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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Feb 09. 2024

설이니까 더 돌봄

어떤 설을 보내고 싶나요?

닭들을 만났다. 닭에게 사과를 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서 닭도 나를 신경쓰고 나도 닭을 신경쓰면서 관계가 쌓였다. 닭이 내 손에 얼굴을 올려놨다. 그게 난 관계의 신호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같은 곳에 갔는데 닭들이 없었다. 행방을 물어보니 도축되러 갔다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절망스러워서 울고 있는데 옆에서 친구가 위로해준답시고, 그래도 공장식 축산의 닭들에 비하면 잘 살다 죽은 거라고 말했다. (평소에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의아스러웠다) 화를 냈던가.



1월 말 비질에서 트럭 속의 여성 얼룩소가 내 피부와의 접촉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손 냄새를 맡고 핥아줬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보면 극도로 두렵고 불안한 상태였을텐데도 그랬다. 그게 마지막 희망을, 마지막 믿음을 걸어보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나를 핥아준 소에게 나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밀쳐지는 것을 방관할 뿐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난 꿈 속에서 관계 맺은 닭과 실재했던 잊지 못할 소를 생각하면서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하나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이지만 둘 다 진짜다.



오늘은 재개발구역 고양이 돌봄에 친구 따라 함께 간다. 서로 돌보자는 명절이니까, 더 기운차게 돌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설을 맞을 때마다 남발했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기 어려워졌다. 복을 많이 받는 게 좋은가? 그 복에는, 정상성 속의 복이라면, 돈 많이 얻고 결혼하고 여행 많이 다니고 정규직에 취직하는 것이 복이라면. 그 복에는 부의 축척과 소외의 심화가, 타인과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가, 약자의 배제가, 환경 파괴가 적극적으로 숨어 있다. 그런 복은 덜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된다.


새해복이 모두에게 골고루 내렸으면 좋겠다. 여자만 일하지 않는, 개가 식탁 위의 돼지를 바라보지 않는 설.

같이 일하고 같이 둥그렇게 둘러 앉아 땅과 하늘에 감사하며 밥을 먹고, 어느 동물도 죽임당하지 않는 설.

그렇게 평등한, 종평등한. 평등한 설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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