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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Dec 13. 2023

편지 속 편지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포기한다는 말을 내뱉길 포기한다

애초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복한다

난 내 어지러운 삶에 울타리에 허우적거리느라

그대를 내 삶의 파도에 휩쓸리게 할 자신이 없다


애초 라는 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당신을 이천 년 전쯤 만났다면

나는 헝겊 같은 것을 걸쳐 입고도 당당히 손을 건네고

밤이 달이 되도록 춤을 췄으리라


그런 삶의 나의 사랑의 시대는 시간이 지나 죽었다

죽고 없어진 것이 퍽 없어져 죽을 맛이다

그래서 요즘은 공기가 쓰고 유독한 것이

방사능 지대에서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한다


나름의 방독면의 정화통에는 해로운 단어들이

청정되지 못하고 맴돈다

그리 이쁘지도 못한 몇 개의 단어들이 나를 죽이려

글이 되지 못하고 자리에 그저 쌓여있다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 그저 뱉는다

당신 당신 당신 당신

윗니를 살짝 건드렸다 뒤로 훅하고 빠지는 혀가

내 창자까지 내려가 끝이 온다고 하더라도


여기는 겨울입니다

그저 전하지 못할 말들을 합니다

당신은 내가 바라는 당신의 모습을 하고 있나요

이런 말들을 모두 모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어서


내 파렴치한 혀뿌리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들

나 없이 행복하지 마세요

당신의 행복이 부디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게 아니길

같은 말들을 적는다


날 보고 웃으면 너무 좋지만

그 명량한 목소리가 다른 이에게로 가 미소가 되면

저는 정말 죽을 맛입니다

같은 어리석고 어렵고 어린 사랑도 뱉어본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말을 해야겠다

당신이 행복하다는 소식이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행복이 그런 행복이 아니길 편지 속 편지에 담아

이렇게 전하려 합니다


여기는 겨울이 왔습니다. 부디 심한 폭설에도 미끄러지질 말길. 어제는 당신에게 참 잘 어울릴 목도리를 보았습니다. 이걸 전하지 못해 너무 아쉬운 마음은 뒤로 합니다. 나는 여전히 추위에 약해 훌쩍거리면서도, 안기거나 안고 싶은 마음은 뒤로한 채, 내가 없어도 난방이나 장판으로 따뜻할 당신의 겨울을 생각합니다.


같이 첫 문단을 쓰고

당신의 사랑을 슬퍼하며

내가 없어도 행복하길 바라는 건 진심이 아니지만, 내가 없이도 행복하길 바라는 건 진심입니다.

같이 쓴다


뒤에는 대부분의 후회들

후회 없이 사랑했지만 후회 없이 후회하는 중이다

같은 말들을 포개어 얹고

이 책의 페이지에 끼워 보낼 것이다


그곳엔 아래 문장이 강조되어 있다

사실은

당신이 파도였다

당신이 높고 짙푸른 파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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