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물고기 Dec 08. 2021

D#02. 너를 닮은 사람

2021.10.13-2021.12.02

 '봄날'로 복귀했던 그녀가 봄날 같은 모습으로

 

 솔직히 말하면 열혈 팬은 아니었다. 일단 고현정의 복귀작이었고 무심코 돌리다 화면에 20대 같은 그녀의 얼굴이 너무 빛이나 채널을 고정했다.

소개: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짧은 만남으로 제 인생의 조연이 되어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

 이야기나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오늘은 고현정이 얼마나 더 빛이 날까. 도대체 관리의 비법이 뭘까. 식단은 어떻게 한 거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으로 봤다. 어느 날은 다른 프로그램을 보느라 놓치는 경우도 있었고, 어느 날은 구해원이 너무 구차하고 정희주가 뻔뻔한 거 같아 채널을 돌린 적도 있었다.

'사랑이 뭐 별거야. 욕구 충족이 그리 대단한 일이야.' 나 같은 사람들에겐 도대체가 별로 중하지 않은 일에 모든 인물들이 열의와 성의를 다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저런 가벼운 마음으로 회차가 쌓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일 순위인 적이 없었던 남녀 간의 사랑이 누군가에겐 목숨만큼 소중할 수 있고, 사회적 의무와 시선이 중했던 나와 달리 인간의 욕구 충족이 중요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연애가 중하지 않았던 내 청춘

 예전에 남자 친구가 군입대를 앞두고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예상했던 말을 꺼냈을 때 담담하게 밥을 먹으며 '응' 답했다. '맞아 나도 곧 3학년이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니깐. 아무래도 그렇지.'

그 친구는 본인이 먼저 그만하자 말했으면서 내 담담한 말에 조금 흥분했었다.

'너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많이 침착하구나.' 그런 b급 드라마 대사 같은 흔한 말을 하는데,

언제는 내가 쿨하고 이성적이라 좋다더니 쟤도 지 편할 때로 말 바꾸는 녀석이구나. 속으로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이후에도 소년들을 만나면서 헤어지는 그 순간을 힘들어한 적은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술을 진탕 먹고 울면서 전화하고, 그의 집에 찾아가고 괜히 전화를 걸었다 끊고.

그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교과서처럼 따라야 하나 내심 고민했었지만, 그가 이제 내가 싫다는데.

내가 이제 그 소년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다는데 억지로 인연을 붙일 의미가 있을까.

요새는 헤어지자 했다 죽임을 당하는 여성들을 뉴스에서 보면서 지나간 소년들이 적어도 정상인이었구나 감사함이 든다.

 그래서 정희주의 불륜이 더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면 남편과 깨끗하게 정리하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모험을 걸 것이지 남편과 시댁의 경제력은 포기할 수 없고, 그럼에도 사랑이라 생각하는 연애도 하고 싶은.

점점 본인 스스로 본인을 절망적인 결말로 끌고 가는 그녀가 어리석어 보였다.

그렇다고 주변에 이 드라마를 보던 친구가 불쌍하다 동정했던 구해원이 딱히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의 배신이 치가 떨리게 밉지만, 누구보다 밝고 빛나던 나를 버리면서 까지 저럴 필요가 있나.

그냥 그 둘이 사랑한다는데. 그가 더 이상 내가 세상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는데 끊어진 실을 애써 구질구질하게 붙일 필요가 있나. 물론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복수심이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아까웠다.

 

열세 살에 겪었던 왕따의 기억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달 동안 같은 반 여자아이들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시작은 내가 아침에 숙제를 내 짝이었던 남자아이를 먼저 보여준 게 문제였다. 그날 등교하자마자 짝꿍이었던 남자아이가 먼저 사회숙제를 보여달라 했고 2-30분 후에 우리 반 여자애가 내게 부탁했다.

나는 누가 중하고 누구와의 우정이 무게가 더 있고 없고를 떠나 숙제장 대여 정도는 선착순이라고 생각했다. 그 단순한 순서의 문제가 결국 나를 남자애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난 애로 둔갑시켰다.

그 이후 내가 쉬는 시간에 공기놀이보다 축구를 좋아하고, H.O.T보다 소니 컴퓨터 게임 cd에 관심 많았다는 내 취향까지 왕따의 이유가 되었다.

가장 큰 상처는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 하나가 있었는데 서로의 집에 자고 갈 정도로 찐 우정이라 생각했던 애가 그 무리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왕따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전이었는데 일단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아무도 나랑 급식실에서 밥 먹지 않아 남자아이들과 먹고 있으며 체육수업 때도 2인 1조를 해야 하는데 내가 불쌍해서 남자아이들이 돌아가며 나랑 짝을 해주노라 고백했다. 의외로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같이 짝해주는 남자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네. 그리고 네가 먼저 물어봐. 그것 말고 평소에 친구들이 네가 싫었던 이유가 분명 있었을 거야."

엄마는 남의 문제인 듯 말했다. 너의 문제고, 너의 학교생활이니 한번 해결해봐. 처음에는 야속했다. 나는 매일 등교시간이 지옥 같고, 지금 운동회 부채춤도 혼자 추게 생겼는데(남자애들은 부채춤 안 했다.)


 결국 나는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시점 하교 후 여자아이들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학교 뒤뜰에서 오랜 대화를 나눴다. 뭐. 지금 생각해도 몇십 명이 한 팀이 되어 오직 내 잘못만 이야기하는 기억은 지금도 유쾌하지 않다.

남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 것 가장 큰 요구였다. 이것만 지키면 다시 친구(그 전의 친구들로 돌아가진 못하겠지)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에 흥미 있는 척 연기했고, 숙제는 남자 짝꿍이 먼저 부탁해도 다른 주변 여자아이들에게 필요한지 확인했다. 소니나 컴퓨터 게임 cd도 흥미 없는 척했다.

그게 내가 다시 표면적으로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운동회에서 부채춤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엄마가

"그것 봐. 남들이 나를 싫어한다면 나도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봐야 해." 이런 류의 말을 내게 했던 것 같다. 난 별로 반박하지 않았지만. 그건 엄마가 틀린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당시에 했다.

그 여자애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어차피 곧 졸업하고 중학교로 서로 나뉘니 맞춰주자 생각이 들었고 내 지옥 같던 왕따를 내 개인 문제로 스스로 해결하라는 엄마의 말도 매정하게 느껴졌다.

표면적으로 사회적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축구나 게임기 내 취향을 속이는 것도 가식으로 느껴졌었다.

훗날. 성인이 되어 동창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참석한 여자아이들이 내게 미안했다 사과한 일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랬다고. 특히 당시 정말 나랑 친했던 그 여자아이가 가장 먼저 그 일을 꺼내며 사과를 했다.

'아니야. 나도 많이 배웠어.' 웃으며 넘겼지만, 열세 살의 그 기억이 다시 살아나서 그 사과가 더 원망스러웠다. 본인들은 내게 사과하고 이제 이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생각하고 잊겠지. 그런 꼬인 마음이 들며 화가 났다.

그리고 당시 절친이었던 그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 너 덕분에 열세 살 이후 전부를 믿지는 말자.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그가, 그것이) 날 돌아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내 모든 걸 주지 말자. '배웠노라고.


슬프지만, 결국 내 삶은 나 혼자 가꾸는 일


 고독한 일이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결국 삶은 혼자다. 물론 나라는 사람이 지금 서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은 것은 맞지만, 결핍이나 삶의 꿈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무언가, 그 누구에게 기대하고 바래서는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다.

생각해보면 타고난 이성적인(주변에서 인간관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을 이성적인 거라 말들 해서) 성격은 아닌 것 같고 결국 열세 살의 그 경험이 조금 영향이 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고자 노력해왔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속한 조직에서 크게 반하는 행동 없이 무던하게 살아온 것 같다.

다른 이면이 있다면 불행히도 남들은 나이가 들어도 생각나는 절절한 사랑이 있다는데. 그런 절절함이 뭔지 모르겠다. 가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따르는 이야기를 듣거나 보면 그런 마음이 이해 안 되는 나 스스로가 결핍이 있나 의심스럽다.


행복을 남에게 기대한 대가

 정희주는 가난한 본인의 삶을 도망치고자 남편을 선택했고, 기꺼이 고된 시집살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끝까지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풍요로운 삶의 목표를 본인 스스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제3자에게 기댄 대가는 무척 컸다.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고되고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비싼 옷, 호화스러운 삶이 결국 본인의 마음의 결핍까지는 채워주지 못했고 다시 그 결핍을 서우재라는 남자에게 채워보려고 기댄다. 본인의 삶을 본인 스스로 가꾸지 않은 잘못, 나의 결핍을 내 속에서 찾지 않고 남에게 요구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남편과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고졸에 상대적으로 힘든 가정환경에서 정희주의 사회적 성공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결과물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는 떳떳했을 것이며, 마음의 결핍을 다른 남자와의 연애질로 채우고자 한 어리석은 선택은 안 했을 것이다.

 정희주의 몰락과 구해원의 성공으로 결말이 났다고 다들 말했지만 의미가 있나 싶다. 구해원은 진정 행복할까. 지나간 인연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빛나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까. 한 여자에게 진정한 사랑이 아닌 지나가는 욕구 충족으로 이용당한 서우재도, 상대의 부족한 환경도 모두 이해하고 결혼했지만 결국 마음은 받지 못한 남편도 결국 스스로의 현재 삶의 결핍을 어떤 여자에게 기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주변에 추천할 만큼 일명 내 인생작으로 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앞으로도 내 삶의 주체가 누구인지 깨닫고, 그 누군가가 내게 상처를 줘도 네까짓 게 내 세계에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 무던히 잘 넘기며 살아가자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선택한 아내, 엄마의 자리도 내 삶을 갉아먹는 명찰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이것 역시 스스로 잘 해내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에 정희주가 종소리를 들으며,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 본인의 삶의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구원을 얻은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브라운 관 밖의 나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내가 선택한 내 가슴팍의 명찰을 다시한번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전 09화 C#01. 친절한 금자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