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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짝 Sep 17. 2023

[여행 자국] 새로운 만남, 오래된 인연

2023.08.30 ~ 09.10 적도 너머에서 배운 것 2

여행은 나 한 사람의 경험과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만남과 함께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연극이 좋았던 만큼, 여행이 더욱 좋아졌다.


처음 만난 사람들

서울 생활을 시작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 살아온 배경도, 하는 일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처음엔 신기했고 내 시야도 점점 넓어졌다. 한국 밖에는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까?


시드니행 비행기에서부터 시작된 만남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면서부터 내 세상은 넓어졌다. 호주로 돌아가는 듯해 보이는 가족, 친구와의 여행을 가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 어떤 이유인지 나처럼 혼자서 비행기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의 대화. 나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호주에 거주하게 된 계기, 워킹 홀리데이, 이민.

공항에 내려 시내로 가던 지하철에서 본 바깥 풍경, 하늘이 참 푸르다.
비행기 한 칸에도 시드니로 향하는 데에는 각자의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인생들

사실 여행을 함께한 우리 셋만 해도 그곳에 있는 이유가 참 달랐다. 회사 생활 중 연차를 내고 간 여행이었던 나, 대학교의 학점 교류로 호주로 단기 유학을 가있던 친구,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거주하는 친구.

타지에서 들린 익숙한 한국어에 말을 걸었던 친구들도 그랬다. 호주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낸 친구, 휴학하고 영어를 공부하러 온 친구. 한국에서 만났다면 공대를 다닌다는 공통점이 크게 느껴졌을 텐데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멋지게 느껴졌다.

함께 본 브리즈번 야경, 강가를 따라 걸으며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친구들이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우리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Sydney Startup Hub의 사람들

여행기간 중 사흘은 휴가를 내지 않은 채 재택근무를 했는데, 금요일엔 근처의 Strarup Hub에 가서 업무를 했다. 다른 절차 없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유 공간이 있어 테이블에 앉아 여느 때처럼 코딩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소중한 맥북만 챙기고 가방은 자리에 둔 채로 샌드위치를 사러 나갔다. 그런데 아뿔싸, 자리에 둔 짐이 사라진 것이다. 분명 이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처럼 편하게 자리를 비우는 걸 분명 확인했는데..  

내부 카페에서 사 온 아침 식사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가방의 행방을 물었고, 분실 우려로 데스크에 맡겨진 가방을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샌드위치를 먹는 나에게 앞사람이 말을 걸었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온 그는 마케팅 프리랜서였고 내년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옆 나라의 사람을 적도 너머에서 만난 게 신기했다. 일 얘기를 하고, 일본인이 많았던 케언즈 여행에서의 궁금증을 해결했던 시간이었다.

내친김에 용기를 얻어 옆에서 코딩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냅다 자기소개를 해봤고, 처음 듣는 호주식 영어에 정신줄을 놓칠 뻔했지만 터미널이 띄워진 노트북 화면에서 동질감을 얻어 마음으로 대충 알아들었다. 시드니 북쪽에서 근무한다는 개발자는 오후 4시쯤 일을 마치고 유유히 떠났다..

종이가 없어 가방에 붙어있던 이름표에 받은 연락처

Startup Hub에서의 마지막 만남은 공유공간 마감 시간에 일어났다. 운영시간이 6시까지라는 안내를 듣고 40분쯤부터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려 했는데, 갑자기 와이파이 연결이 끊겨버려 서버에 접속할 수가 없었다. 허무하게 끝내야 하나 하던 중 다시 접속이 되었고 마지막 몇 분을 남기고 결과를 얻기 위해 코드와 씨름하고 있었다.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시려는지 옆에서 "3 minutes left!"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가방을 정리하고 나는 외침이 들린 쪽으로 향했고, 문을 닫기 직전 그 공간에 남아있던 유일한 분께 어떤 일을 하시냐고 물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호주에서 사업을 하신 듯한 그분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셨고, 자신의 경험으로 도울 일이 있다면 그러시겠다고 연락처를 나눠주셨다.

그날이 내가 호주에서 보내는 마지막 평일이라 한국으로 돌아가 메일로 연락드리겠다고 했고, 어제서야 메일을 보냈다. 어떤 인연이 될진 모르지만 사업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재밌는 일일 테니까.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처음임에도 잘 통하는 기분이었다.

여행을 통해 진하게 알아가기

여행을 함께한 두 친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한 명은 나의 중학교 친구. 1학년 때 만나서 가장 친하게 지냈고,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왔다. 다른 한 명은 대학교 후배. 알게 된 건 2년 정도이지만 많은 일을 함께 겪기도 했고 2년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친구가 되었다.


24시간을 공유하기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여행을 가면 무조건 싸운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여행은 그 기간 내내 상대와 부대끼는 일이기에 서로의 낯선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고, 어긋나기 쉬워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기숙사에서 보낸 터라 친구와 온종일 함께 보내는 데에 익숙했다. 그런데 중학교 친구와는 수학여행 몇 번을 제외하면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게 처음이었고,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번 여행으로 내가 놓치고 있던 친구의 삶을 알게 되었고, 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친구가 집에서 요리해 준 파스타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시차로 살아온 우리는 시차가 맞는 일 년에 몇 없는 그 순간에 꼭 만났다. 각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응원했다. 그럼에도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서로 떨어져 살아온 다른 시간들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타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멋진 모습을 발견하고, 가끔 만나서 듣던 친구의 시간과 공간 속에 함께 들어가 볼 수 있어 기뻤다.

함께 보낸 일주일

대학교 친구와는 얼마 전까지 못 보고 지내던 두 달이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본 것임에도 매일같이 연락해서 그런지 어제도 만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말로만 듣던 시드니의 시내, 학교를 함께 걷는 일은 또 새로웠다. 친구의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연기 수업을 청강하고, 캠퍼스를 산책하면서 그동안 떨어져 있어 공유하지 못한 시간을 진하게 나눴다.

캠퍼스 내 카페에서 산 스프와 치즈 샌드위치, 잔디에 앉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많았다

함께 생활한 기간은 길지만 여행은 처음이었다. 많은 양의 과제와 시험으로 기숙사에서 밤을 새우거나 힘들고 어려운 프로젝트를 함께 해내는 것 말고, 놀기 위해 같이 보낸 시간은 또 달랐다.

서로가 좋아하는 걸 같이 하고, 친구가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기대했던 새로운 만남의 설렘만큼 원래의 인연을 더욱 단단하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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