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무 목표나 계획도 없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거 아냐?’
한동안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했던 때가 있었다. 이미 말했지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딱히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어를 배우라는 스팸 메일을 받았고, 첫사랑이었던 장국영 오빠가 떠올라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뿐이다. 이왕 시작한 중국어니까 좀 더 잘하고 싶었고, 어학연수를 갔다. 어학연수를 다녀와 중국 올로케를 한다는 영화팀에 들어갔지만 들어가는 영화마다 번번이 제작이 무산됐다. 배고픈 영화쟁이는 궁여지책으로 번역 에이전시에 취직했고, 적성에 안 맞는 일이란 걸 깨닫고 고작 한 달여 만에 퇴사를 감행했다. 또한 회사를 그만두기 전 별 뜻 없이 재미있어 보이는 책의 샘플 번역을 시도했고, 뜻밖에도 그 책을 번역해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얼렁뚱땅 출판 번역가가 됐고, 운 좋게도 회사 면접 때 가져갔던 책이 내 두 번째 번역서가 됐다. 워낙 계획적인 걸 좋아하는 편이라 혹시나 사장님이 읽고 있는 중국 책이 있느냐고 물으면 어쩌나 해서 가져갔던 책이었다. 심지어 그 책은 베이징에 처음 도착해 이틀을 꼬박 굶다 빵을 사러 갔던 서점에서 빵만 사기 뭐해 함께 고른 녀석이었다. 그런데 마침 면접에서 사장님이 물으셨다.
“혹시 요즘 읽는 중국 책 있어요?”
“아, 안 그래도 가방에 책이 한 권 있는데요. 보여 드릴까요?”
“뭡니까?”
“문화와 사회, 역사, 생활 같은 여러 방면의 산문을 모아 놓은 책인데요. 각 이야기가 짧고, 읽기에도 재미있어서 지금도 가끔 읽습니다.”
솔직히 말해 끝까지 안 읽은 책이었다. 하지만 가끔 읽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 책의 콘셉트를 흥미롭게 본 사장님 덕에 어느 출판사에서 그 책을 출간하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나는 첫 번째 책이 끝나기도 전에 번역할 두 번째 책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번역하다 보니 어느새 전업 번역가가 되어 있었다. 번역과 함께 병행하던 영화 두 편이 연속으로 엎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스스로 계획한 바는 없었지만 물 흐르듯 그렇게 흘러갔다. 요즘 유행하는 ‘대충 살기’를 이미 약 20년 전에 과감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다.
물론 이렇게 살면서 ‘인생이 그까짓 것 대충 술술 풀리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살아도 되나?’란 생각이 항상 머리를 맴돌아 괴로웠다. 몸은 한가한데 머리는 겁나게 복잡한 시간들이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번역가가 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또 일 년에 고작 책 두세 권을 번역하는 시간이 몇 년이나 더 계속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껴 쓰고 쪼개 쓰며 살았지만 생활은 늘 녹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번역가란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번역이 큰돈이 안 되니 아르바이트로 글을 쓴다든지, 들었던 보험으로 약관대출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왠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번역에 대해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거나 번역이 안 하고는 못 배길 만큼 너무너무 좋아서가 아니었다. 뭐, 좋긴 좋았다. 너무너무 좋은 건 아니었다는 거지.
‘당장 할 줄 아는 게 번역 밖에 없는데 이걸 관두면 뭘 하지?’
솔직히 번역을 그만두지 못했던 건 이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막연히 다른 일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딱히 갖추고 있는 기술이 없다 보니 그냥 주춤거리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어학연수를 가야겠어!’라고 생각했던 순간처럼 단호하게 뭔가를 결단할 수 있었다면 나는 진즉에 번역가를 그만뒀을 것이다. 내가 지금도 번역가로 살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관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일지 모른다.
“딸아, 지금이라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니?”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책도 번역하고, 검토서랑 기획서도 쓰고 있는데 왜 사람 노력을 무시해요?”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씀하실 때마다 나는 버럭 화를 냈지만 그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짙은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노력이, 내가 하는 일이 부정당하는 게 기분이 상하기도 했지만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되나 라는 고민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지난 실수를 곱씹으며 후회하지 마라.”
“나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할 필요 없다.”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져라.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여러 자기 계발서들 속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문구를 신물이 나도록 봐 왔다. 하지만 그런 문구를 볼 때마다 손으로는 번역을 하면서도 머리로는 생각했다. ‘참 나, 말이 쉽지. 자기 계발서를 쓰는 작가들은 정말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당연히 실수를 하면 후회가 되고, 결과가 안 좋으면 내가 부족했다고 탓하게 되고, 열심히 자존감을 세우려고 해도 삶에 확신을 갖기는 어렵던데. 내가 이걸 번역하고 있는 게 맞아?’ 자기 계발서들을 번역할수록 스스로 그런 확신의 삶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오히려 괴리감을 느꼈다.
그보다 나는 흔들리고, 고민하며 우유부단하게 살아 왔다.
지금 하는 일 외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보니 어느새 18년차 번역가가 된 셈이다. 물론 번역이 적성에도 딱 맞았고, 남들보다 잘한다는 소리를 곧잘 들으니 천직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번역가의 생활이란 게 당장 무슨 대단한 성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니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닌 척 버티고 있었을 뿐.
“생각한 것처럼 번역이 그렇게 근사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도대체 번역을 몇 년쯤 하면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책 끝나고 나면 다음 책을 또 번역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불안해요.”
“일 년에 몇 권쯤 번역해야 먹고살 만할까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번역이 제대로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경력이 쌓이다 보니 가끔 후배 번역가들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들을 때가 있다. 특히나 이런 고민은 2, 3년차에 극심해진다. 아직 번역가가 되기 전이나 1년차 번역가일 때는 번역가만 되면 뭔가 핑크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란 희망이 있지만 2, 3년차 정도 되면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게다가 그쯤 되면 현실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와도 타협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야심차게 번역의 길에 들어섰다 가장 많이 주저앉는 구간이 바로 이 2, 3년차다. 실제로 여기서 번역을 포기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물론 2, 3년차 구간을 지났다고 해서 탄탄대로가 나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출판 번역가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애초에 ‘안정’이란 단어와 가까워지기 힘들다. 그저 터덜터덜 퉁탕퉁탕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것뿐이다.
어찌 보면 나는 마지못해 출판 번역가의 길을 계속 걸어왔다. 중간중간 빠져나갈 길이 있었겠지만 그러지를 못해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바로 그런 우유부단한 사람이어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불안하기만 했다고 믿었던 그 길 위에서 번역의 경력과 삶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흔들림과 고민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다.
‘확신의 번역가상’은 될 수 없겠지만 이 바닥에서 어물쩍 살아남은 번역가가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고모, 번역하면 돈 많이 벌어?”
“아니, 돈 많이 벌려면 번역을 하지 말아야지.”
“근데 고모는 왜 번역을 해? 고모 돈 좋아하잖아.”
“글쎄, 고모가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에이, 그게 뭐야?”
“그게 뭐긴. 고모는 이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여기서 살아남은 거야. 너 봐라. 고모 나이에 아직도 계속 번역가로 살고 있는 사람 많지 않다. 다 그만두거나 떠내려갔지. 한 바닥에서 이렇게 오래 붙어 있는 게 진짜 쉽지 않거든. 네가 나중에 살아 봐라. 고모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걸?”
조카에게 그래도 고모는 살아남은 중한 출판 번역가라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할 말이 있으니 참 다행이다.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그저 한 곳에 오래 발을 붙이고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