긴히 잘 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로선 미영언니가 이제 자신에겐 더 이상 필요가 없다며 건넨 레인팬츠가 아주 요긴하다. 짧디 짧은 내 다리엔 너무도 길어서 팔 척 장승이나 입을법한 바지라고 배꼽을 잡고 웃었건만 이렇게도 쓸모가 있다니. 이렇게 우리는 자신을 다른 존재들과 이어주는 작은 조각들을 모으며 살아간다. 그녀들에겐 나의 장바구니가 그러했고, 나에겐 미영언니의 레인팬츠가 그러했으며, (바라건대) 누군가 주웠을 나의 에어팟이 그렇듯이.
모녀의 기책으로 옆방에서 챙겨 온 라디에이터 때문인지, 혹은 그저 사람의 온기가 닿아서인지 공기가 미지근하게 데워졌고 초저녁 숲 속에서 질렸던 겁도 눈송이가 녹듯 사그라들었다. 산티아고를 떠나며 철저히 혼자가 되어보고 싶다던 아침의 결심이 무색하다. 평생을 제 뒷모습 하나 마주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두려움 없이 어둠을 응시할 리 없질 않은가.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함께 걸으며 우리는 서로의 어두움을 비추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마치 삶처럼, 혼자이고 싶다가도 항상 함께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닐까. 피스테라까지 이제 이틀. 정말 나의 카미노가 마지막을 향해 간다. 피스테라에 도착하면 정말 어떨까. 더 가고 싶어도 가 닿을 수 없는, 갈 길이 더 이상은 없는 세상의 끝. 뭐든 알게 되겠지, 어떻게든 더 자라겠지, 누구든 곁에 함께 해주겠지.
Question 36. 산티아고를 떠나 홀로 걸었던 오늘의 하루는 어땠어?
괜찮을 줄 알았다. 괜찮다마다, 얼마간은 홀로 걷고 싶었으니 바라던 바였다. 철저히 혼자라면 어떤 생각들을 할지 궁금했다. 혼자만의 고뇌에 푹 잠기거나 흩어지는 생각들을 한데 모아 묶어둘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진짜 혼자라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나를 찾는 여정'이 되리라 생각했다. 기대했던 것만큼 고아한 여정일 리 없었던 것이, 혼자일 수 있는 것과 혼자여야만 하는 것은 달랐다. 어둡고 깊은 숲 속은 잊힌 기억의 심연만큼이나 짙었고 적막은 어두움의 공명판처럼 울리며 하늘을 울리는 천둥이나 누군가 내지르는 괴성보다 초조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혼자이고 싶다는 건 고독을 미화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는 아니었을까. 또 오늘의 시간들은 내가 다른 핑계들로 포장해 쌓아 두었던 외로움과 대면했던 시간은 아니었을지. 피한다고 사라지는 외로움은 없었다. 붙잡는다고 덜어지지가 않고 아니라고 우겨지지도 않는다. 그저 이런 감정들도 순례길 위에 피어나는 것들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미영언니가 그려준 나의 얼굴을 한 번 더 꺼내어본다. 타인의 온기가 담겨있는 조각들을 곱씹으며 잠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