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졸업반부터 미디어의 형태가 급변했다. 영화관, 공연장에 직접 가야 했던 문화생활이 슬금슬금 내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지금처럼 신작을 바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비디오, DVD가 있었지만 개봉하고 몇 달이 지나야 집안에서 볼 수 있었기에 우리는 당장의 감동을 체험하기 위해서 물리적인 노력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영화관이 아닌 집 안에서 먼저 공개되는 작품도 생겼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문화 체험 형태가 무조건 불편하고 나쁜 것을 아니었다. 누구랑 가서 볼지, 혼자 가서 볼지, 보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할지. 돌이켜보면 즐거운 고민이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이제는 비밀번호 네 자리로 결제를 하고 신속하게 볼 수 있다. 내가 전화를 받거나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땐 일시정지도 가능하다.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조심했던 행동들은 집에서는 할 필요가 없다. 간편하고 우리 생활에 이로운 문화 형태지만 최근엔 아쉬움이 든다.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봤던 영화를 이제 즐거운 장면만 골라보거나 나와 맞지 않으면 중간에 '나가기 ' 버튼으로 종료한다. 감동도 이제 개인적 선택으로 선별할 수 있다. 최근에 생각해보니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한 적이 드물었다.
당시엔 내가 좋아하는 장면만 보다 보니 영화를 본 다른 사람의 감상평을 들을 때 내가 모르는 부분이 꽤 많았다. 그리고 다시 봤을 때 별로였던 작품이 생각보다 감동적이라 놀랐던 적도 었었다. ' 나가기' '건너뛰기'를 하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감동을 놓쳤던 것이다. 물론 육아를 하며 긴 영화 한 편을 온전히 감상하기는 사치이다. 그러한 상황이 이유도 되겠지만 어느 날 무수한 건너뛰기를 하다 결국 결말만 따지는 나를 발견했다.
영화를 뒤늦게 보는 남편에게 " 그래서 주인공은 죽었어? 살았어? 둘은 결혼했어? 헤어졌어? "
( 결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늘 드라마나 영화 끝에 두 사람의 결혼 여부를 집요하게 따진다. )
주인공이 그러한 선택을 한 이유나 그럴 수밖에 없었던 흐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마우리만 중요히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매체에서 워낙 유명해 어쩔 수 없이 봐줬던(?) 영화도 도입부를 보다 "건너뛰기"로 결말만 보고 본 척하기도 했었다. 바쁜 현대사회를 핑계되면서......
어느 날 예전에 봤던 영화를 틀어두고선 일부러 리모컨을 멀리 두었다. 중간에 지겨운 부분이 나와도 끝까지 본 적이 있었다. 이런 간단한 일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 스스로에게 놀랐었다. 당연한 영화감상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그런데 지겹다고 생각한 장면들이 모여 마지막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등장인물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냥 들어간 장면이나 대사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감독이나 작가나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의 주제에 맞게 연결했을 텐데 나는 그동안 상대의 말에 너무 결론만 따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와 있었던 일을 말하는데 아직 어려 말이 서툴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속에서 나는 얼마나 결론만 집요하게 요구하는 부모였는지 반성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남편에게 늘 결론만 말하라고 재촉했었다.
내가 어릴 적에 신문 사설을 보고 요약하는 학습 활동이 한동안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글이나 긴 이야기를 듣고 핵심만 요약할 수 있는 활동은 글 읽기, 글쓰기에 좋은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학습활동이 어느 순간 내 일상 중간에 자리 잡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요약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필요 없는 말은 없다. 물론 우리는 말을 하다 중심에게 벗어나 관계없는 다른 것들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말도 상대에게 좀 더 자세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갔을 수도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을 설명할 수 도 있는 노릇이다.
물론 회사나 공적인 장소에서는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생활에서는 국어 학습지 풀 듯 엄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를 처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건너뛰기' 안 한 적은 너무 오랜만이라 마치 근무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해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도 훨씬 공감이 잘 되었다. 영화를 파악하는 일도 이처럼 진득한 기다림이 필요한데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진심을 얼마나 건너뛰었는가 되돌아보았다.
코로나가 좀 더 안정되면 몇 년 전에는 당연했던 영화관이나, 친구들을 만나 그저 바라보며 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별 의미 없는 말에도, 별 가치 없는 것 같은 대화도 지나고 보면 가슴 따뜻한 시간들로 남는 것처럼 대상을 마주해보고 싶다.
그리고 오늘부터 타인의 말을 내 기준에서 함부로 가치에 대해 평가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가장 경계할 것은 결국 내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 옳은 것도 배척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 가치를 함부로 판단하다 보면 결국 나는 정말 중요한 진심을 잃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