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아이가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에 웃으며 대답하는 것을 보며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엄마의 나이가 된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는 이제 돌아가신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간다. 무엇하나 반듯하게 이뤄낸 삶도 아닌 것 같고, 무엇하나 아름답고 정교하게 완성시키질 못했는 것 같은데 시간은 내 처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직장에 다닐 때 보다 휴직하고 있는 지금의 하루가 더 빠르고 바쁘게 흐른다. 지금은 진심으로 반성하지만 예전 출근하면서 전업주부인 엄마들을 마주치면 내가 일하는 동안 그들은 느긋하게 휴식하겠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부럽다기보다 은연중에 직장으로 가는 나의 삶이 그들보다 더 알차다는 착각을 한 때가 있었다.
물론 휴직을 해보니 직장을 다닐 때보다는 식사도 느긋하게 할 수 있고 업무전화와 메일에 해방되어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조금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나름의 삶에서도 해야 할 일은 분명 있었다. 좀 더 가정을 챙겨야 했고, 집에 있다는 생각에 집안일도 예전보다는 정성스럽게 해야 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루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저녁의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 삶의 목표를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삶의 과정이 만족스럽든, 불만족스럽든 삶은 흘러간다. 오늘 하루만 해도 내가 전 날에 꼭 해야지 했던 일이 마무리되지 못해도 아이의 하원 시간을 다가오고 식구들의 저녁식사 시간은 정해진 때에 온다.
남들과 같은 삶의 과정을 매년 학년 올라가듯이 해야 마음이 안정되었던 나는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 인생의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거치는 과정을 그 나이게 맞게 부지런히 해내다 보니 지금이 되어버렸다. 가끔은 당시에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하는 부질없는 미련도 들기도 하지만 결국 되돌릴 수는 없다. 곧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고 우리 부부의 울타리를 떠나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가겠지. 그럼 노년의 우리는 늙고 낡은 몸을 보살피며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해 준비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친정엄마가 어느 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옷이나 물건을 사서 모으지 않는다고. 그리고 지금도 가진 것도 많아 필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필요한 누군가에게 준다며.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에 본인이 갑자기 떠났을 때 남겨진 가족들이 자신의 물건을 치우는 일에 덜 수고스럽길 바란다고 했었다. 담담하게 말하는 엄마도 수긍하는 나도 우리 모두 죽음이란 단어에 막연한 두려움보다 그 나이에 맞는 준비와 삶의 형태가 분명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다가올 곧 마흔이라는 시간은 늦게 갖게 된 둘째로 인해 당분간 육아라는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하겠지만, 어제와 오늘처럼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하다 보면 그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
여섯 살 아이는 이제 내가 같은 잔소리를 두 번 말하면 "알겠어. 한 번만 말해." 되받아친다. 벌써 타인에게 본인의 의사와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꽤나 뿌듯하고 기특하다. 아이가 자신만의 세계로 떠나는 날 조금의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 헛헛함을 나의 생애 주기에 합당한 일을 하기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고 싶다.
어차피 언젠가 떠나야 하는 아이의 빈자리를 섭섭해하기보다 당장의 내 삶에 도움 되는 일을 찾아 실행하고 싶다. 나이 듦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다 보면 다른 세계로 떠난 아이에게 적어도 말은 통하는 더 큰 어른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를 위한 아침을 차려먹고, 청소기를 돌린다. 필요한 것을 장을 봐서 저녁 반찬을 미리 준비하고 정원 물청소를 하며 떨어진 낙엽을 모은다. 잠시 숨 돌려볼까.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 하면 오후 4시는 금방이다. 단조롭고 비생산적인 일 같지만 나의 행위로 인해 아이와 남편은 내일 깨끗한 옷을 입고 각자의 자리로 갈 것이고, 저녁 식탁에 앉아 각자의 오늘 하루 일상을 서로 나눌 것이다. 나 역시 청결한 환경에서 나만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어떤 일도 보잘것없는 것은 없다.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넘어올 때 문득 삶이 참 덧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보람이나 쓸모없이 헛되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내고 있던 청춘과는 달리 앞으로 삼십 대 내 인생은 결국 사회적 시선에 맞게 취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며 지나가겠지. 그러다 백발노인이 되어 늙은 몸을 겨우 이끌고 집 근처 성당에 가서 살아온 삶의 잘못을 하나하나 고백하고 반성하며 마무리하겠지.
삼십 대에서 사십 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하찮다고 생각했던 이십 대의 내 잔잔한 일상이 하나하나 겹겹이 쌓여 결국 나의 인생 전체를 견고하게 이뤄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잔잔한 일상이 결국 불행의 파도를 비켜낸 기적인 것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화려한 대작이 될 것 같진 않다. 내 인생의 영화 한 편이 남들이 모두 알아주고 유명한 이야기가 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소소한 행운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고 오늘처럼 자주 사지 않던 로또가 5만 원이 당첨되어 교환하러 가는 일도 내게 일상의 행복이다.
오늘 하루 행복했다는 하원 하는 아이 손을 잡고 걷는 오후도 기적이며,
별 일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모습도 저녁의 행운이다.
소박한 반찬을 차린 식탁에서 하루 동안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저녁시간도 인생의 행복이다.
기적도, 행운도, 행복도 거창할 것 없다. 그저 내가 정의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사십 대를 앞둔 나는 요즘 도전과 모험을 하는 용기를 손에 놓진 않았지만 나머지 손에 잡고 있는 소소한 내 삶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