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옷을 사 입으러 가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이를 먹으면 몸도 커지잖아요. 그럼 옷이 몸에 딱 붙게 되고, 나중에는 우두둑 찢어질 텐데. 그렇게 되면 난 빨가벗고 옷을 사러 가요?”
“그, 그건… 그런 게 아니야, 우리 딸.”
어린 시절, 별게 다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난감하고도 신기하게 쳐다보셨다.
“왜 우리나라 차들은 전부 하얀색이나 회색, 검은색밖에 없어요? 차를 반으로 나눠서 반은 빨간색이고, 반은 파란색 차를 만들면 안 돼요? 아님 차 바탕은 노란색이고 그 위에 초록색 물방울무늬가 있는 차는 왜 없어요?”
“엄마, 개미는 사람보다 훨씬 작으니까 철봉 위에 올라가면 63빌딩에 올라간 거나 똑같을 거 아니에요. 그럼 개미를 철봉에서 떨어뜨리면 죽어요?”
“엄마, 잠자리는 날개가 반만 있어도 날 수 있을까요?”
“엄마, 우산을 펼치고 뛰어 내리면 중심을 잡고 둥실둥실 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어요?”
“엄마,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고 나가면 구름을 밟을 수 있지 않아요?”
“엄마, 내 친구 희정이가 아파트 5층 방에서 하는 말을 바깥 놀이터에서도 들을 수 있어요?”
“아이구, 우리 착한 딸은 그런 쓸데없는 것들이 왜 궁금할까?”
요즘 같으면 우리 애가 영재가 아닐까 가슴 두근거리며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영재 교육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십 년 전 그 시절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영재도 아니었을 뿐더러 유달리 영특한 아이도 아니었다. 아니, 난 그저 별 쓸모없는 게 다 궁금한 별난 아이였을 뿐이다.
엄마는 쏟아지는 내 물음에 일일이 답해 주실 수는 없었지만 대신 32권이나 되는 두꺼운 대백과사전 전집을 사 주셨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무렵까지 모르는 게 있을 때면 언제나 대백과사전을 펼치곤 했다. 당시 이런 습관이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도 조금만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인터넷을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런데 내가 잘 보는 건 대백과사전뿐만이 아니었다.
“세경아, 텔레비전 뚫고 들어갈래? 뒤로 나와라!”
“엄마 쟤는 왜 저렇게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해요? 방송국에서 최다 시청상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말이다. 애국가로 시작해서 애국가로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만 볼 기세다, 아주.”
“세경아, 이놈의 만화 잡지는 대체 언제까지 사 모을래?”
“내 보물인데 그냥 계속 사면 안 돼요?”
“그럼 공부는 언제 하니?”
“…….”
“세경아, 책 다 봤으면 정리 좀 해라.”
“재미있어서 또 볼 건데요.”
“이놈의 계집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하루 종일 쓸데없는 짓만 하는구나.”
어린 시절, 나는 백과사전은 물론이고 텔레비전과 만화, 책, 영화까지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모두 좋아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국영 오빠였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잡다한 볼 것들에 깊이 빠지기보다 얕고도 넓게 읽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정작 가까운 사람 생일이나 전화번호는 외우지도 못하면서 직접 읽고 본 것에 관해서는 기억력도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잡다한 것들을 감상하는 취미 또한 엄마가 보기에는 먹고사는 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책을 읽는 건 가끔 칭찬받았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 비디오, 만화를 봤다고 칭찬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이 어딘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보고 읽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상식과 지식의 7,80 퍼센트는 바로 그 텔레비전과 만화, 영화, 책 등을 통해 형성됐다고 장담할 수 있다.
국영 오빠가 좋아 중문과에 가고 싶었지만 치명적인 돌머리 때문에 좌절한 뒤로 한동안 목표도 없이 대충 살았었다. 갈 생각도 없던 국문과에 갔고, 거기서 한자며 소설, 현대 시, 문법 같은 것들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민감했던 터라 적성에 맞는 과목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공부나 친구보다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만화, 홍콩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더 좋았던 집순이였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또 다시 엉뚱한 생각 하나를 했다.
“엄마, 나 드라마 작가나 될까?”
“네가, 왜?”
“세상에 나처럼 텔레비전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취미가 직업이 되면 좋잖아요?”
“작가란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냐?”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몇 살이든, 어느 학교 나왔든 한글 쓸 줄 알고 아이디어가 있음 되는 거 아닐까? 세상 평등한 직업 같은데.”
“말이 쉽지 그게 되겠니?”
평소 잔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이상하게 뭔가를 해 볼까 하는 의욕이 생기면 유난히 생각이 단순해지는 게 내 장점이었다.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꽂히면 그다지 주춤거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대학 4학년 때부터 어학연수를 떠나던 스물여덟 살까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꿈을 이루겠다며 방송 작가 과정이나 드라마 작법 공부도 따로 하고 습작도 몇 편이나 썼다. 가끔 공모전에도 도전했지만 결과는 늘 낙방, 낙방, 낙방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속이고 위로했다.
‘진짜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떨어졌을 거야.’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이 모자란 거라고 자위하며 몇 년째 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리는 내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고, 딸아. 드라마 작가가 되면 좋지. 하지만 그게, 아무나 되는 거냐?”
꼭 엄마의 말씀이 아니었다고 해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이뤄지지 않는 꿈에 몇 년의 세월을 소모한 사람이었다. 오르지도 못할 나무만 쳐다보며 시간과 돈을 좀먹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정말 우연히 중국어와 다시 만났고, 살면서 한 번도 꿈꿔 보지 않았던 번역을 시작하게 됐다. 그것도 아무런 준비조차 없는 채로.
그런데 번역가로 20년 가까이 살아 보니 지난 많은 세월 동안 했던 내 허튼 생각과 행동들이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출판 번역가의 성향에 따라 어떤 번역가는 한 장르만 죽어라 파고, 또 어떤 번역가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이를테면 내가 아는 일한 번역가 한 분은 데뷔 이후 주구장창 추리 소설만 번역하며 살았다.
반면 나는 학창 시절 젬병이었던 수학과 과학만 빼고 거의 모든 장르의 책을 다 번역하다시피 했다. 그동안 작업했던 책들만 헤아려 봐도 소설, 에세이, 동화, 자기 계발, 교양, 수의학, 법의인류학, 뇌 과학, 인테리어, 건축학, 경제학, 동서양 철학, 심리학 등 과장 조금 보태서 안 해 본 장르를 찾는 게 빠를 정도다.
“번역한 책들 장르가 왜 이렇게 다양해요?”
“이렇게 안 하면 굶어 죽거든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요.”
번역한 책의 종류가 어째서 이렇게 많으냐고 누군가 물으면 으레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차이가 없다. 책 한 권의 번역료란 게 변변찮은 수준이니 먹고살려면 고상하게 가리고 자시고 할 게 없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갖가지 장르의 번역이 가능했던 건 시간과 돈을 좀 먹었다고 믿었던 지난날의 경험 덕이었다.
“번역가는 책을 눈으로 슥 보면 그냥 술술 번역할 수 있는 거야?”
“뭐래? 그럴 리가 있겠냐?”
“왜? 너 중국어 잘하는 거 아니야?”
“중국어 좀 할 줄 안다고 어떻게 책 번역이 저절로 돼? 나도 보면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사전 끼고 살아야 해. 모르는 분야의 책일 경우에는 자료 조사도 많이 해야 되고.”
“자료 조사? 번역가는 본문에 있는 내용만 그냥 옮기면 되는 거 아냐?”
“무슨 앵무새도 아니고, 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옮기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어느 친구의 물음에 답답해하며 답을 해 준 기억이 있다. 아마 번역가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겪었을 일일 것이다. 보통 어떤 책 한 권을 번역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자료 조사를 하게 된다. 번역가는 만물박사가 아니라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는 좋은 번역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에 관한 책을 번역한다면 그 안에 등장하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한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 글을 옮기는 사람이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잘 이해해야 책 속 본문을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역가가 애초에 갖추고 있는 바탕이 좋으면 번역이 훨씬 쉽게 진행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가졌던 내 잡다한 호기심과 자료 검색 능력은 번역을 위한 자료 조사에서 그 진가를 확실히 발휘했다. 또한 그동안 봐 온 수많은 책과 만화, 영화, 텔레비전 속 얕고도 넓은 상식과 지식들은 어떤 분야의 책이든 가리지 않고 번역을 맡을 수 있는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 줬다.
뿐만 아니라 오르지 못할 나무라 여기며 썼던 드라마 습작들은 소설과 에세이, 동화를 번역할 때 구어체 표현이나 대사들을 보다 쉽고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어릴 때부터 유난스럽다고 할 정도로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신경을 썼던 일 또한 바른 번역문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현장 경험을 하겠다며 네 편의 영화가 엎어지면서도 햇수로 4년을 버텼던 세월도 작가의 감성과 문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분명 서로 아무런 관련도 없고, 살면서 내 인생에 무슨 큰 도움이 됐던 일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번역하게 되니 그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하나하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 없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그 일을 했을 당시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일을 나 혼자 좋아서 했다고 생각하며 위축됐었는데. 경력이 쌓인 번역가가 되어서야 어째서 번역 공부 없이도 번역가가 될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됐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어서, 번역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였던 많은 허튼 일들이 쌓여 나란 사람을 이루고 오늘의 번역가를 만든 것이다.
“이런 거 하면 뭐 해? 아무 쓸모도 없는데.”
예전의 나는 이 말을 습관처럼 하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말을 습관처럼 하며 산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이 어디 있어?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