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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Jan 10. 2019

5. 웰컴 투 캠브리지, 매사추세츠

유학 생활의 시작과 하버드의 첫인상

몇 달 동안 들뜬 기분에 빠져 헤엄치다 보니 어느새 8월 중순이 되었다. 그간 정든 상해 생활을 정리했고, 퇴사도 완료했고, 지금의 와이프가 된 여자 친구와의 데이트도 신나게 즐겼다. 8월 말에 시작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싸서 보스턴으로 날아가 미리 정해 놓은 숙소에 도착하여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강을 건너 학교가 위치한 캠브리지에 걸어 들어갈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눈부신 햇살, 깨끗하게 파란 하늘,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찰스강, 그리고 그 위에서 카약을 타며 한가로이 즐기거나 조정을 하는 하버드 학생들, 그림 같은 캠퍼스 전경... 내가 이 곳에 와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꽤 오래 전의 김태희가 나오는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라는 드라마가 갑자기 떠올랐다. 사실 잘 보지는 않았 아마도 그 드라마에서 시청자에게 팔았던 하버드의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 야드에 들어가 존 하버드의 동상을 마주했다. 11년 전 풋풋하던 20대 초중반, 친구와의 미국 배낭여행 중 나는 누구나 그러하듯 여기에서 동상의 발을 만졌다. 당시 내가 진심으로 ‘이곳에 꼭 다시 오리라’ 따위의 다짐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예일대에 가서는 심지어 옷도 샀다) 실제로 다시 와서 그 반짝반짝한 발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하버드 스퀘어에서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11년 전에 그곳에서 아쟁 비슷한 중국 악기를 연주하고 있던 중국 아저씨가 마치 밀랍 인형인 듯 똑같은 곳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여행 당시 내가 하버드 스퀘어 사진을 찍어 놓았었는데 그때 사진에 찍힌 아저씨라 내가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캠브리지 일대는 너무도 아름답다. 특히나 대부분의 인생을 빡빡한 대도시의 콘크리트 건물 숲에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임팩트가 더 컸다. 탁 트인 시야와 천연색 자연, 고풍스러운 나무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에서 사는 매일매일이 좋았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심지어 더 아름답다. 연수를 나와 있던 공무원 후배는 ‘내가 뭘 해서 이런 광경을 누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가서는 불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페북 포스팅만이 간혹 올라올 뿐이다). 물론 이때까지가 제일 좋고 겨울이 되면 그야말로 겨울 왕국으로 변한다. 혹독한 추위와 허리춤까지 오는 눈, 오후 4시면 깜깜 해지는 날씨 덕에 그저 실내에서 책이나 읽기에 딱 좋은 곳이 된다. 이래서 여기에 대학이 많이 생긴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눈 덮인 캠퍼스 타운 역시 나름 낭만적이고 아름답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미국이 이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후 캠퍼스 타운을 벗어나 일반 주거지역으로 나가 본 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학교가 위치한 캠브리지 마을 일대는 마치 거대한 테마파크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대를 벗어나면 꽤나 후줄근한 동네도 나오고 더욱 위험해 보이는 동네도 나온다.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당연하지만 캠퍼스 타운처럼 아름답지 않고 렌트비도 차이가 난다. 캠퍼스 타운과 현실 동네의 차이를 깨닫게 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학교에서 맞이한 첫겨울에 정말 많은 학생들이 Canada Goose 재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조금 과장하면 유니폼 수준이었다. 보스턴 겨울 날씨를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선택이기는 하나 당시 한국에서는 동 재킷이 사회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치품이라는 인식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영국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있었다고 한다) 약간 놀라웠다. 나는 미국에서는 다들 이 정도 재킷은 입고 다니나 보다 했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 재킷을 장만하게 되었고 그걸 입고 보스턴에 나가게 되었는데 (적어도 그 당시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길에서 백인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이 재킷 좋아 보이는데 어떤 거요?’라고 묻고, 흑인 남자가 ‘헤이 좋은 거 입었네 이거 엄청 비싼 거 아냐?’라고 물었다. 결국, 캠퍼스 타운은 ‘부유한 아이들’ (부의 원천이 집안의 지원이든 student loan+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이든 간에)이 사는 동네임과 동시에 잘 가꾸어진 판타지 타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HKS는 확실히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정치인/정치인 캠프 출신, 공무원, 정책 연구소 출신, 국제기구 출신, 언론인, NGO 출신, 학자의 길을 가려는 친구들, 그리고 나 같은 프라이빗 섹터 출신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집단이어서 좋은 점은 다양한 세상을 접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MBA 클래스와는 달리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는 긴장감 같은 것이 훨씬 적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나와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다 보니 내가 과연 여기 속한 사람인가라는 느낌을 많이 받기도 했다. NGO 출신이 나와서 좋은 목적, 사회 기여 등의 이상적 이야기를 하며 열변을 토하면 치열한 한국사회의 금융권 출신인 나는 반사적으로 ‘현실감각 없는 소리 하네’, ‘자기 돈 아니라고 참 쉽게 이야기하네’ 같은 생각부터 먼저 들곤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어서, 한가롭고 스트레스 적은 캠브리지에서 가슴 깊이 이상주의를 품고 있는 저런 성향의 학우들과 두 학기 정도 지낸 후에는 내 입에서도 저런 말들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기본 마인드가 이렇게 바뀌었다. ‘이왕 일할 거, 좋은 일 하자. 왜 안돼?’


하버드라고 해서 학생들이 전부 슈퍼 천재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일단 내가 들어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정말 똑똑한, 아마도 인생 내내 전교 1등을 했을 것 같은 이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천재라기보다는 적당히 스마트한 이들의 집단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아마도 과학고-서울대 의대를 나온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훨씬 인상적인 (+너디한) 천재 그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미국 학교의 입학 전형 자체가 학업성적이나 시험 점수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 배경, 리더십 잠재력, 에세이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좀 더 균형 잡힌 (well-rounded) 한 인간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HKS는 Professional school이라는 특성상 지원자의 학업 역량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이미 이루어낸 성취와 지위 (유명한 업적 및 직장, 학교가 원하는 종류의 경험 등) 및 스토리를 중요시하고 Public service에 대한 헌신 또는 의지를 요구한다는 것이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자의식(ego)은 강했다. 그리고 경력이나 배경 역시 훌륭했다.


어쨌든 캠브리지에서의 초반 생활은 전체적으로 구름 위를 걷는 듯 즐거운 날들이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했고 특히 처음에는 몇몇 수업을 따라가는 데 꽤나 애먹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것(직장생활)과 내 돈을 내고 생활하는 것(유학생활)은 스트레스 레벨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아름답고 즐거운 이벤트도 많은 캠퍼스 생활과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알아주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도취감 덕에 나는 기본적으로 해피했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곧 겁이 나기도 했다. 가장 근원적인 공포는 여기서부터 내 인생은 내리막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지만 이후 내 인생이 안 풀리면 동기들 만나기도 민망하지 않을까, 나중에 남들 보기에 더 불쌍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예컨대 이런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었다 - 나중에 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조금 커서 세상 물정을 알게 된 후 ‘아빠는 하버드씩이나 나와서 왜 이러고 있어/ 왜 누구네 아빠처럼 돈도 잘 못 벌어?’ 같은 질문을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떨까. 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공포였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정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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