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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2. 2023

나는 매일 흔들리지만 번역, 너는 내 운명

챗GPT가 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기존의 검색 엔진이나 번역기, 그림 그리기 도구, 문서 작성 프로그램 등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완성도와 편의성을 자랑하는 인공 지능 챗봇이라니. 언젠가 인공 지능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많은 미래 학자들이 예전부터 예측하기는 했지만 챗GPT는 그런 시대가 바로 코앞까지 왔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번역기의 성능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는데 지금 번역가 준비를 해도 괜찮나요?” 

“인공 지능이 발달하면 가장 먼저 없어지는 직업이 번역가가 될 거라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번역가 카페에는 번역기 때문에 번역 공부를 해도 되는지를 문의하는 예비 번역가들이 더러 있었는데 챗GPT의 등장은 그런 사람들의 걱정에 아주 큰불을 질러 버렸다. 물론 나 역시도 그런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 사람들의 예측대로 번역가는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난날 그렇게 인기를 누렸던 비디오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더니 아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것처럼. 그 많던 조개구이 집들이 이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학생들로 하루 종일 북적이던 문방구가 추억의 이름이 된 것처럼. 


하지만 인기가 있고 쓸모가 있던 모든 것들이 시대가 지나 새로운 것이 나왔다고 해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디오가 라디오를 죽인다고 했지만 라디오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전자책이 나오며 무겁고 비싼 종이책은 사라질 거라고 했지만 종이책의 수요는 여전하다. LP판은 수명을 다했다고 했지만 유행이 돌아 다시 인기를 끌게 됐다. 이렇듯 어떤 것의 수명을 결정짓는 것은 필요가 아니라 쓸모다. 


“인공 지능이 막 논문도 작성하고, 문서도 순식간에 만든다면서?” 

“무거운 물건 옮기는 것도 인공 지능 로봇은 수천, 수만 번씩 반복할 수 있잖아.” 

“인공 지능이 몇 가지 조건만 설정해 주면 웹소설도 단숨에 써 준다는데요.”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도 필요가 없어지면 사라지는 거 아냐?”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더 나아가 사람 자체가 필요 없어지면 전부 인공 지능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필요는 없어도 쓸모가 있다고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게 마련이다. 인공 지능이 훨씬 더 발전하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결국 결정권은 사람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우리는 누구나 지금을 살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잠식되어 현재를 갉아먹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또 있을까? 때문에 나는 “인공 지능 시대가 오면 번역가가 가장 먼저 없어진다는데 번역 공부를 해도 될까요?”라고 번역가 카페 게시판에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칼같이 대답한다. 


“진짜 하고 싶은 거라면 인공 지능 핑계를 댈 시간에 공부나 한 자 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핑계를 자꾸 대는 것 자체가 이 일이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먼저 고민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솔직히 18년차 출판 번역가로서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문제는 당장의 생계이고,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번역 단가이며, 여전히 불안정하게 들어오는 일감이다. 고성능 번역기나 최신식 인공 지능 따위는 걱정 축에도 끼지 않는다. 아니, 그보다 좀 더 안정적인 수입원 확보와 계속 나아지는 번역 실력, 오래 일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관리가 고민이라면 더 고민이다. 


이쯤 일하면 모든 게 안정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여전히 나는 흔들리고, 불안해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있다. 아마 그래서 더 웹소설 집필이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일이 원래 좋아하는 일이라 다행이고. 


하지만 여전히 내 본업은 번역이다. 그래서일까? ‘이대로 계속 번역을 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도 솔직히 수없이 많이 한다. 그럼에도 내가 번역, 특히 출판번역을 계속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유는 서점 매대에 놓인 내 책을 발견했을 때의 뿌듯함을 가슴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꼬까야, 잘 봐라. 저기 고모가 번역한 새 책 있다.”

“아, 고모 책 한두 권 봐? 내 책이나 골라 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카와 가끔 서점에 들르면 지금도 나는 무슨 대단한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번역서를 들이민다. 물론 작가에게는 그 책이 작가의 책이겠지만 번역가 입장에서는 그 책이 내 책이기도 하니까. 번역을 그렇게 오래했는데도 새 책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보면 내가 그만큼 책과 번역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스스로 생활인이자 직업인이라 강조하지만 서점에 놓인 내 책이 어느 독자의 손에 들어가 소중히 읽힐 거라 생각하면 내심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그건 사실 내가 돈을 버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그럼에도 작가가 풀어 놓은 지식과 지혜를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에 번역가로서 도움이 된다면 나름의 쓸모를 이미 증명한 게 아닐까. 


어찌 보면 나는 그렇게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다리를 놓고 있는 사람이다. 커다랗고 화려한 대교가 아닌 작고 볼품없는 징검다리겠지만 나는 촘촘하고 단단한 다리를 놓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어쩌다 시작했고 지금도 흔들리고 있지만 감히 말할 수 있다. 번역은 내 운명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챗GPT보다 훨씬 뛰어난 인공 지능 챗봇이 나타나 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해도 나는 출판 번역가로서의 쓸모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인공 지능보다는 작가가 행간에 숨겨 놓은 의미와 기쁨, 한숨까지 꼼꼼히 읽어 낼 자신이 있다. 


더 먼 미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늘의 번역가’로서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니 번역이 하고 싶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시시하게 다른 핑계 대지 말고 일단 이 일에 풍덩 빠져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애매하게 발만 적시느니 온몸을 물에 적시고 나면 거기서 헤엄을 칠지 아예 밖으로 나가 몸을 말릴지 온전히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 


내일이면 나는 다시 작업할 책들의 번역 계획표를 짜고 “무슨 소리야? 잘 모르겠는데.” 반복하며 글을 번역한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뭔 영화를 보겠다며 이 고생이냐고 또 투덜대겠지만 그래도 꿈꾸는 걸 몸으로 옮기는 번역가로 살 수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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