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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2. 2023

가끔은 별을 손에 쥘 수 있다!

“나도 웹소설이나 한번 써 볼까?” 


웹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라면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이 말을 하게 된다고 한다. 아는 편집자님 덕에 웹소설을 알게 된 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헤비 유저로 거듭났다. 처음에는 웹소설의 공짜 분량만 보던 것이 만 원, 이만 원 늘어나더니 지금은 웹소설, 웹툰을 보는 데에만 한 달이면 십만 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 시작은 공부 차원이었지만 작가들이 얼마나 재미나게 쓰고 그리는지 어느새 웹소설, 웹툰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됐다.


 ‘대체 누가 그런 데에 돈을 써?’라고 생각했던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확실한 충성 독자가 됐다고나 해야 하나. 그렇게 많이 보다 보니 나도 남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웹소설을 좀 써 볼까?’


나름 경력직이란 이점도 있었다. 드라마 작가를 하겠다고 방송 아카데미 작가 과정이며, 방송 기자 아카데미, 방송작가협회 교육원 드라마 과정은 물론이고 영화사 스크립터까지 두루 경험한 터라 시도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17년 동안 번역을 하며 글쓰기의 언저리에 있었으니 남들보다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 불리할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웹소설 작법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웹소설은 크게 남성이 주요 독자인 남성향과 여성이 주요 독자인 여성향으로 나뉜다. 또한 여성향 웹소설은 다시 현대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 판타지, BL 등의 장르로 세분화된다. 내 경우에는 7 대 3의 비율로 로맨스 판타지와 현대 로맨스를 읽는 편이라 웹소설을 쓴다면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 습작을 많이 한 경험이 있어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많이 본다고 드라마 대본을 쓸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로맨스 판타지, 줄여서 로판을 많이 읽는다고 바로 로판 웹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웹소설은 전형화된 클리셰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내게는 그런 클리셰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적절히 활용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여러 공모전에서 미끄러져 본 경험이 있던 터라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괜히 서두르기보다 시간을 두고 유명한 로판 완결작들을 읽으며 웹소설을 쓰려면 어떤 요소와 작법이 필요한지 파악했다. 웹소설 판에 있는 사람들 말로 좋은 아웃풋을 내기 위해 대량의 인풋을 하는 데에 집중한 것이다. 


솔직히 초반에 뭣도 모르면서 섣불리 아이디어를 내고 로판 웹소설을 써 보겠다고 두어 번 깝죽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보니 만족할 만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모르는 장르나 내용의 책을 번역할 때면 충분한 자료 조사나 사전 준비가 필요한 것처럼 웹소설 쓰기도 똑같았다.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 나만 아는 소소한 실패가 이어졌다. 이를테면 공모전을 준비하다 제대로 응모도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는 식이었다.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안 뒤로는 수업료를 낸다 치고 더 많은 작품들을 읽으며 나라면 어떻게 쓸지를 상상하고, 좋은 소재들을 따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유행이 자주 바뀌는 웹소설의 특징을 생각해 독자들의 취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틈틈이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몇 년이 흘러갔지만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없이 시간이 증발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날을 갈며 칼을 휘두를 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웹소설, 웹툰 회사에서 로맨스 판타지 공모전을 한다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동안 제법 준비도 했고 공모전 규모도 그리 크지 않으니, 단기 목표라 생각하고 써 볼까? 처음부터 욕심내기보다 단계를 밟는다는 느낌으로 도전하면 되지.’ 발동이 늦게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일단 걸리면 그 뒤는 시행이 빠른 편이라 작품 구상에서부터 공모전에 내기 위한 15회 분량의 원고 집필까지 보름의 시간이 걸렸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날, 출판사 편집자님과의 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정세경 작가님이시죠?” 


번역가도 번역 작가라면서 가끔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출판사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번역 의뢰를 하려는 출판사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 제가 정세경인데요. 실례지만 어디신가요?” 

“XX 로판 공모전 담당자인데요. 작가님께서 저희 공모전 우수상에 당선되셨어요.” 

“아……, 제가요?” 


공모전에 당선되면 하늘을 뛸 듯이 기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뭔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드라마 공모전이며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까지 하도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뭔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휴대전화의 통화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수상으로 당선되신 것 축하드리고, 시상식은 X월 X일 △△ 사무실에서 진행됩니다.”

“예예,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상식 날 뵙겠습니다.” 


차분하게 전화를 끊고 나서야 뭔가 뒤늦은 실감에 다리가 풀렸다. 마침 소공원의 벤치가 보여 대강 되는대로 앉았다. 


“상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지 진짜로 받게 될 줄이야.” 


혼자 중얼중얼하며 좀 전에 녹음한 통화 내용을 주섬주섬 다시 들어보니 당선이 된 게 확실했다. 내게 작가란 꿈은 아주 오랫동안 저기 높은 밤하늘에 박힌 반짝이는 별과 같았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절대 내 손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참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별을 손에 쥐는 날이 오다니. 


2021년 연말에 공모전에서 상을 탄 뒤 회사와 계약을 했고, 커다란 플랫폼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며 올해 봄에 본편의 연재가 끝이 났다. 첫 웹소설치고는 제법 긴 190편에 이르는 작품이었고, 연이어 쓴 외전 10편을 보태어 7월에 연재가 마무리됐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기까지 무려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중에 1년은 중국 웹소설 번역도 함께 진행했으니 몹시도 지난한 싸움이었다. 초보 작가들이 그렇듯 대박을 꿈꿨지만 흥행 성적은 볼품없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원하던 별을 손에 쥐었으니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나의 시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구나.’


 또한 별은 갑작스레 내 손에 쥐어진 게 아니라 켜켜이 쌓아 온 지난 세월과 경험의 대가로 얻게 된 것이었다. 그저 발동이 늦게 걸릴 뿐, 다음에는 어떤 별을 손에 쥐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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