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회사 문제로 피폐해져 있던 시기에 식물 기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들었다. 식물 기르는 데 실패한 적이 있어 고민하던 중에 귀여운 샐러드용 식물 기르기 키트를 발견했다. 직접 키운 식물로 샐러드를 먹겠다는 마음을 품고 구매했다. 바질, 루꼴라, 치커리, 로메인을 키울 수 있어서 애칭으로 반려 샐러드라고 불렀다. 씨앗에서 싹을 틔워 식물을 기르는 것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식물 기르기 키트가 도착하고 설명서를 보며 정성을 담아 씨앗을 심었다. 설명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하긴 했는데 잘 심은 건지도 모르겠고 과연 언제 클지 궁금했다. 이틀 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화분에 초록 새싹들이 보였다. 너무 신기해서 화분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그다음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물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큰 식물들이 익숙해서 그런지 새싹들의 자라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놀라웠다. 부모님이 아이를 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언니가 조카들과 놀며 열심히 아이들 사진과 영상을 찍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저렇게 매일매일 사진 찍으면 용량은 어쩌지?’ 하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용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제와는 또 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어떻게든 담을 수밖에 없는 거였다. 나의 하루가 별거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질 때,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새싹을 보며 나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위로받기도 했다. 출근하기 싫어도 매일 열심히 자라나는 식물을 보며 힘을 내어 출근했다.
식물 기르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햇빛을 좋아할 수도 피해야 할 수도 있다. 물을 자주 줘야 할 수도 적게 줘야 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개운죽을 햇빛 잘 드는 곳에서 키우다가 멀리 떠나보낸 적이 있다. 햇빛을 멀리해야 하는 식물인데 식물은 다 햇빛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바른 성장을 막아버린 것이다. 모든 식물은 각자만의 자라는 방법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법은 없다. 누군가가 잘 자라났던 방법이 나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각자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5번째 회사에서 퇴사한 후에 내 인생은 망했다고 생각했다. 한 회사에서 끈기있게 오래 근무하며 전문성을 쌓아가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이상적인 삶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거다. 내가 한 회사 오래 다니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만의 방식으로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내면 내 향기가 짙은 정원이 만들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