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그림자 Sep 30. 2023

나는 매일 방구석에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난다

“번역 일을 하신다고요? 그럼 어디서 작업 하세요?” 

“집에서 해요.” 

“집이요? 매일요?” 

“예, 일이 있을 때는 매일 집에서 작업을 하죠.” 

“와, 그럼 안 갑갑해요. 사람도 못 만나고. 성격 이상해질 거 같은데.” 

“예에? 그런 정도는 아닌데요.” 

“그래도 사람이 밖에서 사람도 만나고 소통을 해야지 안에만 있으면 좀 그렇지 않아요?” 

“아, 그런가요?” 


오래 전 어느 날, 선 자리에 나온 남자와 대화를 나누며 속으로 생각했다. 

‘남이야 밖에서 일하든 안에서 일하든 뭔 남의 인성까지 걱정하고 난리야? 오지라퍼 납셨네.’ 

당연히 그 남자와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고, 기분만 상한 채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보통 번역을 한다고 하면 이 정도 반응은 흔하다. 책이나 서류, 영상 등과 씨름하는 번역 작업의 특성상 번역가들은 집에서 번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스터디카페나 개인 작업실에서 번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혼자 일해야 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끔 분량이 많거나 출간 시기를 다툴 때는 공동 번역을 하기도 하지만 그때도 함께 모여 작업을 하는 일은 드물다. 번역의 톤과 공통되는 용어를 맞추려고 유무선상으로 간혹 연락하는 일이 있는 정도다. 


물론 집이 답답하다든지 사람 구경을 하고 싶다며 일반 카페에서 일하는 번역가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탁 트인 공간에서 번역하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카페는 차 마시는 공간이지 일하는 공간이 아니란 생각이 확고하기도 하고, 등 뒤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스스로도 ‘나 일한다’ 내지는 ‘나 뭐 열심히 하고 있다’란 사실을 남들에게 전시하러 나온 것만 같아 영 내키지가 않는다. 이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게다가 번역가들은 대부분 사람과 부대끼며 일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혼자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게 프리랜서 번역가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야 하나. 나 역시 회사에 다닌 적이 있지만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치이는 게 가장 큰 곤욕이었다.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기 전 다녔던 회사에서 나는 사장님 비서로 근무했는데 어쩐 일인지 몇 명 되지도 않는 여직원들의 은근한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다. 워낙 미련한 바보라 참고 견디는 것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나중에 회사를 그만둘 때 막내 여직원이 울면서 내게 말했다. 


“미안해요, 언니. 다른 언니들이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해서 잘해 주지도 못했어요.” 


그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 게 단순히 내 생각만은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당시는 나도 나이가 많지 않아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몰랐는데 번역가가 된 뒤로는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일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물론 출판 번역가도 출판사 사람들이나 번역 에이전시 등의 관계자들과 만날 일이 더러 있지만 회사처럼 상하 관계가 있는 게 아니어서인지 만남이 덜 부담스러운 편이다. 어쨌든 이런 직업의 특성상 집에서 일하는 번역가들은 종종 세상을 등진 은둔자나 방구석 폐인 취급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까? 번역가들은 바로 그 방구석에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있다는 걸. 

50권이 넘는 책들을 번역하며 나는 책 속에서, 컴퓨터 앞에서 공자와 맹자, 노자를 만났고, 사람들은 들어 본 적도 없는 법의인류학에 대해 알게 됐으며, 그리스 신화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었다. 때로는 키워 본 적도 없는 고양이를 종류별로 알게 되고, 갖가지 낯선 심리학 용어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상식처럼 주워섬기기도 한다. 


“공자에게는 3천 명이 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에 아끼는 제자는 열 명이었다? 근데 그 열 명의 제자 중에 염유랑 재아는 하도 못난 제자라서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했다는 거잖아. 공자도 마음에 안 드는 제자가 있었다니, 사람은 사람이네.”


“법의학은 죽은 사람의 사인을 밝히지만 법의인류학은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를 찾지 못하고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을까?” 


“뇌에 전기 자극을 흘려보내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수도 있다고? 이게 상용화가 되면 진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얻을 텐데.” 


“사람은 ‘처음’이란 것에 흥미를 느끼고 오래 기억하는데 이걸 초두 효과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첫사랑에 목을 매나?” 


“고양이라고 하면 삼색 고양이나 샴 고양이나 있는 줄 알았지 아비니시아, 버만, 버미즈, 히말라얀, 빌리네즈, 벵갈, 이집션마우, 코랫, 메인쿤, 하바나, 노르웨이숲, 스코티시폴드, 랙돌……. 별별 고양이가 다 있다니. 게다가 어떤 애들은 다른 종이랑 모여 살기를 싫어하고, 어떤 애들은 다른 종에도 호의를 보여? 고양이 키우려면 이런 거 조심해야겠네.” 


책을 번역하다 보면 혼자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고, 깔깔 거릴 때도 있으며, 엉엉 울 때도 있고, 무릎을 탁 칠 때도 있다. 출판 번역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데에 있다. 조용한 방에 앉아 번역을 하며 다양한 책 속의 수많은 지식과 문화, 시대상, 지혜, 감성 등을 접하고 있으면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바로 거대한 도서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란 사람은 책의 작가들에 비하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별난 재주도 없지만 앞선 시대의 사람들, 뛰어난 작가들, 한발 먼저 미래를 내다보는 학자들과 책을 통해 만날 때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착각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그들의 지식이나 지혜가 글을 옮기고 있는 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와, 엄마. 내가 번역하면서 책에 서 본 내용을 다 기억했으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 됐을 텐데.” 

“그러게. 번역할 때 열심히 좀 외워.” 

“그게… 번역할 때야 다 알 것 같은데 끝나고 돌아서면 새까맣게 잊는다는 게 문제죠.” 


실제로 그동안 번역한 50여 권의 책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꽤나 박학다식한 인재로 거듭났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아까운 책 내용들이 번역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지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방구석에 앉아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 즐겁다. 다음 책, 또 다음 책에서 여태껏 몰랐던 또 다른 지식과 지혜를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소풍을 앞둔 아이마냥 가슴이 설렌다. 그래, 사회생활 그까짓 거 좀 익숙하지 않으면 어때? 나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집 안에서 돈을 받고 배우고 있는걸. 이런 걸 두고 지경을 넓혀 간다고 하나? 


번역가들은 이렇게 방구석 혹은 좁은 공간에 앉아 글과 사투를 벌이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건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그중에 한 사람이 나라는 건 참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다. 남들 보기에는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해도 책과 만나 올바른 글로 옮길 수 있다면 나는 반대편 지구를 뚫고 나갈 자신이 있다. 


한 나라의 언어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기는 일은 그만큼의 힘을 갖고 있으니까.    

이전 11화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