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사랑이 없는 것 같다. 슬픔과 아픔이 다른 많은 감정들을 삼켜버린 것 같다. 인사이드아웃2를 보면서 정성스러운 예쁜 음악을 듣자마자, 기쁨이를 보자마자 울었다. 감정들을 공들여서 예쁘게 표현한 게 그리워서, 기쁨이 그리워서 울었다. 내게 감정이들이 있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 불안이와 까칠이와 슬픔이만 비대해져 있는 게 아닐까? 미소를 잘 짓지만 웃음은 잘 안 된다.
엄마가 새벽이가 훔친 돼지 아니냐며 도둑질을 하면 어떡하냐고 했다. 나는 새벽이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도둑질이 아닌 구조라고 했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 엄마는 비꼬기 시작했고 나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걔네는 고기가 되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라고 말했고 나는 “아기 돼지들은 죽임당하는데 나는 살아서 자랐어”하며 울었다. 누구는 그런데 나는 질병에 걸려도 살처분되지 않는 것, 일정 무게가 되었을 때 도살되지 않는 것, 노예가 아닌 것,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것, 생사를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한 것이, 그 내가 가진 거대한 권력이 요즘 나에게 부끄럽고 슬프고 아프다. 아, 부끄럼이도 꽤 큰비중을 차지하겠군.
요즘은 어떻게 죽을까 고민한다. 자살할 생각은 크진 않지만 죽게 된다면 함께 도살되어 고기가 되거나 함께 살처분 통에 담겨 묻히고 싶다. 렌더링되어 비료와 사료가 되거나. 함께 겪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평등이지만 살아가며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동물이 될 수 없다. 최대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 지금까지 생각한 방법은 살 때는 땅을 밟으며 살고, 죽는 순간만이라도 함께 죽는 거다. 누구는 그렇게 죽이는 것이 일상인 사회는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으려 할 거다. 위계에 대한 도전이니까. 신분에 대한 도전이니까. 뿌리를 흔드는 일이니까.
이건 정신병일까? 나는 나를 표현할 때 정신병이라는 용어를 꽤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몇 번 했던 상담에서 정신병원을 추천받았고 건강검진에서 우울증 의심을 받았지만 정신병원에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다. 우선 이것을 이해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병원에 가기가 싫다. 이건 실제 정신에의 ‘병’이 아니더라도 정상성 사회에서 보면 당연히 정신병처럼 보일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고 서바이벌 게임 같아서 생기는 아픔을 나에게 투약을 해서 나을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나를 사회에서 요하는 적당한 노동자로 교정하면서 그 아픔에 무감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싹 다 잊고 명확하고 담백하게 다른 스물 일곱들처럼 정상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고 싶기도 하다. 기억을 지우는 약이 아니라면 나는 나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내 학생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만난 것이 어떤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난 학교가 존속한다면 때때로 요란하고 서로 부둥켜안는 결국엔 마음을 나누는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각진 교실도 큰 소리도 스킨십도 싫다. 교실에서 큰 소리를 내는 아이들이 내 신체를 만지면 참을 수가 없어서 버거운 표정으로 “좀 거리를 둬 줄래?”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위축되거나 상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행동을 반겨 온기를 줄 수 있는 교사들이 많다. 대학생 때는 나도 그럴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교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위에 의해. 동시에 엄마는 내가 교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다.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난 엄마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아직 그녀의 기대에 매달려 있다. 하지만 나는 이성애도, 교사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