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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Dec 06. 2021

#35. 둘째는 낳아야 할까.

- 하나 낳아도 고민. 안 낳아도 고민.

<오늘의 메뉴>

라면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바로 첫 아이를 가지고 출산 후 외동으로 키우기로 합의했었다. 물론 내 몸으로 출산을 하고 경력의 공백이 생기는 내 의견이 더 크게 작용했지만, 맞벌이로 앞으로 살 것을 고려한다면 둘을 키우는 것은 무리였다. 친정엄마는 내가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 탓이라고 했다. 주변에 대부분 그냥 낳으면 그냥 큰다는 것이다.

그냥 낳아 그냥 큰다니.

물건을 소유하는 것도 아니고 식물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한 인간이 사회에 독립하기 전까지. 아니 독립 후에도 한 어른으로 바른 길을 가고 있나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일인데.

매사에 진지한 내게는 육아는 책임감을 넘어 사명감이 필요한 일이었다.


 복직을 위해 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복직은 더 늦게 했지만 아이가 시설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조금 이르게 입학을 시켰다. 가자마자 우려와 달리 또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즐거워했다. 아이가 시설에 가면서 나 역시 전 직장을 퇴사하고 공무원 임용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게 되어 우리 셋은 다른 세계에 적응하느라 2년을 보냈다.

지난 2년은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한참 이쁜 짓을 한다는 3-5살은 사진으로 남았다. 임용이 되자마자 우리 부서에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특별감사가 왔고, 코로나가 덮쳤다.

다른 부서 신입들에 비해 나이도 있고 사회적으로 "아줌마라 역시 느려." 그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야근도 주말근무도 일이 있으면 했다. 업무 관련 매뉴얼이나 관련 문서도 퇴근 후 반복해서 읽었다.

많은 나이에 임용되어 날 배정받은 부서에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자. 나처럼 늦은 나이 혹은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임용이 된 다음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나 있는 아이도 온전히 우리 부부 손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주말에도 나는 출근을, 남편은 육아라는 근무를 해야 했다. 나도 회사에서 힘든 적응 시간을 보냈고 놀거나 휴식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가끔 세 식구가 자려고 누우면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해줬다.

"당신 덕분에 내 경력이 발전하고 있어. 당신이 아이를 잘 봐줘서 야근도, 주말도, 출장도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지금 부서에 인정받고 있어."

남편은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인 양 "같이 애 키우면서 열심히 일해주니 내가 더 고맙지."

답해줬다.

처음에 쑥스러워 잘 전하지 못했지만 한번 하기 시작하니 오히려 내가 더 힘이 났고 다음 날 출근길이 더 즐거워졌다.


 우리에게 둘째는 불가능했다. 친정엄마는 그래도 딸이 필요한데. 엄마도 너랑 얼마나 친구같이 잘 지내냐고.

아쉬워하면 나는 그 딸이 나랑 코드가 맞는다는 보장이 없고, 하나도 친정엄마 손을 빌려 키우는데 둘은 불가능이라 답했다.


  주변의 넘치는 관심이 사라질 때쯤 남편과 나는 이상하게 둘째를 고민하게 되었다. 첫째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첫째가 외로워하니깐. 이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둘째의 존재 의미를 첫째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한 도구에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둘째는 고민한 이유는 나는 이제 회사도 육아도 뭔가 안정권에 접어들었고 이번에 다시 아이를 낳아 기른다면 좀 더 의연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외동의 결정을 내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남편은 늘 둘째를 가지고 싶어 했다. 성별을 떠나 남매든 형제이든 각박한 세상에 한 팀을 만들어 부모가 죽고 난 후에도 누구보다 본인들의 편을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일하는 내 의견을 존중했지만 (육아의 부담은 같지만, 결국 등원, 하원을 시키는 것은 내 몫이다.) 한 번씩 터울이 더 나기 전에 낳고 싶단 마음이 본인도 모르게 내게 들켰다.


  늘 공동의 책임. 공동의 가정 역할을 중시하는 내게 자녀 계획은 무조건 내 의견을 따라라 강요하는 것 역시 조금 불합리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출산을 하는 몸도 내 몸이고,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역할이 더 큰 것이 우리 부부의 근무 환경이지만, 주변 가정에 비해 육아 참여도가 높은 남편에게도 자녀 계획에 대한 의견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큰 일이기에 둘째를 결정하는 것은 거이 1년의 시간이 걸렸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서로 낳기로 결정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지금 나는 임신 중이다.


 휴직 중에 둘째는 가져 부서에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다행히 인사과에서는 축하한다며 부담을 덜어주셨다.

"너 말고 유능한 인재가 얼마나 많은데. 너 없이도 잘 돌아간다." 선배의 장난스러운 말에 안심이 되었다. 첫째에 비해 휴직 중에 임신이 된 것이라 태교도 마음도 더 편안한 요즘이다.

첫째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은 늘 같지만, 둘째가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받는 관심이 줄어들기에 요즘 더 이뻐하고 사랑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너무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만큼 내 자녀계획은 외동으로 확고했고 친구들에게 난 결혼 후에도 사회적 경력이 중요한 사람으로 비쳤기에 임신 소식에

"너 계획 없이 어쩔 수 없이 생겼구나." 말했다.

아니라고 1년 동안 얼마나 고민했는데. 말하니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나중에 둘째 아이가 너 어쩌다 계획 없이 생겨 낳았어하면 얼마나 상심할까. 내가 그냥 생긴 아이라니. 본인의 존재 출발점이 시시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1년 동안 고민 후 가진 아이지만, 사실 지금도 아. 둘째 낳는 것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나. 걱정될 때도 있다. 첫째가 6살이니. 터울도 심하고 훗날 첫째가 나이 어린 동생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얼마 전 서로 약속한 것이 있다. 우리의 사정으로 절대 첫째에게 둘째는 부탁하지 말자고.

물론 살면서 맞벌이 사정상 둘째는 좀 더 큰 아이에게 부탁할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많지만, 온전히 둘째도 우리가 책임지자. 첫째는 본인의 성장과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모의 역할을 아이에게 넘기지 말자고 약속했다.


 벌써부터 부담감이 오지만, 계획한 그 시간에 맞춰 우리에게 찾아온 아이이니 완벽하진 않지만, 다시 힘을 내어 둘째도 키워볼 것이다.

첫째는 요즘 나와 동화책 읽기와 한글 공부를 한다. 고작 글자를 알려주면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한다. 가끔 유치원에서 친구관계로 속상해하면 마음도 만져줘야 하고, 위로도 해야 하고 고민 후 충고도 해줘야 한다. 하나에게도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데 주제를 모르고 다시 한 인간의 일생의 서론 부분을 책임질 일을 저지르다니. 가끔 대책 없었단 막막함도 들지만 이왕 결정하고 이루어진 일 앞으로 일만 치열하게 고민하기로 했다.


 아. 우리 부부의 둘째 아이도 성별은 남자아이다. 본인인 나는 성별에 전혀 상관없었기에 덤덤했지만 소식을 전하는 의사 선생님, 주변 어른들, 친구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아들 둘 육아는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보다.

그래도 우리 사이좋게 지내보자. 네가 독립하는 그날까지 독립을 해서도 옳은 일에 지지할 부모가 있고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형 깐돌이가 있으니 즐겁게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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