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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석사 Nov 14. 2020

엄마의 방황

"이번에 퇴사하면 벌써 네 번째 퇴사야.”

 

어차피 평생 다닐 수 있는 직장은 아니었다. 나의 네 번째 직장은 최대 5년까지만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이사를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1, 2년 일찍 그만두는 것일 뿐 네 번째 퇴사는 언젠가는 꼭 부딪혀야 할 과정이었다. 


 막상 퇴사를 할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대학 졸업하고 칠 년 정도 쉬지 않고 일했던 것 같은데 이렇다 할 경력이 없었다. 치과위생사 면허증을 가지고 치과와 관련된 일을 하긴 했지만 내 경력에는 소위 말하는 ‘맥락‘이 없었다. 치과에서 마케팅을 하며 1년 차를 보내고 그다음 해에는 진료실에서 근무를 했다가 대학병원 계약직을 전전하고 대학에서 조교로 사무 업무를 보는 식이었다.

 로컬 치과에서 오래 근무했던 동기들은 차곡차곡 연차를 쌓아 팀장이나 실장직을 맡거나 연봉을 높여 다른 치과로 이직을 했다. 졸업 후 대학원으로 진학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박사 학위를 따고 교원으로 임용되었다. 한 가지 경력을 꾸준히 키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주변 사람들을 보니 내 지그재그 경력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퇴사가 확정되고 나니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역시나 ‘퇴사하면 뭐 하려고?’였다.  

한 두 번 퇴사해 본 것도 아니지만 그 전의 퇴사들은 다음 직장을 정해놓고 움직인 터라 이런 질문이 딱히 필요하진 않았다. 그동안은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창업을 해볼까? 그러기엔 특별한 아이디어도 없고 역시 중구난방의 경력 덕분에 뭐 하나 깊게 아는 게 없어 도전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다시 치과위생사로 치과진료실에 들어가는 건? 연차로는 최소 8년 차.. 나이는 서른이 넘었는데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은 고작 1년인데 별로 환영받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일단 육아도 해야 하니 잠깐 쉬는 건 어떨까?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한동안은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남편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빠듯하더라도 외벌이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잠깐.. 이러다가 영영 쉬게 되면 어쩌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몇 날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퇴사를 하지 말고 주말부부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그만두어야 하는 직장이니 1년이라도 일찍 다른 길을 찾아 자리를 잡는 게 낫다 싶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지나가듯 묻는 남편에게도 짜증이 났다. 괜히 아이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아이를 조금 더 늦게 가졌다면 아니, 아예 결혼을 조금 늦게 했다면 내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였다면 이런 고민을 조금 덜 하지 않았을까. 문제의 본질은 나에게 있었는데 괜한 화살을 가족에게 돌렸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한 일러스트를 보았다. 아이가 과거에 매여 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 나는 앞으로 가고 있어. 나랑 함께 가자 ‘며 앞으로 이끄는 그림이었다.

그 일러스트를 본 순간 뭔가가 머리를 쾅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늘 꿈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낳은 이후 아이를 낳기 전 과거만 생각하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나만 그 자리에 서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방황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를 추억하며 후회하는 방황이 아니라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만들지 더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방황이다. 아마 나는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늘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그때의 내 방황과 내 선택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나와 우리 가족의 미래도 지금의 내 방황과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방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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