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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1. 2023

반백수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번역가입니다

“세경아, 여기 좀 앉아 봐라.” 

“예? 무슨 일이신데요?” 

“너도 이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야 되지 않겠냐?” 

“안정된 직장이요? 지금 번역을 하고 있는데요.” 

“아니, 번역도 좋은 일이지만……. 사람이 어디 회사라도 들어가야 월급도 나오고 선볼 때 할 말도 있을 거 아니냐.” 

“노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책을 몇 권씩 번역하고 있거든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기획서도 쓰고, 책도 번역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제 노력을 무시하세요?”


번역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18년차인 지금은 아니지만 7, 8년차 때만 해도 종종 부모님의 걱정 어린 말씀을 들으며 발끈하곤 했다. 나는 분명 바쁘게 일하고 있건만 부모님 눈에 집에서 반쯤 놀고 있는 자식으로 보일 때면 어깨에 힘이 쭉 빠질 수밖에 없었다. 


번역도 엄연한 직업이라고 해도 그걸 이해해 주는 부모님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출판사에서야 번역가를 선생님, 작가님, 역자님, 번역가님 등의 호칭으로 부르며 대접해 주지만 부모님 눈에는 집을 어슬렁거리며 뭔지 모를 일을 하는 측은한 자식일 뿐이라고 해야 하나. 


“번역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는데 언제 취직하냐고 부모님이 아직도 물어봐요.” 

“한 달에 몇 백을 벌어도 내 돈은 돈이 아닌 줄 안다니까요.” 

“우리 부모님은 번역은 아르바이트로나 하는 거지 번듯한 대학 나온 애가 직업으로 할 일이 아니래요.”

“친구들 중에도 가끔 그러는 애들이 있어요. 따로 취직은 안 할 거냐고. 번역은 프리랜서라 불안정한 거 아니냐고요. 남의 일에 웬 오지랖 부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 


출근도 퇴근도 없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번역 작업에 지쳐 가끔 번역가 카페에 들어가면 예전의 내가 했던 생각과 같은 푸념글을 올리는 현역 번역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굳이 글을 올리지 않아도 그런 글에 동조하는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는 걸 보면 비슷한 대우를 받는 번역가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하세요?” 

“출판 번역가요.” 

“와, 책을 번역하시는 거예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번역가라고 하면 선망의 눈길로 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일수록 번역가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한다. 솔직히 그런 시선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가 4대 보험을 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 고정적으로 사무실에 나가는 것도 아닌 데다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니 걱정을 가장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도 한국인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영화사를 그만두고 번역가로만 불리게 됐을 무렵에는 나 스스로도 집에서만 번역 작업을 하는 것이 괜히 가족들의 눈치가 보이곤 했다. 어쩌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번역을 하다 도시락이나 사 먹을까 싶어서 동네 편의점이라도 들르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사장님의 시선에 등이 따끔거린 적도 있다. 남들 다 정장 입고 출근해 일하는 시간에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나 찌익 끌면서 동네를 배회하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백수일 것만 같아서. 


일감마저 제때 들어오지 않고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려 할 때면 불안정한 번역가란 직업에 회의를 느낀 적도 많았다. 특히나 번역 에이전시에 소속이 되어 7, 8년 정도 일하던 때는 일하는 것에 비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너무 적어 다른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실제로 모자란 수입을 메우기 위해 글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함께 한 적도 있다. 


심지어 돈도 안 되고 힘만 드는 이 일을 사람들이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품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라고 수십 권의 책을 번역하고, 번역하고 싶은 책의 소개글인 기획서를 꾸준히 쓰면서 커리어가 쌓이니 점차 번역가로서의 자부심도 챙길 수 있게 됐다. 부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빚지지 않고 살게 되니 생활도 안정이 되고 남의 눈치를 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기보다 스스로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니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덕분에 지금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동네 산책을 나가도 사람들이 나를 백수로 보면 어쩌나 하는 턱도 없는 착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크흡, 이미 동네 백수로 보일 나이가 지났다는 게 더 슬픈 일이려나. 


지난날, 직장을 찾아야하지 않겠느냐는 부모님께 종종 서운함을 느꼈던 건 번역가란 직업보다 나란 사람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니 부모님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인정은 덤으로 따라왔다. 


“딸내미, 병원에 네가 번역한 책 좀 몇 권 가져 와라.” 

“제 책이요? 뭐 하시려고요?” 

“너희 아빠가 허리 아프고 정신 좀 흐릿한 노인네라고 여기 의사나 간호사들이 좀 무시하는 거 같아.” 

“에이, 그럴 리야 있겠어요?” 

“그래, 그러지는 않겠지만 엄마가 하도 볼품없게 하고 있으니까 괜히 친절하게 해 줄 말도 안 그렇게 하는 것 같지 뭐냐.” 

“하도 환자가 많으니까 일일이 챙겨 주기 힘들어서 그럴 때도 있겠죠. 우리 엄마가 고생이 많으시네. 근데 제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재밌는 책이라도 보고, 우리 딸 이렇게 잘난 애다 그러면 잘해 주진 않아도 불친절하게 하진 않지 않을까?” 


언젠가 척추 수술 때문에 대학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고생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전화로 푸념을 하시며 내가 번역한 책 몇 권만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낯선 병원 생활에 모르는 걸 물어보면 간혹 퉁명스럽게 대하는 간호사나 의사가 있어 기분이 상하셨던 모양이다. 


물론 어머니에게 그리 대한 사람들이 딱히 어떤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한 명의 남편을 돌보는 아내와 수많은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들의 입장이 같을 수 없을 뿐. 하지만 서운함을 느끼셨을 어머니를 위해 나는 직접 번역한 책들을 챙겨 병원에 들렀다. 며칠 뒤 어머니께 여쭤 보니 수간호사 편에 전달한 책을 간호사들이 좋아하며 금세 나눠 가졌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 주셨다.  


“얘, 기분이 그런지 몰라도 네 책 주니까 나나 네 아빠한테 더 잘해 주는 것 같다니까.” 

“진짜요? 그럼 다행이네요.” 


별것 아닌 책 몇 권에 간호사들의 태도가 달라졌을까 싶었지만 어머니 마음이 편해지셨다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나 또한 몇 년 전만 해도 반백수로 보였던 딸이 어머니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드릴 수 있었단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하는 일의 자부심이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저 이 정도만 인정받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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