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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15. 2024

평온한 항암

이런 날이 오기를 얼마나 꿈꾸었던가

항암날 입원실 침대에 누워 바라본 창 밖 풍경.


암병동으로 온 첫날밤에는 통증이 제법 있었다. 자다가 두 번이나 벨을 눌러 진통제를 먹었을 정도로. 기에 새벽 1시 반과 새벽 5시쯤이었던 것 같다. 엉덩이부터 다리 쪽으로 찌릿찌릿하고 저릿저릿한 기분 나쁜 통증으로 시작해서 일어나거나 서거나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래도 두 번 정도라 다행으로 여겼다. 몸을 옆으로 누워 자면 몸무게에 눌려 더 아프지 않을까 싶어 매일밤 반듯하게 누워서 자도록 노력하고 있다. 익숙한 완화병동을 떠나온 첫날이라 몸도 마음도 긴장했는지 수면제 효과는 없었다. 서너 시간 자고 통증과 몇 판 겨루기를 했더니 피곤했는지 항암 때 한두 시간 꿀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항암은 일찍 시작했다. 아침 8시. 원에서 아침으로 나온 빵을 뜯다가 부랴부랴 침대에 누야 했으니까. 확실히 입원해서 항암을 받으니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건 좋았다. 기다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4시간 가까이 항암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던 꿀팁이었다. 암센터에서는 상체를 뒤로 젖힐 수 있고 다리도 뻗을 수 있는 의자에 앉아서 받는다. 리고 암센터에서 받으면 다른 환자들과 함께 항암을 해야 해서 항암약을 세팅하는 차례가 돌아오는데도 시간이 리기도 한다. 다음에도 입원해서 항암 하는 걸로 야겠다. 두 번째지만 게 힘들다는 생각 없이 항암을 잘 마쳤다.


암 후에는 심리치료사 다녀갔다. 암센터에 소속된 심리 치료사인데 젊은 여성이다. 머리털 나고 심리 상담은 처음인데 특별한 건 없었는데도 좋았다. 내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신다. 밝고 따듯하고 환한 표정으로. 내가 힘들어하면 공감하는 표정으로. 그리고 한 줌의 용기를 주고 가신다. 잘하고 있다고. 우리 아이도 원하면 언제든지 상담해 주시겠다고 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만약의 경우 언제든지 복잡하고 힘든 속을 털어놓을 수 있, 눈치 안 보고 눈물 콧물까지 짤 수 있는 우군이 몇이나 있는가.


아이에게 말했 알겠다고 하고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SOS를 보내지는 않다. 견딜만하니 안 묻겠지. 내가 암에 걸렸을 때 만 열 살이던 아이는 내일모레 열네 살이 되고, 엄마의 적극적인 도움을 별로 바라지 않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오늘은 바쁜 파파 대신 점심때 밥을 싸가지고 와서 엄마가 먹는 걸 지켜보니, 밥을 다 먹고는 병원 뒤뜰과 이어진 숲으로 같이 내려가서 팔짱을 끼고 산책까지 가주었다. 이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도움을 받는 나이가 된 것인가 싶어 이런 나도 아이도 짠하면서 흐뭇했다.


수술 후 회복기라 단출한 항암을 했다. 공포의 빨간 항암약을 맞기 전 희석제를 절반 맞고 항암약 맞은 후 또 남은 희석제 절반을 맞았다. 소요 시간은 총 3시간 반.


항암을 하다 배가 고팠다는 얘기도 해야겠다. 전날 점심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을 J언니가 보내주신 배만 먹고 잤더니 아침이 되자 배가 고팠. 아침으로 병원에서 흰 빵이 두 개나  나왔길래 얼른 먹었지. 그런데 빵쪼가리 두 개 먹었다고 밥에 익숙한 배가 부르지는 않더라. 남편이나 애가 올 점심때까지 견디기가 쉽지 않겠다는 판단 일단 일어나 앉기부터 했다. 화장실 가는 타이밍을 이용 통증이 좀 있었지만 밥을 먹어야겠단 일념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성공!


밥은 전날 먹고 남은 게 있었다. J언니가 챙겨주신 김과 조카의 밑반찬 중 마지막 남은 것 먹다. 3인실이었지만 다행히 할머니 두 분이 잠들어 계셨다. 항암이 끝나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배고픔을 참을 수는 없지. 참아야 할 이유도 없고. 항암 스탠드를 옆에 세워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밥을 먹었네. 자른 양반 돌김 봉지에 고급 돌김원초의 바삭한 맛이란 문구가 보였다. 역시 맛있었다. 짧게 자른 김이라 겹쳐서 밥을 올리고 짭짤한 밑반찬을 젓갈 놓듯 아껴서 조금만 놓고 먹어도 맛이 훌륭했다. 작은 김을 세 지나 뜯먹고 나서야 숟가락을 놓았다. 복했다!


오늘 두 번째 항암을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힘든 항암을 하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말이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데, 내게는 이렇게 항암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런 일상이 내게는 차라리 '평온한' 항암이다. 부작용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항암 부작용은 걱정하지도 않는다. 통증만 없다면, 통증만 줄어든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조금 힘들 준비가 되어 있다. 느 구독자님 말씀 대로. 무 오래 글을 올리지 못한 나 때문에 수명이 다소 단축되었을 가족들과 친구들과 몇몇 구독자님들을 위해 퇴원 전에 바짝 소식을 전하려고 노력 중이다.


내게는 학창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40년을 넘 단짝 친구이 있다. 내 친구들 중 가장 오랜 친구들이다. 셋 다 지극히 날 걱정해 주는데 그중 하나인 S가 이번에 말했다. 자기에게 남은 시간을 나에게 나눠줘도 좋으니 제발 내가 완쾌해서 오래오래 살아주기를 바다고. 매일 아침 출근길에 운전대를 잡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그 고 나는 울었다. 다른 두 친구들 Y와 J도 날 위해 얼마나 백방으로 울며 기도해 주었던가. 이런 친구들이 있다니 나는 성공한 인생이다. 오래 살아남아서 친구의 남은 시간에 오히려 보탬이 되어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 일의 2 순의 밤이 깊어간다. 일이면 퇴원이다!


오후 5시 30분. 내가 입원해 있는 암병동 뒤편 숲에서 암병동을 찍은 사진(건물 가운데가 암병동). 암병동으로 온 첫날 해질 무렵 혼자 30분간 산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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