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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03. 2020

뮌헨에 첫눈이 내렸다

나의 버라이어티 한 삶


뮌헨에 첫눈이 내렸다. 하얀 첫눈이. 12월의 첫날에.



2020.12.1 뮌헨에 첫눈이 내렸다.



며칠 전 자궁 조직 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첫눈을 보며 생각했다. 내 삶은 나를 위해 얼마나 드라마틱한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대답은 남편이 했다. 독일에서 수술을 받고 싶으 하루에 3~4시간을 나가서 걸으라고. 안다. 왜 저러는지. 나도 어지간히 집순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 내가 집 밖을 나간 날은 모르긴 몰라도 5일도 안 될 것이다. 심지어 앉은자리에서 꼼짝을 안 할  있다. 실제로 시연도 보였고. 폰과 책과 노트북만 옆에 있다면. 그나마 대낮에 드러눕지 않는다가 유일한 철칙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참을성이 많은 남편이라도 속에서 열불이 나겠지.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제는 아니다. 운동하는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싫건 좋건.


월요일 정밀 검진을 받은 이후로 나의 몸과 마음 자세가 달라졌다. 한 마디로 군기가 잡혔다. 안 그럴 수가 없다. 여차하면 남편이 한국으로 가세요, 하면 어쩔 것인가. (벌써 한 번 그러셨다.) 나는 반반이다. 가면 몸이야 편하겠지. 엄마도 있고 언니도 있으니까. 그리고 벌써부터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고 있다는 언니들과 친구들, 속으로만 삼키고 계실 분들도 안다. (우리 삼촌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전화를 주셨다. 고맙고 죄송해서 죽는 줄 알았다.) 안다, 저런 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한국에 가면 상황이 달라질까. 주말에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고 예약까지 한 후 고민에 잠겼다.  번 시작하면 장기전이 될 것이다. 시작은 있고 끝은 장담할 수 없는. 최악의 경우에는 못 돌아올 수도 있고.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수술 이후문제일 테니까. 운이 따른다여름에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에게는 절반을 뚝 잘라 만약 가더라도 부활절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부활절이 무슨 뜻인지 알지? 엄마가 건강하게 돌아오이야. 혼자만 한국에 간다고 치사하다던 아이는 나중에 그 말의 의미를 알고는 주말 내내 울었다.





정밀 검사를 하고 온  의지를 표명하느라 저녁에 산책을 나갔다. 동네 한 바퀴 돌기. 눈 오기 전날이었다. 추워 죽겠더라. 이튿날은 오전 산책, 오후 산책 두 차례로 의지 굳히. 그리고 저녁에 초주검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다음날은 괜찮았다. 그것만 했으면 됐을 텐데 오전 산책 때는 동네 카페에 들러 주인장 할아버지 슈테판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 슈테판이 뮌헨 대학병원 여성 클리닉도 좋다고 추천했다. 5년 전에 돌아가신 아내 분이 거기서 두 번이나 자궁 수술을 했다며. 항암 대신 미래의 치료법이 될 Killing-cell이라는 자가면역 치료법도 슈테판에게 들었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오후 산책 전에는 미용실에서 머리도 잘랐다. 싹둑! 투병에 대한 의지로. 나는 지지 않는다. 뭐 심정 있잖나. 싸우러 가는 전사처럼.


암이 생기면 가장 먼저 드는 건 어떤 감정일까.  하필 내게?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원래 그쪽이 약했는데 관리를 못했으니. 자궁에 생긴 게 암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전에 아이를 낳아서 천만다행이다! 늦게 아이를 낳고 그걸로 제 할 일을 다했다고 방치했다. 이렇게 미련할 수가. 나는 궁금하다. 내 몸에 생긴 병이 나를, 내 인생을 어떻게 바꿀까. 세상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바뀐다면 나는 병 이전과 이후라는 숙제를 하나 더 받았다.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알린다. 병은 자랑하는 법이라고 니까. 내게 온 것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외면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우리 집 식단도 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뿐이었다. 마음, 식단, 운동. 무엇이 오든 받아들이고 의사의 지시에 기꺼이 따른다. 토 달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한다. 이게 내 각오다. 월요일부터 흰쌀밥과 흰 빵과 밀가루는 퇴출. 먹지 말아야  걸 생각하니 복잡하기만 서 먹어도 되는 것만 생각했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식단 말이다. 예를 들면 현미밥, 미역국, 나물 하나. 끼니 사이엔 과일과 야채와 호두. J언니가 준 생강청과 조카가 준 비타민 C, 약국에서 산 비타민 차도 자주 마시려 다. 족욕, 좌욕, 뜨거운 물주머니도 데 귀찮다는 단점이 있다. 내 해법은 침대 속이 금방 따뜻해지는 슬리핑 . 며칠 해보니 았다.





제가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어떨까요.

조직 검사를 받던 날 의사에게 물었다. 그는 이해한다고 했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독일 의료 기술과 차이가 없으니까 꼭 가고 싶으면 가도 좋다고.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한국에 가도 어차피 2주간 격리가 있다. 만약 제가 긴급을 요하는 상태라면 여기서도 수술 날짜를 빨리 잡아주실 수 있나요?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저희가 2~3주 안에 잡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남편의 질문. 만약 저희가 이 병원의 검사 결과를 가지고 뮌헨의 다른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아도 될까요. 절도 있는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저희 병원도 잘합니다. (의사 승, 남편 패.) 검사 후 피가 많이 나면 다시 오라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검사 당일보다도 2-3일째가 힘들었다. 검사만 해도 이 정도인데 수술과 치료까지 병행하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날 남편은 의사를 처음 만났다. 궁금한 것도 묻고 설명도 들었다. 집에 가던 길에 남편이 말했다. 의사 괜찮네. 의사는 그날 아침 수술실에도 따라 들어왔다. 수술실에는 총 세 명의 의사가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내가 못 알아보자 마스크를 벗고 안심하라는 듯 웃어주었다. 정말로 안심이 되었다. 기분은 어때요? 하고 상냥하게 물어주기까지 는데 어떻게 환자가 편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밀 검사를 받으며 병원 환경과 의료진들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독일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아도 좋겠구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행 비행기표는 취소했다. 오늘이 출국 예정일이었다. 이제 곧 오전 산책을 나가야 한다.



나의 주식이 될 검은빵과 나를 위해 가장 많이 울어준 J언니의 생강청(위) 눈 내린 이자르 강변 산책로(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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