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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1. 2023

부업이 본업이 되다

영화 두 편이 엎어지고 잠시 번역 에이전시에 취직했던 덕에 번역을 시작하게 됐지만 한동안 나는 번역을 부업으로 생각했었다. 실제로 번역가가 된 뒤에도 두 편의 영화를 더 준비했지만 제작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세경이 네가 나가 본 촬영 현장이 뭐가 있지?” 

“전에 모시던 감독님이 뮤직 비디오 찍을 때 스크립터 했던 거요.” 

“그거 하루 찍지 않았나?” 

“그랬죠. 그것도 원 테이크 원 신이라 한 장소에서만 비 뿌리고 계속 찍었죠.” 

“별로 경험할 것도 없었겠네. 영화판에서 영화가 엎어지는 게 허다하긴 하지만 너처럼 한 편도 촬영을 못 들어가는 것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운이 더럽게 없나 보죠, 뭐.” 


함께 영화 연출부에 있었던 선배와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했지만 입맛은 쓸 수밖에 없었다. 변변찮은 경력으로 영화사에 들어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 운은 거기까지였다. 그나마 세 번째, 네 번째 영화를 준비할 때는 계약금도 한 번 받고, 번역하는 책도 있어서 손가락만 쪽쪽 빠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쪼그라진 생활이 금세 확 펴진 것도 아니었다. 초짜 번역가의 번역료가 대단한 수준도 아닌 데다 번역 일감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얼마 안 되는 번역료도 번역 에이전시와 나눠야 했으니 2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번역해도 손에 쥘 수 있는 번역료는 정말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실제로 첫 책을 번역하고 받았던 번역료가 8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그때 느낀 허탈한 기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수입처럼 이따금 들어오는 번역료는 가난한 영화쟁이에게는 가뭄의 단비였다. 지금도 돈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수준의 번역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 한 달, 한 달 살아 낸 것이 용한 수준이었다. 


“무슨 일 해요?” 

“영화사 스크립터인데 짬짬이 부업으로 번역도 해요.” 


한동안 번역을 부업이라고 생각하며 산 적이 있다. 본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하찮은 수입에도 감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 4편의 영화가 엎어진 뒤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이제 뭘 하지? 그래도 책 몇 권이라도 작업한 번역을 계속해야 하나? 아님 부모님 말씀대로 어디 직장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고민은 많았지만 번역은 그나마 쉬운 선택이었다. 30대 초반, 지금이야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로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에는 딱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내 의사지만 반쯤은 등 떠밀린 사람처럼 전업 번역가가 됐다. 


“오, 내 친구 완전히 전업 번역가가 됐네?” 

“일 년에 두세 권 책 번역하는 것도 전업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에이, 왜? 책 번역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앞으로 더 많이 번역하면 되지.” 

“글쎄, 누가 나한테 번역을 많이 맡겨 줄까?” 

“하긴 경은 원래 드라마 작가가 꿈이니까. 번역을 부업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그래도 되려나?” 


늘 긍정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으로 처진 내 어깨도 쭈욱 당겨 올려주는 베프 덕에 한동안 번역 일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도 나름 기죽지 않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번역을 부업이라고 생각한 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였다. 하나는 번역이 내 본업이 아니어야 많지 않은 일감도, 변변치 않은 수입도 쿨한 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건 부업이니까. 번역할 책이 많지 않은 것도, 돈을 잘 못 버는 것도 당연한 거야.’ 이렇게 나 자신을 속이며 거짓 위로를 했다고나 할까. 


다른 하나는 번역이 부업이어야만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작가란 꿈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물여덟 살에 어학연수를 떠나며 작가의 꿈은 완전히 버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영화사 스크립터로 일하게 되면서 이루지 못했던 꿈이 다시 불꽃처럼 되살아났다. 다만 꿈은 꿈일 뿐, 작가는 여전히 내게 허락되지 않는 높은 하늘의 별이었다. 


그에 비해 번역은 원한 적도 없는데 우연히 얻게 된 선물이었다. 나는 그 선물을 본업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고 나면 꿈은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등가교환의 법칙처럼. 


그런 이유들을 핑계로 나는 번역을 한낱 부업이라 치부하며 어정쩡하게 살았다. 더구나 이 일을 최선을 다할 본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매사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힘만 들고, 돈도 안 되고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라든지 ‘이건 어차피 본업이 아니니까 꼭 열심히 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투덜거리며 어쩔 수 없이 번역 일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고객의 부탁으로 자료를 찾다 지금도 활동 중인 번역가 카페에 가입하게 됐다. 번역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원하는 자료도 혹시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번역가로 산 지 8, 9년차쯤 되었을 때인데, 그곳에서 나는 생각의 전환점을 맞았다. 비록 원하는 자료는 찾을 수 없었지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번역가를 꿈꾸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출판 번역가가 되려고 매일 소설책을 필사하고 있어요.”  


“번역가가 되고 싶은데 추천해 주실 만한 입문서 있나요?” 


“일본어 JPT 자격증 있는데 번역사 자격증도 따야 할까요?” 


“중문과를 나왔는데 통번역 대학원에 진학하면 좀 더 쉽게 번역가가 될 수 있나요?” 


“번역 아카데미 나오고, 번역 에이전시에 프리랜서로 등록했는데도 일감이 안 들어와요.” 


“번역가가 너무 되고 싶은데 데뷔가 쉽지 않아요.” 


게시판에 북적이는 예비 번역가들의 글을 보고서야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고 바란 꿈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투덜대며 마지못해 한다고 생각했던 번역이 그들에게는 내가 평생을 바라 온 작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손에 잡히지도 않는 별에만 목을 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이런 바보. 난 그냥 번역가였네. 내 본업은 번역가였어.’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자 번역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도 달라졌다. 일 년에 일감이라고는 겨우 책 두세 권을 주는 게 전부였던 번역 에이전시와도 과감히 관계를 정리했다. 물론 번역 에이전시란 울타리를 벗어나면 혼자 일감을 찾아야 하는 야생을 마주할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던져 주는 일을 수동적으로 하기보다 번역하고 싶은 책을 스스로 찾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당장 일감을 구하기 어려울 테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뒤따를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열심히 하면 더 나은 수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에이전시에 수수료를 떼어 주지 않고 더 나은 번역 단가를 출판사와 직접 협상할 수 있을 테니까. 


한 발을 떼는 데까지 지나치게 오래 걸렸을 뿐, 마음을 달리 먹으니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사실 나를 둘러싼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달라지자 이 돈도 안 되고 힘들기만 한 번역이 뭔가 해 볼 만한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무늬만 번역가로 살던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진짜 번역가가 되는 길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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