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일 - love’s web
사랑을 넘으면 그건 사랑인 것일까. 넘쳐버린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
사랑해서 불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았을 때, 그렇게 불행한 시절만큼 행복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죽음과 같이 사랑해 주어서, 아 사랑 없인 살 필요가 없겠구나 생각했던 그 시절만큼 날 포기하게 만들어줄 포근한 사랑이 없어야 한다.
내가 죽을 때, 나를 얽매이던 모든 슬픔들이 나의 장례식에 왔을 때, 나를 사랑하던 너는 나의 시체 앞에 없어야 한다. 나를 기억하지 않아야 한다. 너는 살아도 죽어야 한다. 죽음이 삶을 가려선 안된다. 나를 죽을 만큼 잊어야 한다.
무덤을 파는 건 잔인하고 지독한 고인모독이야. 나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이, 특히 네가 가끔이나마 죽은 내 생각을 하고, 나의 묘 앞에서 인사치레를 하는 건 죽은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야. 나는 그들의 여생에 민폐가 되긴 싫어. 두 번, 아니 세 번 죽는 것만큼 싫어.
나는 가루가 되어야 한다. 손에는 죽어도 잡히지 않는, 어디라도 담으면 모든 입자 사이 스며들어 없어져 버리는. 나의 가루가 담긴 병은 바다가 아니라 용암에 던져야 한다. 모든 것이 녹아버리도록.
너는 행복해야 해. 나와 함께 살아서 불행했던 널 더 이상 나아지게 해 줄 수 없는 내가 죽으면, 너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나와 정반대로 풍부한 사람을 만나야 해, 그래서 나를 잊어야 해. 잊지 못한다면 꼴도 보기 싫은 병신쯤으로 기억해야 해.
네가 내 미래고 과거니까. 내 삶이니까.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너와 삶을 저울질하다가 죽어야겠다고 결심한 거니까. 나는 무슨 수를 써서든, 둘 중 하나는 해내야 했으니까.
아. 용암에 녹으면 돌이 되겠구나. 아니 어떤 방식으로든 날 모조리 없앨 순 없겠구나. 그럼 네가 나를 잊지 못하겠구나. 나는 죽어도 죽고 싶겠구나.
나는 나를 먹어야겠다. 최대한 아프지 않고 안전한 부위부터 심장까지 나를 먹어야겠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나를 모조리 삼켜야겠다. 먹다 남은 부위는 물고기 밥으로 던지라고 부탁해둬야겠다. 걔네는 뭐든 금방 잊는다며.
잘 지내. 행복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