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날이 좋으면 친구가 광합성 하러 가자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쉬는 시간에 둘이 학교 화단 옆에서 가만히 햇빛을 받으며 서 있다가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친구에게 “광합성은 식물이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특이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따뜻한 햇살 속에 있는 시간이 점점 좋아졌다. 당시엔 재밌는 놀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직장을 다니며 일에 찌들어 살다 보니 광합성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햇빛을 받아야 비타민 D가 생기고 좋은 에너지가 많아진다는 과학적인 얘기들도 있지만, 광합성은 일상에 따뜻한 순간을 선물해 준다. 우울해서 축 처져 있다가도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걷다 보면 좋은 에너지가 생긴다. 무거웠던 마음이, 복잡했던 머리가 조금씩 가벼워진다. 햇빛이 지친 나를 위로하듯 쓰담쓰담 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우울감이 나를 덮쳐올 때 나를 회복시켜 줄 햇빛은 멀리하고 어두운 집 안에만 있게 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때로는 밝은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날것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보다 모든 것을 덮어두고 익숙한 어둠 속에 머무르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햇빛으로, 밝은 곳으로 나가는 것은 때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대학생 때 룸메이트들과 함께 살다 보니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했기에 고민이 생기면 성북천을 걷거나 근처 카페로 갔다. 가끔 시간이 많을 때면 평소에 가지 못했던 멀리 있는 카페로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힘들 때면 자연스럽게 광합성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에 혼자 살게 되고, 퇴사할 때쯤에 시작된 코로나는 점점 심각해졌다. 외출 자제 권고 속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원래 집순이라서 집에 있는 시간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햇빛을 받지 못하고 인공조명 아래서만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나는 그사이에 취업과 퇴사를 2번 반복하며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 같았지만 마음이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조금씩 코로나 확진자와 위험도는 줄어들고 마스크 의무 착용도 해제되었다. 하지만 왜인지 광합성을 위한 외출은 계속 미뤘다. 어둠 속에 있는 삶이 익숙해져서 햇빛이 낯설었고 나를 보호하려면 계속 아늑한 집에만 있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광합성 하지 못했던 내 삶은 습기가 가득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나를 망가뜨리는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거의 3년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외출을 꺼리며 자연스럽게 광합성과도 멀어졌다. 그러다 얼마 전 집에 초대한 지인들의 간식을 사기 위해 장 보러 나갈 일이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저녁쯤 나갔는데 늦여름의 선선한 바람과 적당한 햇살이 참 좋았다. 원래 집에서 3분 거리의 빵집과 편의점에 빠르게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일부러 빵집에 들렀다가 한 바퀴 돌아서 편의점에 갔다. 이렇게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을 그동안 잊고 살았다는 게 참 아쉬웠다. 이제는 어둠 속에 머무르지 말고 다시 용기 내서 햇빛으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