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물고기 Nov 09. 2021

C#01. 친절한 금자씨

2005. 07.29.

  

  대학교 2학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화장실도 같이 가주던 끈끈했던 친구가 서울로 대학을 가고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본가에 올 일이 있으니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12-13살 가족보다 더 서로를 안다고 생각했던 사이에서 각자 다른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면서 진짜 남이 되어버린 사이였다. 기말고사 후 무료하게 집에 있던 여름방학이라 들뜬 마음으로 시내로 나갔다.

본가에는 오랜만에 내려온다 했으니 오늘은 우리가 학생 때 다니던 쫄면 집을 데려가서 사줘야지. 조금 웃긴 일이었다. 고작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어 1년 반 정도 그곳에서 살다 내려온 아이인데 뭔가 서울 사람을 만나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이었다.


  교복 입던 때 자주 가던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익숙한 얼굴 다정한 얼굴에서 어설픈 서울말이 나왔다.

 "여긴 아직 그대로구나." 순간 어설픈 서울말 속에 그대로라서 참 좋다는 것이 아니라 여긴 아직도 발전하지 못했구나. 그런 어감으로 내 귀에 들어왔다. 착각이겠지. 안부를 열심히 물었다.

온통 서울의 이야기였다. 속으로 나도 기업 인턴 때문에 자주 올라가는데. 나도 네가 말한 기업에서 저번 방학 때 2달 프로젝트하다 내려왔는데 하려다 친구의 들뜬 자랑을 모른 척 들어주었다.

같은 사투리를 쓰고 일상을 나누던 친구가 어색한 서울쥐가 되어 나를 시골쥐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맛있던 쫄면이 갑자기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 보러 갈래?"

들은 말 중에 가장 반가웠다. 적당히 영화 한 편 보고 헤어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쥐 친구는 내게 '친절한 금자씨'를 권했다. 갑자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와 작품세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영애의 작품 세계와 연기 세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아무튼 결론은 아주 작품성이 뛰어나니 보러 가야 한다는 요지였다.


 친절한 금자씨는 내게 시큼 텁텁한 쫄면의 맛과 어설픈 서울말이 귓가에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는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서울쥐 흉내를 내는 친구가 웃기고, 어이없고, 같잖다 생각되어 영화가 빨리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는데 뭔가 짠했다. 서울에 올라가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겠지. 나름대로 적응하느라 노력한 흔적이겠지.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대학도 여기서 다녀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지만 나름 스무 살의 첫 단계를 이방인으로 적응하느라 힘들었겠지. 짠함이 조금 밀려왔다.

  산소 같은 여자가 어색한 붉은 눈 화장을 하고 순진하고 깨끗한 얼굴로 잔인한 짓을 하는 영화를 보며 어색한 서울말을 듣는 것 같았다. 13년간 억울한 복역생활을 하고 출소한 후 복수를 그린 줄거리였다. 쫄면을 먹으며 예술성이 뛰어나니 무조건 봐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이미 꼬여 내 머릿속에 들어온 탓인지 보는 내내 흠을 잡고 싶었다. 중간중간 불편한 장면도 싫었고, 당시 영화에 신선했던 내레이션도 거슬렸다. 금자랑 근식이 나이 차이도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고 이정과 백 선생의 식탁 장면에서는 이런 게 너의 예술세계냐 불쾌함도 들었다.

이미 나는 관객이 아니라 서울쥐가 되어버린 친구에 대한 복잡한 마음과 지방대에 결국 남은 나의 꼬인 자격지심이 섞여 아주 치졸한 비평가가 되어 앉아있었다.

 며칠 전에 모두 잠들고 잠 오지 않던 새벽 티브이에서 해주는 '친절한 금자씨'를 보았다. 확실히 편집이 많이 되어 임산부가 보기에는 적당했다. 자격지심이 꽉 차 버린 스물한 살의 시골쥐에서 이제 뭐든 그럴 수 있지. 서른일곱의 아줌마가 되어 본 영화를 조금 달랐다. 모든 장면과 모든 관계가 그럴 수 있지. 세상엔 그런 일도 있지. 어느 한 장면, 어느 한 대사가 내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보고 있었다.

앞 뒤가 뭐든 딱딱 맞아떨어져야 했던 조금 융통성이 없던 이십 대를 지나 보니 모든 게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살다 보면 금자처럼 기가 막히는 일을 당하는 것도 있고 당시 영화에서만 존재했던 백 선생도 지금은 세상에 널렸다. 오히려 백 선생의 결말은 속이라도 시원하지 현실의 백 선생들은 아직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나의 도덕의 가치관이 혼란이 올 만큼.

당시에는 얼굴도 기억 안 나던 단역 배우들이 지금은 이영애 보다 예능에 활발하게 나오는 것도 세상일 참 모르는 것이네 싶었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도 요즘 방심하면 꼰대가 될 수 있는 내게 새겨들어라 하는 말인 것 같아 쉽게 들리지 않았다. 맞아. 나라도 잘하자. 생각해보면 나는 이번 생에 한 종류의 인생만 살았지. 그런 내가 뭘 안다고 후배라고, 신입이라고 조언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웃기지. 그들의 인생은 감히 내가 살아보지 못했으니 쉽게 말하고 쉽게 단정 짓지 말아야지.


  2005년 여름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오니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녁도 먹고 헤어지자는 친구의 말에 어색한 거짓말을 하고 영화관 바로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타버렸다. 그 친구의 본가와 우리 집은 같은 방향이라 버스도 같은 번호였는데 나는 약속이 있다며 반대 방향 버스를 탔다. 더 이상 함께 있으면 정말 이 친구와는 끝일 것 같았다.

끝일 것 같아 반대 방향 버스를 탔지만 결국 그 이후 만나지 못했다. 이제 전화번호도 지워졌다.


 거실의 영화가 마치고 안방에 들어와 아이 옆에 누웠는데 서울쥐는 그 길로 진정한 서울 사람이 되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뭐든 그럴 수 있지 하는 지금의 나와 '친절한 금자씨'를 같이 봤다면 있는 그대로 너를 이해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게 그 아이와 나의 인연의 길이겠지. 수긍했다.

'친절한 금자씨'로 끝나서 각자의 인생이 더 좋았을지 모른다. 그때 버스정류장에 헤어져서 오히려 이 정도로 나쁘진 않게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2005년 여름에는 친구와 헤어지고 버스에 앉아 후반부에 백 선생을 죽이고 금자는 도대체 우는 걸까 웃는 걸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뭐야. 그런 놈 죽었음 춤추며 웃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 찝찝한 표정을 뭐야.

아. 아무튼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하루야. 생각하며 목적지 없는 반대편 버스에 앉아 생각했었다.

어디서 내려 다시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타야 하지. 어디까지 더 가야 하지. 고민하면서.

지금은 그 표정이 알 것 같았다. 본인의 어이없는 인생도, 이미 다른 사람들의 자식이 되어버린 제니도 두부같이 새하얀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든  저 인간도 모든 것이 기가 막히고 허무할 것이다. 복수는 했지만 이미 두부 같지 않은 더럽혀진 본인의 인생은 돌릴 수 없다.


 시골쥐는 아무리 먹을 것이 많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긴장과 위험을 대비해 살아야 하는 도시를 떠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마음 편한 게 최고이지 하면서.

하지만 생각해보면 마음 한 켠에는 치열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풍요에 대해 부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서울쥐의 생활이 자신의 무료한 삶보다는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어느 인생도 감히 가치 있다 평가할 수 없다. 본인이 만족한 길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싶다.

금자도 근식이도 그럴 수 있지 하는 나처럼 그 당시 내 옆 자리 앉았던 서울쥐 친구도 오늘 밤 편안하기를.

이전 08화 # 41. 그랜마 모지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