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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Feb 16. 2022

#36. 별 일이 없어 쓸 일이 없었습니다.

 학창 시절, 글로 상을 타면 엄마는

"아빠 닮았어."라고 말했다.

나의 출생으로 대가 없이 얻은 재능을 다시 알려줬다. 대가 없이 생긴 능력이 싫지만은 않았다. 듣기에 따라 노력 없이 거저 얻은 듯한 것으로 들리겠지만, 다시 한번 내 출신을 확인받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이 생기면,

'누구나 각자의 취향이 다르니 상관없어.' 한 없이 용감했지만, 유독 아빠에게 내 글을 보이는 일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아빠는 내 글을 보고 잘 썼다 말한 적도, 글이 별로다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다 읽었다며 내 원고를 다시 돌려주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친구 몇 명 외에 아무에게 잘 알리지 않았지만 아빠에게 브런치 링크를 보내드린 적이 있었다. 내 예상과 달리 새 글이 올라갈 때마다 아빠는 부지런히 내 글을 읽으셨고, 어느 날 처음으로 내게 말했다.


 "소재가 너무 한정적이다. 인기 많은 다른 브런치 작가들을 다 살펴봤니?

구독자 많은 브런치 작가 글을 보면 뭐든 특정 깊이 있는 주제가 뚜렷한데 너는 너무 어릴 적 기억, 가족, 개인적인 소재만 있어 항상 글이 새롭지 않다. 이 이상 가려면 새롭고 개성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해."

 

 대학시절 들었던 수업 중 문예창작 담당 교수님 이후 내게 이렇게 직설적인 평은 처음이었다. ("잘 읽히지만 거기까지. 대부분 너무 가벼워요. "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보다 내가 닮은 사람에게 들은 평가이기에, 그 말의 진심을 알기에 기분 상하진 않았지만, 그 이후 나의 브런치 정체기가 왔다. 일상에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되었던 지난날이 한없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일상과 내 지난날의 기억이 별 일이 아닌 것 같이 되어버렸다.

인기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찾아 읽고, 조금 게을리했던 독서도 부지런히 했다. 나만의 개성 있는 주제를 찾기 위해서.


 내가 그동안 브런치 글을 올리지 않은 날들이 꽤 지나자 친구 중에 하나는 어느 늦은 밤 전화를 했다. 멀리 살아 이제 얼굴 본 지도 3년이 되어가는데 내 안부가 걱정되어 연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애 키우느라 정신없었어'라고 대답했지만 곧 내 브런치 글이 식상하냐고 물었다. 친구는 듣는 내 마음을 위해 좋은 말만 식상하게 하다 내가 꽤 고심한 흔적을 느꼈는지 곧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물론 인기 많은 브런치를 보면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주제와 소재가 있지만 너도 너만의 느낌을 가진 브런치 작가라고. 가끔 퇴근 후 자기 전에 내 글을 보면 어렵지 않고, 별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 더 편한 것도 있다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더 길게, 더 빛나려면 아버지 조언대로 무언가 새로운 것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얼마 되지 않은 내 브런치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았다. 한 순간에 몰아서 읽어보니 확실히 반복되는 소재가 있었고, 겹치는 장면들도 꽤 있어 놀랐다. (부끄럽게 오타도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내가 독자라면, 바쁜 일상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가치가 있을까 고민해봤다. 쉽게 쓰인 글들이 한순간 부끄럽게 다가왔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 새 글을 올린다 생각들 하시겠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글을 쓰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보냈지만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은 없다. 훔치고 싶은 다른 사람의 브런치들도 많았고, 내게 없던 기발한 시선을 가진 이들도 많아 새삼 질투가 났다.

하지만, 이 나름의 내 브런치도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 날 그 새롭고 참신한 소재가 내게 찾아오지 않을 . 내 깊이가 좀 더 숙성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결국은 질보다 양을 택한 것 같은 비겁한 변명이지만, 사람마다 색이 다르듯이 내 글은 흔하지만, 편안한 글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생각하며 써야지. 계속해서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날 고흐처럼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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