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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Oct 13. 2022

# 41. 그랜마 모지스

- 상자를 열었다는 것은 책임지겠다는 뜻

  

이 쪼꼬미 때문에 책 한 줄 읽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읽다 다시 그 자리.

읽다 다시 그 자리. 수백 번 반복.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나 달력에 흔히 쓰이는 그림이 있다. '그랜마 모지스'다.

그랜마는 우리가 생각하는 할머니가 맞다. 별명이자 작가의 이름으로 남게 된 그랜마 모지스는 그림뿐만 아니라 이름도 친근하게 한다.

그녀는 정규 미술을 배운 적이 없으며 75세에 손자, 손녀가 쓰던 물감으로 작품 세계를 시작했다. 100살쯤 눈을 감기까지 부지런히 많은 작품 수를 남겼지만 그녀는 미술가로 25년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그전에 그녀는 그녀 한 동네에 잼을 만들던 그랜마였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의 어린 시절 풍경과 같진 않지만 (국적이 다른 만큼 지형도 다른 환경이었기에) 모두가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

작품을 보며 인상파니 기법에 대해선 알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삶이 조급해지고

한없이 나 스스로 못나 보이면

난 그랜마 모지스의 그림을 본다.

75세에 화가가 된 그녀의 그림은

"늦으면 어때? 난 74살까지 잼만 만들었다니깐."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이른 나이에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고

다시 더 큰 것을 목표로 잡아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것.

그런 인생이 정답이라고 여겨왔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괜히 선행학습에 대해 상담받고 고민했다.

나는 이미 이른 나이에 이루긴 틀린 것 같으니

아이 만이라도 빨리 준비된 시작을 시키고 싶었다.

결국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한 일이었다.


고등학생 때 아침마다 칙칙한 교복에 성게 같은 여드름을 거울로 볼 때면

다가올 내 20대는 아예 다른 나로 시작할 줄 알았다. 무엇이든 리셋된다고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지나와보니 그 칙칙한 교복 입던 시절도 내 발판이 되어 미래가 된다는 걸 알았다.

그때 알았다면 나는 그 시절을 더 사랑하고 아꼈을 것이다.


오늘도 첫째 등교 준비에 힘이 빠지고

둘째 우유 먹이고 거울을 보니 새치가 조금씩 삐져나오는 못난 내 모습이 있다.

내 전성기도 그랜마 모지스처럼 70대에 오려나.

그러려고 사십을 앞두고 또 나는 출산을 택했나 오만 생각이 들지만

그때 알았으면 좋을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의 나도 결국 훗날의 내 멋짐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아이의 선행학습은 일단 더 고민하기로 했다.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내 결핍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교육열 높은 친정엄마가 들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며 답답해하겠지만

선행학습을 해온 나 역시 결국은 완벽하지 못했으니  정답은 없을 것 같다.


매일 반복되고 시시한 육아지만

아이들은 아직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나를 찾아 운다. 본인들의 위기나 아픔에 그만큼 부모밖에 믿을 곳이 없다는 것이겠지.

작은 아이들의 우주가 곧 지금은 나다.

누군가의 우주가 된다는 거 그 자체도 멋진 일이다. 몇십 년이 지나면 스스로 우주가 되도록 가르쳐야겠지만 그 순간까지 나는 아이들의 아름답고 멋진 우주가 되도록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분유 온도를 맞춘다.


그랜마 모지스의 75세 영광 같은 순간은 내 인생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처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우주가 된다면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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