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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05. 2024

주치의 앞에서 나는 울었네

울어도 된다는 아이 앞에서도 울고

우리 집 앞 무성한 오월의 나무들.


그날은 다리가 몹시 아팠다. 항암을 하러 가야 하는 지난주 목요일 아침이었. 편이 평소보다 서두른 게 화근이었다(그렇게 믿고 있다. 이럴 때 까칠한 사람의 배우자는 무슨 죄인가). 는 2주에 한 번 항암을 하러 병원에 간다. 오전 9시에 도착하기 위해 오전 8시쯤 나간다. 남편과 지하철 우반과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데 그날 남편은 자기 일이 많다고 병원에 빨리 가자고 했다. 남편은 주로 재택근무를 한다. 팔 할은 전화 콘퍼런스다. 아직 7시밖 안 는데. 어째 감이 안 좋긴 했다. 침대에 누워있을 때부터 다리가 조금 아팠기 때문이다. 그때 다리가 아프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다리가 아프면 일단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때 움직였다간 제대로 된 통증을 각오해야 한다.


두 다리 마비가 와도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이것도 습관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일이 많다는 그 한 마디에 다리가 아프다는 말이 왜 안 나오냔 말이지. 그다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대로다. 휠체어에 앉자마자 통증이 오기 시작. 급히 진통제를 먹고 침대에 도로 누웠다. 하루 4번씩 먹는 진통제는 별도로 통증이 오면 효과가 빠른 모르핀 진통제를 가로 먹어야 한다. 안 그러면 눈물 콧물 쏙 빼는 통증에 30분 이상 시달리기 쉽다. 그날 아침이 그랬다.


그날은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이었다. 첫 수업이 없었나. 모르겠다. 나는 그날 통증 때문 울었다.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우리 애가 혹시 엄마가 아파서 우는 소리를 듣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안 되지. 급히 눈물을 훔쳤다. 곧 아이가 학교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할 시각인데.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아이가 나타나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엄... 괜찮아?" 


나는 괜찮다고 했다. 이어서 학교 잘 다녀오라고. 늦을까 봐 빨리 가고 손짓까지 했다.


"엄마..."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아이가 말했다.  "나 앞에선, 울어도 괜찮아..."


그래서 울었냐고? 울었다. 양손으로 과장되게 눈 밑을 문지르는 시늉을 하며 잉잉, 소리까지 내가며. 오늘 아침 엄마 다리가 많이 아팠, 우리 딸이 그렇게 말해주니 아던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프네. 이젠 괜찮아, 진짜 괜찮아, 허풍까지 떨면서.


주치의를 만나던 날 남편과 베트남 식당에서 먹은 점심.


생각해 보니 운 날이 또 있. 일요일 오후. 날씨가 화창하다고 남편이 산책을 가잔다. 가기 싫어도 따라가는 편이다. 어떤 때는 누워만 고 싶은데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며 비가 흩뿌리는데도 산책을 다녀온 적 있다. 그에 비하면 날씨가 좋은 게 어딘가. 오랜만에 아이도 따라나섰다. 그런데 그날은 안 나가는 게 나을 뻔했다. 그날도 울었다. 날씨는 좋고 산책길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나만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만 겨우내 입던 우중충한 회색빛 윗옷에 늘 입는 잠옷 바지에. 러니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나. 그날도 아이가 엄마의 기분을 물어주다. 안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자 그랬지. 사람들로 가득할 로젠 가르텐을 지나 작은 가게 나오는데 거기서 작은 아이스콘을 하나 사 먹자 기분이 나아졌다. 남편은 휠체어를 밀고 아이스콘 사주고 말이 없었다.


내친김에 주치의를 만나 운 얘기까지 해볼까 한다. 그날은 내 친구 M이 오지 않는 날이 남편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집 근처 베트남 식당에 갔더니 오후 쉬는 시간이라며 문을 닫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남편이 다리 건너 이태리 식당을 가자고 했는데 그날은 꼭 베트남 음식이 먹고 싶었다. 시내 쪽 다리를 건너면 핫하다는 베트남 식당이 하나 더 있었다. 그래, 오늘은 거기다! 뜨거운 치킨 카레에 밥을 말아먹자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까진 좋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이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 종료 직전인 5시 45분에 예약을 잡았다. 내 등 수술 자국이 좀 부어서. 어쩐다, 집에 가면 다시 나오기 싫을 텐데.


그냥 나오기 싫은 정도가 아니었다. 집에서 쉬었다가 집을 나오자마자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주치의가 있는 병원까지는 휠체어로 5분 정도.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의 여직원들이 인사와 함께 어떠냐고 안부를 물었다. 눈물로 답함. 한 여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안아주었다. 주치의를 만나자 눈물은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지난 3년간 주치의와 힘을 합쳐 항암을 해 온 결과가 하반신 마비라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눈물로 나오는 것 같았다. 치의는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괜찮다며. 그리고 내게 말했다. 오늘 자기를 방문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때론 그런 말 한마디에 위로를 받는다. 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도. 왜 살아야 하는지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도.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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