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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15. 2024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간수치가 올라 입원 중

5월의 이자르강 산책길.


지난주 금요일부터 병원에 입원 중이다. 원래는 지난주 목요일이 항암 하는 날인데 그날이 공휴일이라 금요일에 항암을 하러 갔다. 그날 피검사 간수치가 높게 나왔던 모양이. 항암을 연기하기로 했다. 항암도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서. 리고 초음파 검사를 두 번이나 받았다. 의사로부터 간 전이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남편은 눈물부터 보였다(요즘 우리 남편이 부쩍 약해지고 있다). 나는 확실한 걸 알기 전까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Y가 병원으로 들고 온 정성 가득 수제 찐빵과 남편테 사 오라고 주문한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실히 맛이 돌아오고 있다.


어제는 병원에서 로또를 맞은 날이었다. 착한 간호사 두 명이 내게 샤워를 하고 싶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아아, 그동안 얼마나 샤워를 하고 싶던지! 이건 못 해본 사람만이 안다. 얼마나 내 손으로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싶었던가. 침대로 돌아올 때 간호사 두 사람과 나의 호흡이 안 맞아서 내가 침대 위로 엎어졌을 때도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이렇게 침대 위로 엎드린 거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농담을 해가면서. 간호사 한 명이 엎드린 김에 등수술한 곳에 소독도 하고 끗한 거즈로 갈자고 했다. 런 게 바로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 아닌가.


무한 반복하는 단순함의 극치, 뜨개질.


간수치는 왜 오른 것일까. 정말 간에 전이가 온 것일까. 월요일이 되자 젊은 여의사가 물었다. 병원에서 바로 집으로 퇴원하고 싶은지 아니면 완화병동으로 들렀다 가고 싶은지. 오, 당근 완화병동 들렀다 가고 싶죠. 완화병동은 1인실에다 넓고 쾌적해서 나도 좋고 가족들이나 친구들도 들르기 좋다. 여의사는 독일 사람 답지 않게 동작이 빨랐다. 완화병동 담당자인 할아버지 의사샘이 보이더라며 재빨리 병실을 나가더니 곧이어 진짜로 완화병동 담당 의사샘인 Dr. 폴만이 나타나셨다. 프라우 오, 우리 완화병동에 들렀다 퇴원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선생님. 저 완화병동 너무 좋아하잖아요! 오, 그것 참 듣기 반가운 말씀이네요. 그럼 자리가 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헐, 그런데 뭐가 이리 술술  ?


그리고 수요일에 완화병동으로 왔다. 일단 2인실로 왔다가 내일이라도 1인실이 나면 1인실로 옮겨주겠다고 다.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 다. 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아마도 큰 형 드미트리가 울며 그렇게 지 않았나. 여러분,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내 심정이 꼭 그랬다. 쓸모없음의 쓸모를 생각하다가 뜨개질도 시작했다. 그때였을 것이다. 아이가 안 심심하냐고 물었다. 신기하게도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항상 누워만 있는데. 아이 눈에는 항상 심심해 보였을 텐데. 졸리면 자고 고프면 먹었다. 책이 눈에 들어오면 읽고 귀찮으면 놓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 때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이 지구상에서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일 뿐이다*,라고.


그랬다. 인생은 날 위해 새로운 무대를 마련놓고 있었다. 침대와 휠체어. 나는 내 인생이 선택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 이 배역을 등 떠밀려 선택하고 싶지 않다. 배역에 선택의 여지는 없을지라도 배역을 어떻게 소화할지는 내게 달린 일 아닌가.  목표는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마당에도 목표라는 게 있어야 한다면 말이다. 아이가 라틴어 시험에 망했다고 할 때마다 내가 무한 반복하는 말이기도 하다. 포기만 안 하면 돼! 나 역시 인생이 내게 던진 이 배역을 잘 해낼 자신까지는 없지만 끝까지는 가 볼 생각이다. 것 말고 뾰족한 수도 없다마는.


이자르 강 옆 공원.


*<나는 천국을 보았다> by 이븐 알렉산더, 출판사 김영사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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