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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Feb 22. 2022

#37. 가난이 주는 불편함

- 혹은 소비생활에 대한 고찰

<오늘의 메뉴>

찹쌀도너츠, 바나나


  가난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처음 가난이라는 단어를 가까이 느껴본 때가 아빠가 은행원을 명퇴하면서 였던 것 같다. 미리 말하지만, 아버지의 명퇴가 내 삶을 나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아버지의 개인적 경력 선택에 대해 원망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버지가 표면적으로 '은행원'이었던 전과 후로 내가 가난에 대해 가진 정의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이전의 가난은 미디어에서 나왔던, 다소 과장된 이미지의 가난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과장된, 실제 가난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미화된 이미지였을테지.

당장 의식주를 걱정하고, 내가 갚아야 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쫓기고,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한 장면이었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예쁜 얼굴에 눈물 한 방울 흘리다 곧 재벌 왕자님을 만나 풍족해지는 이야기. 가난은 그저 해피엔딩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작은 간이역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아빠가 은행원을 그만둔 이후 내가 생각한 가난은 좀 더 심오해졌다.


 그전에 돈은 그저 내가 써도 그만, 남을 줘도 그만이었다. 어차피 내일 용돈은 다시 나올 것이며, 용돈이 아니라도 필요하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사 줄 것이기에 그 당시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굉장히 너그러운 아이였다.

실제로 우리 집에 놀다 내 물건이 예쁘다 한 마디에 나는 "너 가질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다 더치페이를 하다 끝 자리가 애매하게 남으면 기꺼이 내가 더 부담했다. 얼마 되지 않은 몇 백 원에 친구들과 어색한 공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돈은 편리함의 무기가 되었다. 표면적으로 너그러운 아이가 되니 하굣길에는 항상 주변에 친구들이 가득했고, 나의 부탁도 당장 들어줄 친절한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당장의 내 불편함은 분식집에 떡볶이로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었다.


 사실 아빠가 은행원을 그만뒀어도 우리 집은 드라마 속 주인공의 삶처럼 비참한 가난을 실감하진 않았다. 아빠는 비슷한 업종으로 바로 이직하셨고 평생 월급쟁이 삶을 지속하셨다. 스스로 사업이나 자영업은 안 맞다는 말씀대로 늘 우리 가족에게 크든 작든 다음 달의 수입이 예측되는 안정적인 삶을 주셨다. 하지만 당시 미묘한 일상의 변화가 시작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저마다 쉽게 방학마다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고 겨울엔 스키장을 동네 영화관처럼 가기 시작했다. 그 무리와의 당연했던 일상이 뭔가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 배낭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게 한 친구는

"형편이 되는데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여행비를 마련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너랑 친하게 지내라 하더라."

나쁜 마음 없이 오직 칭찬을 전하는 말이었지만 그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혼란스러웠다. 이대로 연극을 하며 살아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단지 예쁘면 샀던 나의 소비 형태가 크게 변했다. 이제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돈으로 지불함으로 내가 가지는 이득과, 내가 잃은 다른 것을 논문을 쓰듯 따져보았다. 물건 하나를 사는데 몇 십배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500원 더 싼 곳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검색해야 했고 그 과정을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허비해야 했다. 어느 순간 물건을 사는 행위가 즐거워지지 않았다. 쇼핑이 회사에 출근하는 근무시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정이 너무 빡빡해서 그런지 막상 물건을 얻게 되면 내 기대치에 닿지 못해 모든 소유가 불만스러워졌다.


 어느 때는 장바구니에 한참 담아뒀다 몇십 개가 쌓이면 삭제 버튼으로 날려버린다. 실제 가져보지 못했지만 이미 지난날의 소비에서 느낀 실망감을 지레짐작하여 새로운 소비를 미리 포기해버린다. 소비의 행위 앞에서 나는 수천번 신포도 앞의 여우가 되었었다.  이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얼리어답터로 불리던 나의 명찰이 사라진다. 풍족하고 무분별하게 했던 지난날의 소비가 건강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후의 소비생활도 예전만큼 행복하지는 않으니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는 가끔 헷갈린다.


 모든 소비의  정당성이 가성비에 집중하다 보니 오로지 내 즐거움을 위한 소비에 엄격해졌다. 당장 이 소비로 얻는 즐거움이 작겠지만 간혹 그 행위로 앞으로 며칠이 행복할 수도 있고, 내 일의 능률이 오를 수도 있다. 내가 지불한 만큼 당장의 성과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소한 행복도 중요하다는 것을 잃어버렸다.

가난은 낭만도 잃게 만든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 현재의 나는 무소유의 만족감을 조금은 아는 미니멀 라이프의 지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가성비를 따져야 하는 소비생활은  피곤하다.


 현재는 물건을 가지는 행위 즉 소비활동에는 마음을 많이 비웠고 대신 내가 가진 부분에 더 채우려 노력한다.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 충동구매는 발생한다.)

독서로 상식을 채우고, 영화로 감성을 채우고, 부지런함으로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마음 표시는 전할 만큼의 소비도 마땅히 지불하고 적어도 은혜는 아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에 대한 소비는 많이 비우 돼 인간관계를 위한 소비는 각박하지 않게, 엄격하지 않게 지속되고자 노력한다.


 나의 소비활동은 지금보다 풍족했던 시절에 비해 굉장히 피곤하고,  계산적으로 변했지만

돌아보면 구입하고 소유하는 행위에서 많이 자유로워지기도 하였다.

가난은 이처럼 내게 불편함과 염려하는 마음을 주었지만, 인생의 다른 부분에 더 집중할 기회도 주었다.

물론 적당한 가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난을 가졌기에 가능한 긍정적 결과이다.

나의 가난이 더 가혹했다면 지금의 글은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나는 부자들을 경멸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나 역시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날 내가 생각한 기준의 부자가 될 것이라 믿고 있고

그들은 적어도 나보다 노력한 이겠지 여긴다. (물론 부가 인격과 비례하지 않고, 저속하고 부정한 부자도 있지만 부자 자체에 반감은 가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시절, 친구들에게 겨울방학마다 스키장을 영화관 가듯이 가지 못함을 털어뒀을 때 의외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형편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친구였던 우리의 사이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더 지나 보니 당시 그 친구들의 인품이 대단했음을 새삼 느꼈다. 상대는 내가 외적으로 가진 것에 전혀 관심 없을 수 있는데 굳이 내가 연극을 하며 피곤하게 살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연극을 해야만 지속될 관계라면 그 인연은 잘못된 것임을 그 친구들로 인해 배웠다.


 오늘도 나는 아이의 기저귀 핫딜을 기다리고 있고, 분유 2000원 싸게 구입했음에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가끔 아이가 자는 캄캄한 어둠 속에 시력을 해치며 단돈 2000원 싸게 구입하는 태가 과연 이득인지 혼란스럽지만  형편과 만족감에 어울리는 합리적인 소비에 대해 정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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