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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2. 2023

모우와이만오 깜틴딕씨, 다음 주인공은 국영 오빠

“타다탁 탁탁!” 


어두운 밤, 길고 좁은 고요한 복도 위로 긴 그림자가 늘어지는가 싶더니 젊은 두 남녀가 뛰어왔다. 상기된 얼굴의 여자는 복도 중간에서 마주친 날카로운 인상의 장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방금 전에…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중학교 시절 꿨던 이 꿈의 주인공인 대통령은 다름 아닌 장국영 오빠였다. 30여 년 전에 꿨지만 마치 영화 같았던 꿈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깨어나면 순식간에 휘발되어 버리는 꿈의 속성 탓에 중간 부분이 기억에서 뭉텅이로 날아가긴 했지만. 그런 꿈을 꾼 게 신기해 학교에 가서 여러 친구들에게 그  내용을 자세히 들려주기도 했다. 


“와, 그 꿈 진짜 근사하다. 넌 안 나왔어?” 

“내가 꼭 영화 스크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니까.” 

“무슨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나중에 소설 같은 걸로 써 봐.” 

“근데 넌 무슨 꿈에서도 장국영을 보냐?” 


평생 국영 오빠의 팬이라고 자처했지만 꿈에 오빠가 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 여러 중화권 스타를 좋아했어도 우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국영 오빠 하나뿐이었다. 나는 오빠 때문에 홍콩 영화를 좋아하게 됐고 또 중국어를 배우게 됐다. 이제 와 보니 글을 쓰게 된 것도 오빠의 영향이 컸다. 오빠가 나온 꿈 덕에 생전 처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실제로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로 쓰고 싶어 정리해 놓은 아이디어 파일에도 그 꿈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기회가 닿는다면 내용을 좀 더 구체화시켜 웹소설로 쓸 계획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영 오빠는 중요한 순간마다 내 꿈을 구체화시켜 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어릴 때 나는 스타를 좋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 회의적인 아이였다. 하지만 국영 오빠는 주는 만큼 받는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의 힘이 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해줬다. 오빠는 내 마음의 별이었고, 그 별이 있었기에 나는 중국어도, 글쓰기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국영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해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도 소소하지만 소중한 우리의 인연 덕일 것이다. 


내일모레면 쉰을 앞둔 번역가가 주책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오빠가 임영웅이고, BTS이며, 남주혁이고, 손석구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국영 오빠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국영 오빠가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번역과 창작의 원천이자 원동력이란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세상에 팬심만큼 사람을 발전하게 하는 힘은 없다.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팬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니까. 순서가 어떻게 되든 결국 두 가지 일을 함께 하게 된 만큼 나는 번역과 글쓰기에 모두를 좇고 싶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지만 국영 오빠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힘을 낼 수 있다. 


1년 6개월 동안이나 첫 웹소설을 쉬지 않고 써 왔지만 글을 쓰는 사이 짬짬이 작성했던 출판 번역 기획서로 어린이 과학책 두 권의 번역 계약을 했다. 글쓰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번역이라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한동안 멈춰 놓았던 번역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참 고맙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래도, 연기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잘했던 국영 오빠처럼 나 역시 번역과 창작 모두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일이 주어질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작정이다. 


살다 보면 종종 이렇게 두 가지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까를 두고 고심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나? 잘하든 못하든 좋아한다면 욕심껏 둘 모두를 골라도 되지 않을까. 물론 무리한 선택으로 몸도, 마음도 지치는 순간이 오겠지만 또 그 선택이 언젠가 두 배의 기쁨과 수확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감히 그 무엇도 장담하거나 속단할 수 없으니까. 닿을 수 없는 별이라고 생각했던 20여 년 전의 꿈이 지금에서야 이루어진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중국어를 10년 뒤 우연히 배우게 된 것처럼. 꿈꾼 적도 없는 번역가란 선물을 그동안 쌓은 경험 덕에 쉽게 받은 것처럼.      


“나는 왜 이 나이를 먹고 이룬 게 아무 것도 없을까?” 


회의적인 아이에서 회의적인 어른으로 자란 나는 이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는데 돌아보니 제법 원하는 많은 것들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다만 제대로 된 중국어를 배워 언젠가 국영 오빠와 짧은 대화라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작은 꿈만큼은 앞으로도 영영 이룰 수 없게 됐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하지만 번역을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배운 중국어이니 언젠가 국영 오빠를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한마디 정도는 건넬 수 있지 않을까? 


“국영 오빠, 이곳에서는 외롭지 않고 행복해요? 저는 오빠 덕에 많이 행복했어요. 오빠가 길을 밝히는 별이 되어 주어서 제가 하고픈 일들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모우와이만오 깜틴딕씨(無謂問我 今天的事)

오늘 일을 내게 묻지 말아요      


모우와이후이찌 빳이우만이이(無謂去知 不要問意義)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말아요      


야우이이 모우이이 짬모띵뿐(有意義 無意義 怎麼定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죠?      


영화 <영웅본색2>에서 국영 오빠가 불렀던 노래 ‘내일을 향해(奔向未來日子)’ 속 가사처럼 지금 내가 하는 허튼짓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누가 알까?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으니 그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도 쉽게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좋아한다는 이유로 국영 오빠를 믿고 저질렀던 것처럼 하고 싶은 일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다면 아주 오래 전 바랐던 꿈을 이룰 수 있을지도. 


혹시 또 알아? 내 다음 작품의 주인공이 정말 장국영 오빠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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