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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그림자 Oct 02. 2023

발번역 주의보에도 지켜 낸 내 이름

한창 웹소설과 친해지고자 노력하고 있을 때 중국에서 건너 온 웹소설도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금은 얼어붙은 한중 관계 때문에 중국 웹소설 연재가 많이 줄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웹소설 플랫폼 여기저기에서 중국 웹소설이 올라왔었다. 중국 웹소설은 주로 무협과 선협물, 15금 BL 장르가 인기였는데 선협은 보통 신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맨스물을 가리킨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웹소설 번역은 일반 책 번역에 비해 단가가 낮아 번역 신인들이 출판 번역계에 데뷔하기 위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진입의 문턱이 낮은 편이지만 그래서인지 번역의 질도 그리 높지 않았다. 직설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비싼 물건이 비싼 값을 한다고 경력이 많고 번역료가 높은 번역가들일수록 좋은 번역을 하고, 경력이 낮고 번역료가 낮은 번역가들일수록 부족한 번역을 하게 마련이다. 


왜 그렇게 번역을 하느냐고 타박하는 게 아니라 경험이 별로 없는데 뛰어난 번역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번역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돈을 적게 주면 딱 그만큼만 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인지 중국 웹소설들은 플랫폼에 론칭만 되면 독자들로부터 매서운 비판을 받기 일쑤였다. 


“발로 번역을 하나? 내가 번역기를 돌려도 이보다는 낫겠다.” 

“주어랑 술어가 호응도 안 되고, 맞춤법도 못 맞추고 번역가가 번역한 게 맞나?” 

“대체 이 번역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음.” 

“이딴 걸 번역이라고 하고 돈을 받다니 양심이 있나?” 

“아마도 이 번역가는 이런 뜻의 문장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설명해 드립니다.” 

“어색한 번역 때문에 소설 읽을 맛이 1도 안 난다.” 


 가끔 중국 웹소설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 몇몇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 소설의 번역가도 아닌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겁나는 댓글들이 많았다. 간혹 지나치다 싶은 댓글도 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 그런 작품들을 볼 때면 번역가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닭이 먼저라고 해야 하나 달걀이 먼저라고 해야 하나? 번역 단가가 낮으니까 소위 말하는 발번역 작품들이 계속 올라오고, 발번역 작품들이 자꾸 올라오니 번역 단가는 오를 수가 없고. 독자들은 이런 상황을 알까?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독자들에게 번역이 별로라도 그냥 참고 읽어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웹소설을 번역하면 반드시 발번역이란 악플에 시달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19금 BL 웹소설을 몇 권 번역한 뒤 피폐해진 정신 때문에 한동안 웹소설 번역을 하지 않았던 나는 어느 날 웹서핑을 하다 번역하고 싶은 웹소설 하나를 발견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다룬 선협물이었는데 중국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작품이었다. 보통 이렇게 드라마로 만들어진 원작 웹소설은 드라마를 먼저 본 팬들이 다시 소설을 찾아보며 인기를 얻게 된다. 내용을 보니 한국에서도 먹히겠다 싶어 출판 번역 기획서를 쓰려했지만 따로 알아보니 안타깝게도 이미 판권이 팔린 뒤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그 작품의 판권을 산 출판사로부터 공동 번역을 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됐다. ‘뭐야? 기획서를 쓰고 싶었던 작품의 번역을 해 달라니 나랑 진짜 인연이 있는 작품인가 보네.’ 이런 생각을 하며 흔쾌히 작업 의뢰를 받아들였지만 마음속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중국 웹소설은 연재만 했다하면 발번역이라고 욕먹는다던데 혹시 나도 그렇게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책 번역은 독자들 반응이 즉각적인 게 아니라 가끔 안 좋은 평가가 있어도 괜찮은데 웹소설은 반응이 바로바로 오는 거잖아? 아무리 경력이 쌓이면서 맷집이 좋아졌다지만 내가 진짜 그런 반응을 견뎌 낼 수 있을까? 번역가도 사람이라 발번역이라고 하면 마음의 상처가 클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소심한 번역가인 나는 아직 보지도 않은 독자들의 반응이 지레 걱정이 됐다. 


“혹시 역자 이름을 필명으로 써도 되나요?” 


19금 번역을 하는 것도 아닌데 번역 계약을 하면서 담당 편집자님에게 필명을 쓰고 싶다는 뜻을 먼저 밝혔다. 


“필명 쓰시는 번역가님들도 많으니까 상관없어요. 어떤 필명을 쓰시려고요?” 

“음, 그건 생각을 좀 해 볼게요. 연재 시작 전에만 알려 드리면 되죠?” 

“예, 그렇게 해 주시면 됩니다.” 


중국 웹소설의 경우 론칭을 앞두고 상당히 오래 전부터 번역 작업을 시작한다. 번역에 일정한 물리적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리 번역을 하는 동안 내내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필명을 써야 하나? 욕먹는 건 싫은데. 그래도 내 이름이 안 나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이렇게 오래 공을 들여 번역한 건데? 돈도 돈이지만 내 작품이란 걸 아무도 모르면 그것도 섭섭하지 않을까?’정말 여러 가지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더구나 내 예상보다 작가님의 글솜씨가 좋지 않아 고민이 더 깊어졌다. 분명 소설의 소재나 구성, 주제는 좋은데 번역을 해 보니 흔히 말하는 글발이 그리 훌륭한 편이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글솜씨를 갖춘 종이책 작가들과 달리 웹소설은 데뷔의 문턱이 낮다 보니 글솜씨가 약간 모자라는 작가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번역가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작가가 쓴 것과 똑같이 글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독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글을 선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번역 작업을 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위해 문장들을 다듬는 일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필명을 쓸지 말지가 더 고민이 됐다. 드라마로 인기가 있었던 작품의 번역이 별로면 번역가가 욕을 먹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 독자들이 과연 내 번역을 마음에 들어 할지 아닐지 솔직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던 끝에 ‘내 이름’을 지켜 내기로 마음먹었다. 

번역을 휘뚜루마뚜루 한 것도 아니고, 번역하는 것이 무슨 죄도 아닌데 굳이 이름을 숨길 이유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내가 무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닌데 꼭 정체를 숨겨야 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번역가님, 론칭 날짜가 잡혔는데요. 필명은 어떻게 할까요?” 

“그냥 필명 쓰지 않고 제 이름으로 내 주세요. 열심히 번역했는데 숨길 이유도 없잖아요.”


작품이 연재를 시작하고 플랫폼에 들어가 반응을 살폈다. ‘괜히 본명 쓴다고 했나?’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댓글들 살펴보니 뜻밖에도 반응들이 호의적이었다. 


“웹소설로 보기를 기다렸던 작품인데 번역이 좋아 술술 읽혀요.” 

“이 번역가님은 번역을 엄청 잘하시나 봐요. 문장이 어색함이 없고 눈앞에 광경이 보이는 것 같아요.” 

“드라마와 진행이 다른데 번역이 좋네요.” 

“번역이 잘 되어 재밌게 읽었어요.” 


물론 독자들의 칭찬도 기분이 좋았지만 최선을 다한 작업에 자부심을 갖고 내 이름을 지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부심이란 남이 아닌 나 스스로 지켜 내는 것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다 쏟아부었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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