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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Dec 29. 2018

6. Let’s Party! 미국 대학원의 파티 문화

처음에 힘들었던 스탠딩 파티. 그리운 포멀 파티

유학을 오고 나서 오래지 않아 말로만 듣던 미국의 파티 문화를 접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2년간 파티를 참 많이도 했다. 기본적으로 서서 술과 음식을 소비하며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일상적인 파티와 포멀한 파티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일상적인 파티는 말 그대로 일상에서 ‘한잔 하면서 회포 풀자!’의 느낌이다. 주로 누군가의 집에서 (파티 주최자의 집), 학교 내에서 또는 가끔 술집에서 이루어진다. 모두들 일상복을 입고 맥주병을 들고 서로 인사를 나누거나 그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눈다. 포멀한 파티는 한 학기에 두세 차례 정도 있었는데 가끔 정장, 주로 턱시도를 입고 (여자의 경우에는 정장, 드레스) 학교 밖의 멋진 장소를 대관하여 칵테일 또는 와인잔을 들고 우아하게 hors d’oeuvres를 먹으며 헐리우드 스타라도 된 양 인생 샷을 찍는 것이다. 일상적인 파티와 포멀한 파티는 본질은 같아도 느낌이 많이 달라서 따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일상적인 파티 - 처음 경험하는 미국의 파티는 끝나고 바로 곯아떨어질 정도로 정말 너무너무 피곤했다. 2시간 이상을 서서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누구야 너는 누구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일은 대부분의 인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야기했다. 한국에서처럼 비교적 소수 정예로, 테이블에 앉아서, 서빙되는 음식들을 먹으며 사교를 하면 그래도 좀 버티겠는데 이건 정말이지 30분만 지나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불편했다. 불편하니 아무래도 안면이 있고 조금이라도 친한 친구들과 계속 서서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또 ‘너무 이렇게 몰려만 있으면 안 좋은 모습이 아닐까, 기왕 파티에 왔으니 새로운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친분을 쌓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시 불편해지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인사를 하면 내가 다음에 이 사람을 알아보고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걱정이 되고, 또 딱히 할 말이 없어져서 계속 겉도는 이야기만 하다 보면 그 자체가 또 불편해졌다.


하지만, 확실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긴 하다. 한두 달이 지나니 이제 제법 미국식 파티가 몸에 익기 시작했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급격한 체력 저하가 줄어서 좀 더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아는 얼굴/이름도 많아져서 정신적 스트레스도 줄었다. 여전히 이 그룹과의 대화에서 저 그룹과의 대화로 물 흐르듯 이동하는 기술은 익히지 못했지만 하룻밤에 최소한 두세 그룹에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전체적으로 너무 재미있게 놀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놀다 올 정도로는 발전했다. 그렇게 점점 편해지다 보니 어느 날은 넋 놓고 마시다가 맛이 간 적도 있다. (대학원이다 보니 술을 강권하는 친구들은 잘 없지만 남미 친구들 일부는 분위기 타면 한국처럼 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말려 들고 말았다). 한국처럼 잘 챙겨서 집에 보내 주거나 하지 않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려 자전거를 타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가르며 집에 오는데 중간에 넘어져서 길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치기 어린 20대 초중반도 아니고, 나이를 서른 중반이나 먹고 미국까지 와서 이게 무슨 한심한 짓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여의도에서 회사 회식 이후 술집 바닥에 뻗은 적도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란 그런 것이었지. 지금은 그래도 학생이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즐겁게 먹다 취했으니 그보다는 나은 건지도 몰라하는 무의미한 자기 위로를 하며 집에 왔다. 


어쨌든, 나의 파티 기술의 발전은 그 정도에서 정체되었고 그게 끝이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비슷한 스탠딩 파티가 열리면 적당히 두세 그룹을 거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몇 잔 마시다가 일찍 집에 간다. 파티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내가 만약 유학 시절에 이성을 만나야 한다는 어젠다가 있었다면 파티에 좀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임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유학 직전에 와이프를 만났기 때문에 그럴 인센티브가 없었다.)


다음, 포멀한 파티 - 이건 좀 특별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 학기에 두세 번 정도 이런 포멀한 파티가 열리는데 참가비가 50-60불 정도 있고, 또 학사 스케줄상 과제가 많은 주가 있기 때문에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부 다 참석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턱시도/드레스를 대여하거나 사 입는 것 중에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학교에서 소개한 업체에서 아주 저렴한 턱시도를 한 벌 사 입는 것을 택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속 입을 일이 있을 것이고, 어차피 밤에 입기 때문에 딱히 싼 티가 날 것 같지는 않아서...


파티의 장소와 컨셉은 다양하다. 고풍스러운 시립 도서관, 현대 미술관, 하버드의 클럽하우스, Prudential center의 전망대 등 특별한 장소를 통째로 빌려서 가면무도회, 왈츠, 일반 댄스파티 등의 컨셉을 가지고 파티가 열린다. 해리 포터를 찍어야 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건물의 샹들리에 아래서 왈츠를 추다 보면 19세기 유럽의 상류 사회 사교클럽을 체험하는 것 같다. 턱시도를 차려입고 가면을 쓰고 와인 잔을 든 채로 (우리를 위해 특별히 야간 오픈을 해 준)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하다 보면 내가 하이 소사이어티의 일원이 된 것 같다 (맞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지만 사실 여기 오는 모든 이들이 하버드 출신이고 어디 기업 자제, 어느 나라 현직 정치인, 대통령 아들까지 있으니 나 같은 생 민간인을 제외하면 하이 소사이어티가 맞기는 하다). 지금 내가 인생의 정점을 찍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마치 헐리우드 영화나 가십 걸 같은 미드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보면 인생 샷 천지다. 이런 것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는 너무 강렬하게 노골적으로 자랑을 하는 것 같아 차마 올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를 태그 해서라도 올리면 아 뭐 이런 걸... 내가 여기 놀러 온 줄 알겠네 이런 생각을 하며 난감/뿌듯/민망이 뒤섞인 느낌이었다). 


입학하기 전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나온 선배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선배 말이 재학 중이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했다. 학교에 있을 때는 모두가 찾아와서 엘리트 대접을 해 주고 마치 내가 이미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뭔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되지만 졸업 후 사회에 나오면서부터 나는 그저 회사의 일개 중간급 직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내가 유학생이 되고 나서 그 선배의 앞부분 말은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책에서만 보던 유명한 교수들의 수업을 직접 듣고,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학교와 수업에까지 방문하여 스피치를 하고, 호주 전 총리나 멕시코 전 대통령 같은 사람과 바로 옆자리에서 같이 점심 샌드위치를 먹으며 국가의 방향이 어쩌고 사회 민주주의가 어쩌고 하는 토론에 참여하다 보면 내가 아직 이 곳에서는 석사학위도 안 딴 풋내기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현실이 아닌 버블 속에 사는 것 같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포멀 파티는 그러한 버블의 정점이라고 하겠다. 처음 한두 번은 내가 아직 학생이고 돈도 안 버는데 이렇게 잘 차려입고 나와서 우쭐대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몇 번 나오다 보면 내가 원래 이런 곳에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인 것처럼 적응이 된다. (물론 파티가 끝나고 다음날 등교를 하면 어느 정도는 현실로 돌아온다. 공짜 피자를 주는 이벤트라도 있으면 모두들 득달같이 달려와 이벤트 시작 전에 피자가 동날 정도다. 다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너무 차려입은 우리 모습이 어색해서 이동을 최대한 간략하게 하려고 했는데 점점 더 여유 있게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번 포멀 파티가 기대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학기 초에 저렴하게 구입한 턱시도는 졸업 전까지 아주 잘 입었다. 다만 처음에 바지를 타이트하게 골랐는데 졸업 전까지 조금 살이 쪄서 바지가 작아졌다. 나는 앞으로도 유용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바지를 수선하고 한 벌 전체를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양복 케이스에 잘 넣어 보관했다. 졸업 후 3년 반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케이스를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지금 직장에서도 연말 파티 등을 하지만 그저 회사에 입고 간 양복을 그대로 입고 회사 내의 홀 같은 곳에서 회사의 food contractor가 제공하는 음식을 조금 먹고 집에 갈 뿐, 대학원 시절의 호사로운 포멀 파티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 프라이빗 섹터의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 정도 되면 비슷한 수준의 파티에 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들 보러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하니 저 시절은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는다고 거의 단언할 수 있다. 지나고 보면 이렇게 포멀 파티에 다니던 시절은 마치 신기루 같다. 그나마 유학을 늦게 온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클라우드에 모든 사진이 자동 저장되는 시절을 보내서 다행이다. 사진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오직 머릿속에만 흐릿하게 남아 있는 나의 대학 시절 추억과는 달리, 원하면 바로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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