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별 일이 없어 쓸 일이 없었습니다.

by 꼬마물고기

학창 시절, 글로 상을 타면 엄마는

"아빠 닮았어."라고 말했다.

나의 출생으로 대가 없이 얻은 재능을 다시 알려줬다. 대가 없이 생긴 능력이 싫지만은 않았다. 듣기에 따라 노력 없이 거저 얻은 듯한 것으로 들리겠지만, 다시 한번 내 출신을 확인받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이 생기면,

'누구나 각자의 취향이 다르니 상관없어.' 한 없이 용감했지만, 유독 아빠에게 내 글을 보이는 일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아빠는 내 글을 보고 잘 썼다 말한 적도, 글이 별로다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다 읽었다며 내 원고를 다시 돌려주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친구 몇 명 외에 아무에게 잘 알리지 않았지만 아빠에게 브런치 링크를 보내드린 적이 있었다. 내 예상과 달리 새 글이 올라갈 때마다 아빠는 부지런히 내 글을 읽으셨고, 어느 날 처음으로 내게 말했다.


"소재가 너무 한정적이다. 인기 많은 다른 브런치 작가들을 다 살펴봤니?

구독자 많은 브런치 작가 글을 보면 뭐든 특정 깊이 있는 주제가 뚜렷한데 너는 너무 어릴 적 기억, 가족, 개인적인 소재만 있어 항상 글이 새롭지 않다. 이 이상 가려면 새롭고 개성 있는 주제가 있어야 해."

대학시절 들었던 수업 중 문예창작 담당 교수님 이후 내게 이렇게 직설적인 평은 처음이었다. ("잘 읽히지만 거기까지. 대부분 너무 가벼워요. "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보다 내가 닮은 사람에게 들은 평가이기에, 그 말의 진심을 알기에 기분 상하진 않았지만, 그 이후 나의 브런치 정체기가 왔다. 일상에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되었던 지난날이 한없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일상과 내 지난날의 기억이 별 일이 아닌 것 같이 되어버렸다.

인기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찾아 읽고, 조금 게을리했던 독서도 부지런히 했다. 나만의 개성 있는 주제를 찾기 위해서.


내가 그동안 브런치 글을 올리지 않은 날들이 꽤 지나자 친구 중에 하나는 어느 늦은 밤 전화를 했다. 멀리 살아 이제 얼굴 본 지도 3년이 되어가는데 내 안부가 걱정되어 연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애 키우느라 정신없었어'라고 대답했지만 곧 내 브런치 글이 식상하냐고 물었다. 친구는 듣는 내 마음을 위해 좋은 말만 식상하게 하다 내가 꽤 고심한 흔적을 느꼈는지 곧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물론 인기 많은 브런치를 보면 기발하고 개성 넘치는 주제와 소재가 있지만 너도 너만의 느낌을 가진 브런치 작가라고. 가끔 퇴근 후 자기 전에 내 글을 보면 어렵지 않고, 별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라 더 편한 것도 있다고 힘을 주었다.

하지만 더 길게, 더 빛나려면 아버지 조언대로 무언가 새로운 것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얼마 되지 않은 내 브런치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았다. 한 순간에 몰아서 읽어보니 확실히 반복되는 소재가 있었고, 겹치는 장면들도 꽤 있어 놀랐다. (부끄럽게 오타도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내가 독자라면, 바쁜 일상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가치가 있을까 고민해봤다. 쉽게 쓰인 글들이 한순간 부끄럽게 다가왔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 새 글을 올린다 생각들 하시겠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글을 쓰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보냈지만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은 없다. 훔치고 싶은 다른 사람의 브런치들도 많았고, 내게 없던 기발한 시선을 가진 이들도 많아 새삼 질투가 났다.

하지만, 이 나름의 내 브런치도 꾸준히 가다 보면 어느 날 그 새롭고 참신한 소재가 내게 찾아오지 않을 까. 내 깊이가 좀 더 숙성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결국은 질보다 양을 택한 것 같은 비겁한 변명이지만, 사람마다 색이 다르듯이 내 글은 흔하지만, 편안한 글로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생각하며 써야지. 계속해서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날 고흐처럼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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