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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Aug 18. 2022

#40. 깍두기

-제대로 속하지 못한 존재

(오늘의 메뉴)

이유식 말고 나만의 식탁은 언제쯤


  어릴 적 동네 언니, 오빠들과 놀면

난 늘 "감자"였다. 지역마다 명칭이 다른데 오징어 게임에서 나왔던 "깍두기" 의미가 우린 감자였다.


  어리거나 힘이 약하면 어느 팀이나 자유롭게 소속하게 해 줬기에 대결하는 게임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원망 듣지 않았다.

약한 자를 놀이에서 배재하지 않고 감자로 받아 주다니. 지금 생각해도 마음 따뜻한 문화다.

배려를 받아봤기에 나도 언니가 되었을 때

동생을 놀이에 빼지 않고 감자로 참여시켰다.

그땐 감자가 배려의 마음이었고 그렇기에 듣기에 거북하지 않았다.


  감자가 배려의 존재가 아닌 이방인의 존재가 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대학교 3학년. 방학 때 인턴 명찰을 매고 한 기업에 갔을 때였다. 분명 소속된 부서가 있었고 처음 기술서대로 내 장점 업무가 있었지만 나는 감자가 되어 이 부서 저부서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때도 내 존재가 감자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난 어쨌든 졸업자도 졸업예정자도 아닌 재학생이었다.

단지 졸업하고는 절대 인턴이 되지 말아야겠다 결심했다.


  삶은 내 뜻대로 흘려가지 않았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가면 정직원을 달 수 있었지만 대기업은 6개월~1년짜리 인턴만이 가능했다. 중소기업보단 대기업이었다.

내 첫 명함을 중소기업에서 시작하긴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웠다.

졸업예정자로 원서를 써서 기업에 들어가니 졸업자로 인턴 명찰이 주어졌다.

큰 로비에 경비원이 몇이나 서있는 곳을 띠리릭 기계음을 내며 지나는 그 순간만 행복했다.

그 입구를 들어가는 순간 나는 그 회사의 감자였다.


  분명 소속 부서는 있었지만 내게 큰 기대들이 없었고 나는 그저 바쁠 때 돕다 한가해지면 옆 부서의 바쁨도 나눠야 했다.

아. 어릴 적 일이 갑자기 피어올랐다.

이 팀, 저 팀 날 배려해줬지만 각자 전략을 짤 땐

어느 팀도 날 끼워주지 않았었다.


  "쟤 우리 꺼 저기 가서 얘기할 거야. 빼고 말하자."


각자 팀이 회의를 할 동안 나는 중간에 서서 운동화 끝으로 모래를 들었다 놨다 의미 없는 행동만 했다.

가만히 서있음 염탐하는 것 같아 괜한 의심 사기도 싫었다.


  그 불편한 존재가 성인이 되어서 다시 되다니. 나는 이 부서, 저 부서 몸 받쳐 일해도 결국 스파이 같은 존재. 곧 소속 없이 떠날 존재였다.

같이 들어와 으쌰 으쌰 했던 인턴 동기들이 하나씩 명찰을 반납한다.

좋은 곳 정직원에 가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감자가 된 자신이 가여워 나갔다.


  '근무 성적 좋을 시 다음 지원 가산점' 그 문구가 나를 계속 감자가 되도록 묶어두었다.

잔인한 문구였다. 다른 대기업의 정직원이 되어 명찰을 반납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을 꿈꿨지만 그냥 꿈이었다.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면접 제의가 오는 곳이 대부분 중소기업이었다.

슬슬 나의 능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날 도마 위에 두고 이리저리 살피며 상품성을 매기는 순간은 처절했다.


  감자가 되어 게임을 잘하는 순간 팀원들이 마치 내가 자기들 팀인 것처럼 안아준다.

다른 팀 언니가 화를 낸다.

  "야. 너 왜 아까는 못한 거야? 일부러 그랬어?"

 그 말이 떠올라 다음 순간부터 실력을 다 드러내야 하는지 이번에 이 팀에선 일부러 져야 할지 혼란스럽다.


  "코뿔소 씨. 어제 일했던 부서 어땠어? 팀장님 좀

  깐깐하시지?"

 "글쎄요. 일만 정신없이 하다 와서."

 "와. 코뿔소 씨 은근 사람 철벽 친다. 대단한데?"

'정규직 지원 시 가산점' 때문에 진심으로 정신없이 일하다 온 내가 가식적인 인간이 되어 어느 날 여기저기 떠돈다.


  같은 감자로 들어와 가장 친했던 친구가 떠나겠다고 했다. 어느 곳도 완전히 합격하진 못했지만 더 이상 그 문구에 묶여 자신을 희생하기 싫다고 했다.

순간 내 발을 붙잡는 가산점 문구의 진실성에 대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희망고문 같은 문구였다. 정말 열심히 하면 가산점을 줄까. 그 가산점이 날 정직원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나는 결국 그 인턴 자리를 스스로 나왔다.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날 팀원으로 받아줬다

그 일이 끝나면 곧 떠날 사람이었다.

본인들의 속내도 주지 않고 부서의 일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내 속을 캐묻고 취조하는 것도 정당한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완전한 사회인이 되기 전 기업문화를 익히고

업무를 여럿 경험하며 자신의 적성을 찾아보라는 그럴듯한 말속엔 잡다하고 귀찮은 건 너에게 시킬 테니 하려면 하고 아님 나가도 된다. 이게 본심인 것 같았다.


  깍두기, 감자라는 말이 싫다. 따뜻한 놀이문화도 이렇게 냉소적으로 보게 된 내가 싫고 그런 사회의 시간들이 미웠다. 나의 졸업 후 사회의 시간들은 날 단단하게 만들었다. 상대와 내 위치가 공평한지 어느 쪽이 부당함이 없는지 따져볼 용기도 생겼지만 있는 대로 믿는 따뜻함도 사라졌다. 일단 호의를 받으면 의심부터 했고 특히 무언가를 먼저 내어주면 그것의 것도 베푼다는 문구를 절대 믿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치사하네 피하게 되었다.

인간관계도 결국 나에게 바라기만 하는 사람들도 일적으로 어쩔 수 없이 만나도 사적으로는 모두 잘랐다.

내 것이 많음 먼저 줄 수도 있고, 상대가 순간 어려우면 먼저 도움 줄 수 있는데 그것도 먼저 요구하는 당돌함이 감자였던 20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분함이 들었다.


  인턴이라는 자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정직원이나 사회인이 되기 위해 앞 단계가 있어야 하나.

그럼 세상 모든 사회인들은 인턴을 거쳐 완성이 되었나.

어떤 전문직은 현실적으로 인턴의 단계가 있어야 하는 분야도 있다. 그리고  학생 신분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하기 위한 방학 프로그램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학생들이 졸업 전 체험으로 진로를 다시 설정하는 도구 정도로.

그리고 가산점이나 혹 어쩌면 전환이라는 문구에 묶여 오늘도 깍두기가 된 그들을 적어도 이용하지 말길. 그들은 지금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도 불확실한 미래와 어정쩡한 명찰에 매일 힘들어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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