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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Jun 23. 2022

민원 접수번호: 001

- 선생님이라 부르고 민원인이라 씁니다.

  "이번 주까지 날 취업시키지 못하면 네 책상 앞에서 분신자살을 할 예정이니 잘 새겨들으라고."


 그는 쪽방촌에 사는 50대 민원인이었다. 첫 만남부터 본인을 '선생님'이라 불렀다는 것부터 가방끈 짧은 자신을 비꼬는 거냐고 받아쳤다. 나는 모든 민원인에게 호칭을 '선생님'으로 하고 있으며 일단 기분 상하게 한 점 사과를 드렸다.

 

  "죄송합니다."

 

 업무 매뉴얼대로 호칭을 부른 것이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아니었지만 결국 이 한마디가 이 상황을 좀 더 쉽게 넘어갈 것이라는 것은 경험에서 알고 있다.

 그에게는 휴대폰이 없었다. 그래서 이력서도 내가 가진 양식으로 출력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도와줘야 했다. 하지만 조건에 맞는 취업 자리는 없었다. 알선을 해도 회사 담당자는 휴대폰이 없고, 전 직장에서 이직이 잦은 점 등으로 난색을 표했다.

휴대폰은 없었지만 집 근처 슈퍼에서 하루에 10번 이상씩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본인의 분신자살 예정일을 내가 잊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한 민원인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고, 한 업무만 하는 것이 아녔기에 때론 001 민원인의 전화로 또 다른 민원인이 불평을 표하기도 했고, 어떤 인정 많은 민원인은 내게 괜찮냐고 위로를 전했다. 그는 오전부터 취해있었고 늘 술을 마시고 내게 전화를 걸어 옆 자리 직원도 다 들릴 만큼 큰소리로 협박했다.


 당시 나는 이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회적 나이 역시 이십 대 중반이었다. 업무도 신입이었지만, 대학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아 어설픈 사회인 명찰을 단 새내기였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에도 몇 번 전화로 내 앞에서 휘발유를 붓고 죽겠다는 사람의 기억을 떨치고 아파트에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엄마 아빠에게 씩씩하고 당찬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파트 앞에 도착했을 때도 내 표정이 굳어있음을 알게 되면 괜히 옆 단지 아파트를 이유 없이 빙빙 돌다가 귀가했다. 내 옷에 붙은 001 민원인의 우울함이 다 털어지면 비로소 진정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매일 출근길은 지옥길이 되었다. 익숙지 않은 업무를 한참 배우며 하고 있는 긴장감도 문제였지만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그의 전화가 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그가 취업을 하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래야만 나의 민원인에서 처리되어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업체에서도 그의 이력을 확인하고 면접을 보자고 한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술에 취한 그의 전화가 며칠 익숙해질 무렵 그날따라 민원방문이 많아 어느 날 보다 정신없이 바빴다. 내 책상 앞으로 긴 줄이 서있었고 그중 성격 급하신 어르신들은 뒤에서 빨리빨리를 외쳐 더 정신없던 하루였다. 하필 그 타이밍에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했다면 옆 동료에게 잠시 부탁하고 급한 민원 처리 후 전화드린다 전달을 부탁했겠지만 그럴 여유도 없어 무턱대고 소화기를 들었다.


 순간 그의 커다란 목소리가 내 귀에서 울렸고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내 앞에 앉은 내 나이 또래 민원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같은 이야기였다. 이번 주도 그를 취업시키지 못한 나는 세상 최악의 인간이며, 나는 월급을 거저 받고 앉아 있는 쓸모없는 인간이며, 본인의 분신자살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며 소리쳤다. 매번 듣던 말이지만 오늘처럼 일이 바쁜 날 들으니 평소랑 다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마음속 유리병에 물이 찰랑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 따라 물결이 점점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귀로 001 민원인의 하소연을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입으로는 위로의 말과 안타까움을 표현해야 하고, 손은 내 앞의 민원인의 업무를 신속히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그날은 내 앞에 앉은 내 또래 친구 같이 보이던 민원인의 한 마디에 마음속 유리병이 마구 흔들렸다.


  "괜찮으세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의 글씨가 조금씩 퍼지는 것 같았다. 손으로 내 허벅지를 세차게 꼬집었다.


 "네. 선생님. 괜찮습니다. 전산 처리는 다 되었으니       

은행에 가셔서 발급받으시면 됩니다. "


 다행이다. 허벅지가 멍이 들 정도로 꼬집어서 민원인들 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다음 민원인에게 사과와 양해를 구한 후 전화로 현재 상황을 말하고 30분 후 전화드린다고 전했다. 물론 그는 내 상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다른 민원인의 업무도 중요했기에 일방적으로 양해를 구하고 끊었다.


그다음 민원인 분은 우리 엄마 연배셨는데 뒤에서 모든 것들 보셨는지

본인의 딸이 생각난다며 힘내라고 위로해주셨다. 괜히 그 말에 반응하거나, 길게 답하면 금방이라도 엄마 생각이 나서 울 것 같았다.


괜히 강한 사회인을 연기하며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떤 업무로 오셨어요?" 교과서 대사처럼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날 퇴근길은 도저히 집으로 그냥 갈 수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귀가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그가 얼마나 딱한 사람이면 그러겠냐고 오히려 그의 편을 들었다. 나는 이미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시험을 치고 들어온 사람이고 앞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이해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위로를 받기 위해 했던 전화가 마음을 더 악화시켰다.


 어려운 환경에 산다면 상대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된다는 것인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열심히 내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그 이상으로 다 이해해줘야 하는 게 내 직업의 업무인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친구의 말에 그날 밤 나는 어설픈 신입 사회인이 되어버렸다.


 여기 일하면서 인간에게 모든 고난과 역경이 그를 더 인격적으로 성장할 순 없겠단 생각을 한다. 가끔 점심도 거르고 급하다 발 구르는 민원을 돕다 감사의 말보다 더 이상의 요구를 들으면 허무함도 온다. (다음번 방문 때 같은 시간 방문을 하겠다 하여 점심시간 안내 후 오늘은 급하신 것 같아 해 드렸으니 다음은 다른 시간 안내했다. 그는 오늘은 해주고 왜 다음은 안 해주냐 일관성 없다고 소리쳤다. 순간 점심시간 무조건 지켜라는 선배 말이 떠올랐다.)


 단지 내 업무를 했을 뿐인데 그 이상으로 감사하다 인사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간단한 문의 전화 상세히 받아들였다고 기뻐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분들 때문에 아직은 이 직장에 남아 내 일을 한다. 일반 사기업부터 다른 직업을 경험하다 왔기에 나가서 다른 직업을 가져도 행복한 근무시간은 없음을 이미 알고 있다.


-민원처리 내용: 과도한 전화와 방문으로 인해 부서 회의를 통해 같은 부서 남직원이 대신 담당하기로 했고 그는 남직원에게 더 이상 폭언이나 과도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어리고 여자라 만만했나 생각하니  김샜지만 그 후 취업하시고 민원처리 완료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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