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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Nov 14. 2018

7. HBS의 Private Equity 수업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PEF 수업의 강렬한 첫 경험, 그리고 살아남기

유학 첫 학기에, HBS(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교차 수강을 한 번 해 볼까 하고 수업 카탈로그를 보던 중 PEF(Private Equity Finance) 수업이 눈에 들어왔고 매우 듣고 싶어 졌다. 아직 내 학교에서도 수업을 듣기 전이라 미국 수업의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첫 학기부터 교차수강을 하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으나 지금 하지 않으면 왠지 남은 학기 중에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느새 교수에게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 ‘저는 원래 민간 금융계에서 일했었고, 대학원 졸업 후 개발도상국 개발 투자에 몸담고자 하는데 귀하의 수업을 교차 수강할 수 있다면 너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수업은 인기가 많은지 두 클래스가 개설되었는데 살펴보니 하나는 정교수, 다른 하나는 젊은 부교수가 맡은 것으로 보였다. 이메일 답장은 부교수에게만 짧게 왔다. 쇼핑 기간 (개강 초 일주일간 수강신청을 확정 짓기 전에 이것저것 들어볼 수 있는 기간) 동안 들어 보고, 교차수강 지원을 하면 심사를 통해 나중에 경과를 알려주겠다고. 나는 이왕 들을 거면 경험 많은 정교수에게 제대로 들어 보고 싶어서 쇼핑 기간에 그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수업자료를 미리 받았는데 15페이지 정도 되는 케이스 스터디 자료였다. (HBS는 대부분의 수업을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서 진행한다) 등장인물과 배경 설명으로 시작하여 어떻게 이 딜이 시작되었고 주요 정보 및 재무제표 숫자들은 이러이러한데 당신 같으면 이 딜을 하겠는가?로 마무리되는 자료였다. 내용이 한번 읽는다고 이해가 되는 수준도 아니고 술술 읽히는 글도 아니어서 이게 한글로 쓰여 있다고 해도 내가 과연 15페이지를 다 읽고 들어갔을까 싶었다. 하지만 첫 수업을 앞두고 설레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꼭 들어 보고 싶은 수업이었기 때문에 의욕이 넘쳐서 결국은 힘들여 모든 페이지를 다 읽고 들어갔다.

 

드디어 수업 날. 담당인 Gompers교수는 자신이 유태인임을 분명히 하며 (유태인 모자 Kippah를 쓰고) 등장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조금은 깐깐한 말투를 가진 중견 교수였는데 강의 초반은 HBS 출신들이 다른 탑 비즈니스 스쿨에 비해 얼마나 더 PE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지에 대한 자랑, 그리고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믿는 나머지 길에 떨어진 돈도 줍지 않는다는 매우 너디한 농담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수업 내용으로 들어갔는데 음 역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의가 재미있었다. 나를 지목하여 질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 강의 초반에 교수가 돌연 내 이름표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나를, 그 많은 MBA 수강생과 쇼핑 중인 학생들 중에 하필이면! 나를 콕 찍어서 질문한 것이다. “그래서 자네의 밸류에이션 결과는 어땠나? 이 회사의 적정 가치가 얼마지?”

 

강의실의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얼어버렸다. 사실 얼지 않았더라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읽고 들어오라고 해서 읽고 들어왔지만 간단한 예습 차원이었지 모델을 만들거나 숫자를 계산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회사의 적정 가치를 어떻게 구하는지는 이 수업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나? 교수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데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반대편에 앉은 학생들이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제비 떼처럼 모두 저요 저요 하고 손을 들었다. 이 모든 예상치 못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했다. “아... 제가 계산을 안 해 봐서 모르겠습니다. 저... 저 쪽에 있는 친구들이 아는 것 같은데요.” 그랬더니 교수가 약간 황당하고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저 친구들 말고 자네, 자네한테 묻는 거야.” 매우 길게 느껴진 몇 초가 지나고 나서, 교수는 이내 한심하다는 듯 돌아서서는 반대쪽에 계속 열렬히 손을 들고 있는 학생들 중 몇몇을 골라 다시 질문을 했다. 그 학생들은 당연한 듯이 자신들이 준비된 답을 제시했고 수업은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갔다. 나머지 수업은 그들 각자의 밸류에이션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교수가 생각하기에 그 기업의 가치는 얼마였는지, 차이점은 왜 그러했는지를 토론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케이스는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흘러갔으며 현재 그 투자는 성공한 투자였는지 실패한 투자였는지 공개하는 것과 함께 첫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수업 내용이 귀로 들어오는지 코로 들어오는지 모를 만큼 넋이 나가 있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수업 준는 자료를 그냥 훑어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자료를 분석하여 모델을 만든 후 결론까지 도출해 내는 것이며, 수업시간은 그것을 함께 토론하고 검증하는 시간일 뿐이라는 것을.


지나고 나서 교수가 왜 나를 콕 찍어서 지목하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일단 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의욕에만 넘쳐서 앞에서 두세 번째 줄에 앉았기 때문에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책상에 앉은 모든 학생들은 자기 이름표가 있는데 나는 내 학교에서 쓰는 이름표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모양이 약간 달라서 교차 수강 지원자임을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교차수강 신청 이메일에서 여렴 풋이 본 기억이 나는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테스트 해 보고자 했을 것이다. 자기 수업을 들을 자격이 있는 자인지 아닌지…


며칠 후 교차수강 신청에 대한 승인/불승인 여부가 공개되었다. 반전 따위는 없었고 나는 Gompers 교수로부터 매우 당연히도 불승인되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부교수 수업에 수강 승인되어 결과적으로는 원하는 PEF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부교수 수업은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 스스로 무덤을 팔 기회가 없었고 그 사이에 이메일을 또 보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던 것을 잘 봐준 모양이었다.




Gompers 교수와는 이미지가 전혀 다른, 모델 같은 기럭지와 러시아 액센트를 가진 Ivashina 부교수와 함께 나의 PEF수업 학기가 시작되었다. 모든 수업은 기본적으로 첫 수업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나는 매주 수업 준비의 절반을 이 수업에 투자해야 했다. 나는 한국에서는 비교적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여기서는 솔직히 케이스 1 회독을 제대로 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몇 차례 이메일을 써 가면서 얻은 수강 기회였고 또 본교 망신은 시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읽고, 질문/대답할 거리를 찾았으며 스프레드시트 모델을 짰다. 첫 2-3주는 여전히 수업시간이 버거웠다. 내용 따라가기에 급급했고 자책의 연속이었다. 그 시기가 무사히 지나자 다행히 수업시간 중의 엄청난 압박감이나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같은 자괴감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학기 중에 그룹 과제를 하기 위해 HBS학생들과 팀이 짜였다. B-school에 오기 전 PE나 IB에서 제대로 구르다 온 친구들은 역시 모델 짜는 것부터 다르다고 느껴졌지만 그 외 컨설팅이나 인더스트리에서 온 친구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이런 친구들은 수업 중에는 중요한 내용을 지적하거나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등 말발을 이용해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 갔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장벽을 느꼈다. 수업 중에 질문/답변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버벅대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조금 정리를 하다 보면 기회는 다른 학생들에게 넘어갔고 금방 토론의 주제가 바뀌어버리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이런 수준의 영어 토론을 빠른 페이스로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다 발언 기회가 주어져도 내 생각을 세련되고 깔끔하게 전달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저 두괄식으로 몇 마디 던지고는 필연적으로 말끝을 흐리게 되는데 그러다가 다른 친구가 그걸 날름 받아서 논의를 진전시켜 주면 다행이었다.


나의 고군분투기와는 별개로, 수업 자체는 매번 다양한 실제 케이스를 가지고 진행되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실제 케이스의 주인공들이 자주 초대되어 수업 마지막을 장식하고는 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PE Fund의 대표들이 기꺼이 날아와 15-20분 정도 학생들과 질문/답변을 주고받으며 수업에 참여하였는데 한 마디로 멋진 광경이었다. 이들도 업계에서 하루 이틀 떠나 하버드 캠퍼스에 와서 젊고 유능한 학생들과 토론하고 돌아가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하루는 게스트로 역시 유명 PE펀드의 파트너가 초대되어 왔는데 한국인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수업이 끝나고 대화를 시도했다. 이렇게 수업 후에 게스트들과 네트워킹을 하려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자기 차례가 오면 1-2분 안에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데 물론 쉽지 않다. 나는 한국어로 인사를 하면서 아이스 브레이킹을 한 후 짧게 대화하고 나서 시간이 되시면 차라도 한 잔 하면서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했는데 오후에 바로 비행기 타고 돌아가야 한다고 힘들 거 같다는 대답을 받았다. 명함을 교환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전화기를 보니 부재중 전회와 함께 문자가 와 있있다. 내용을 보니 '이제 공항 갈 건데, 시간 되면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대화할까요?'였다. 그 한국인 파트너였다. 아뿔싸! 내가 어쩌다 이 문자를 놓쳤단 말인가. 지금 수업 중인데 어떻게 하지 생각하며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 문자가 다시 왔다. '이미 공항 가는 차 탔네요. 다음 기회에.' 네트워킹 기회는 이렇게 내 눈앞에서 날아갔다. 물론 이후에 이메일로 follow-up 하기는 했지만 좁은 차 안에서의 30분간 대화는 이메일과는 깊이가 달랐을 것이다. 가끔씩 내가 이 공항 라이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여름 인턴 회사나 졸업 후 내 인생 방향에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스스로를 질질 끌고 버틴 끝에 모든 수업, 그리고 기말고사와 함께 나의 유학 첫 학기가 끝났다. 나는 아주 다행히 II등급을 받아 (정확한 비율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위 10% 정도는 I등급, 하위 10% 정도는 III등급, 그리고 나머지 80%는 II등급을 주었던 것 같은데, II등급은 한 마디로 ‘정상 수료' 정도 된다고 하겠다) 안도하며 수강을 마칠 수 있었다. 솔직히 수업 중에도 ‘내가 III등급을 면하려면 내 밑으로 몇 명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여기서 나에게 점수를 깔아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주 다행히도 몇 명 있었던 듯싶다. 정확히 몇 명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고 싶지 않다.


남은 유학 기간 3학기 동안 나는 미국에서의 수업에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발전도 있었기 때문에 이때만큼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하지는 않았다 (HBS 수업을 하나 더 교차 수강했지만 딱히 힘든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덕분에 나의 첫 학기는 유학생활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겨준 시기였고 PEF 수업은 그 시기의 빼놓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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