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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04. 2020

암 선고를 받았다

12월의 이자르 강변과 장미 정원 산책


오후 산책길에 장미 정원에도 들렀다. 12월의 장미 한 송이를 보았다. 눈 속에도 자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서 있는 장미. 예쁘고 대견했다. 나도 저렇게 견디고 버틸 수 있기를.



2020.12.3일 늦은 오후 이자르 강변의 석양.



이자르 강변 산책길을 걷다가 성 프란치스코를 보았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그를 알아본 것 같지는 . 두껍지 않은 검은 점퍼를 입고 검은 방한용 빵모자를 쓰고 검은 백팩을 메고 있었다. 그의 두 손에 검은 장갑도 본 것 같다. 특별할 건 없었다. 그가 잔디 위로 무릎을 굽히고 모이를 손에 놓자 검은 까마귀 몇 마리가 다가왔다. 지나가던 개가 까마귀를 보고 달려오자 새들은 흩어지고. 우리의 성 프란치스코는 몇 발자국을 걷다가 다시 무릎을 구부려 손에 든 모이를 펼쳐 보였는데 까마귀들이 다시 그에게 다가오고. 그게 내가 본 모든 것이다. 이자르 강변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보았다. 내 눈으로 보았는데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이자르 강변에서 성 프란치스코를 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가 이렇게도 찾아오시는구나.


이자르 강변에서 개를 훈련시키 젊은 남성 보았다. 산책로 옆 잔디밭에서였다. 절도 있는 주인 앞에 개차반 같은 개는 없다. 개도 사람도 시종일관 품행이 반듯했. 개가 사람이었다면 어느 집 자제인가 주의 깊게 동반한 사람들을 둘러보고 싶을 정도였다. 주인이 걷고 멈추고 보이는 손짓 하나 그 큰 개가, 그 날렵한 개가 자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따랐다. 앉고 서고 엎드리고 멈추고. 어쩜 저리 대단하냐. 주인은 체형이 마른 남자였는데 얼굴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개를 저리도 잘 다루는 사람이라니. 사랑도 저렇게 할까. 질질 끌고 징징거림이란 없는 단호한 인생.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끊는 것이 확실한 사람. 남보다 자기 자신에게는 더 엄격한.


책 읽는 사람의 뒷모습도 보았다. 붉은 해는 이자르 강에 머리를 풀고, 흰 새들은 무리 지어 강 위를 날았다. 개들은 지나가는 개의 꽁무니를 쫓다가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놓고 쳐다볼 수는 없으니까. 여름 홍수 때 떠밀려온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책을 읽던 사람. 마지막 석양빛을 받으며 책을 읽던 사람. 왜소한 체구를 가졌던 사람. 손에 들린 책이 눈처럼 하얗게 빛났다. 오후 4시였다. 곧 추워질 텐데. 뮌헨의 해는 금방 사라질 테고 온기도 흩어질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땀이 나거나 몸이 따뜻해지지는 않았다. 오전에는 흐렸고, 오후에는 해가 다. 우중충한 오후에도 산책을 빼먹으면 안 된다. 그랬다간 전날처럼 불면의  밤을 보낼 수가 있다. 집을 나서며 톡으로 산책!이라고  남편이 아이처럼 좋아했다.






오후 산책길에는 장미 정원에도 들렀다. 홀로 산책하는 1시간은 어찌나 긴지. 장미 정원을 샅샅이 걷고 사진을 찍고 돌아 나와도 30분.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석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12월의 장미 한 송이를 건진 건 엄청난 수확이었다. 눈 속에서도 자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서 있었다. 예쁘고 대견했다. 나도 저렇게 견디고 버틸 수 있기를. 장미 정원에는 마지막 석양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해가 비치는 건물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있던 사람들. 혼자 산책을 나오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나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외롭지도 않았다. 그게 문제고 대수인가. 급하면 혼자 나갈 수도 있는 거지.


독일의 록다운이 2021. 1. 21일까지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준 건 내 사정을 아는 한국 친구였다. 그 일로 해서 문제는 없는지 걱정하며.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한국에서 언니가 짐을 싸고 있었다. 내가 못 가면 자기가 들어온다고. 쉽지 않다. 간병인으? 그게 통할까. 내 보호자는 엄연히 남편인데. 이 시국에 그런 이유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3개월 여행 비자만 있으면 자유롭게 들어오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언니에게는 언니의 삶이, 나에게는 나의 삶이 있다. 어제  말을 했다가 폭격 맞는 줄 알았다. 지나친 걱정은 도움이 안 된다. 부담 백배다. 담담하게 지켜봐 주면 좋겠다. 가족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라서.


일의 코로나는 선방 중이다. 확진자는 여전히 2만 대를 오가고 있지만. 주말 지나면 2만 아래로 떨어졌다가 주말이 가까워오면 2만 가까이 오른다. 주말에 검사를 안 해서 그렇다고 한다. 남편 말로는 엄청나게 잘 대응하고 있단다. 록다운 전에는 1주일 만에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기도 했으니까. 예를 들어 10.27일에 1만 명을 넘기고 열흘 만에 2만을 찍었다. 록다운을 한 지도 5주가 지났다. 아직도 2만 고지를 사수하고 있다. 더 나빠지지 않은 것만도 고맙다. 아직 7주가 더 남아있긴 하지만 록다운의 에는 1만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지면 좋겠다. 록다운이 끝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무엇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또 어떻게 될까 궁금하.


오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암이다. 아주 초기는 아니라서 수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 같다. 병원에서 신속히 대처를 해 줄 모양이다. 이런 시국에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 역시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이자르 강변의 장미 정원에는 12월의 장미.



PS. 구독자님들께

구독자님들의 염려와 댓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분 한 분의 따듯한 격려와 위로와 조언 감사히 읽고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일일이 답글을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이외에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요. 글은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써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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